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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치기와 진보도착증…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갈라치기와 진보도착증…대선 패배로 이어졌다
  • 유무수
  • 승인 2022.03.21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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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재난 인류』 송병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484쪽, 『우리 안의 파시즘 2.0』 임지현 외 9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12쪽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지음 | 장혜경 옮김 | 김영사 | 260쪽

재난 상황에서 희생양으로 돌파구 모색하는 반이성
586세대 내부 일상의 파시즘은 부패·독선으로 표출

송병건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가 쓴 『재난인류』는 인류가 지난 2천여 년 동안 재난의 위기를 극복하며 결국 진보해온 재난의 역사를 담았다. 과학적 지식이 미흡했을 때 재난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고 시행착오로 피해를 키울 수밖에 없었다. 의사도 효과적인 치료법을 알지 못했던 흑사병 창궐 시기에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고행 예배(채찍으로 자신을 때리며 행진)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역행하는 것이었고 감염병을 더욱 확산시켰다. 

 

왼쪽부터 『재난인류』 저자인 송병건 성균관대 교수, 『우리 안의 파시즘 2.0』의 공저자인 임지현 서강대 교수,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의 저자인 에리히 프롬(1900∼1980). 사진=교수신문 DB, 위키피디아.

14세기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5년 동안 유럽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사망했다. 유럽과 아시아가 교역과 교류로 분주하게 연결되고 있었기에 똑같은 병으로 중국, 인도, 중동 지역에서도 수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동서교역의 활성화는 중앙아시아의 토착질병이었던 흑사병이 팬데믹으로 재탄생될 수 있는 배경이었다.

무역 외에 전쟁의 방법으로 인류가 세계화를 향해 나아갈 때 예상치 못했던 질병의 대규모 확산이 동반되곤 했다. 구세계(아시아, 유럽, 아프리카)와 신세계(남북 아메리카)가 연결되어 최초의 세계화가 이루어진 15세기 대항해시대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종족과 역사와 문화 전체가 붕괴되는 시대였다. 소규모의 스페인 병사들에 의해 멸망한 아즈텍 제국과 잉카 제국의 인구가 격감한 결정적 요인은 유럽에서 건너온 천연두, 홍역, 발진티푸스 등의 전염병이었다.

감염병 대처에서 가장 비인간적이었던 것은 희생양을 설정하여 불안과 공포가 쏠리게 하는 갈라치기였다. 희생양으로 몰린 2천여 명의 유대인은 화형을 당했다. 유럽, 인도, 중국, 일본, 조선 등 세계 각지에서 냉해와 대기근으로 많은 사람이 굶어죽고, 감염병까지 창궐해 큰 고통을 겪었던 ‘소빙하기(대략 1300년에서 1850년 사이)’에도 희생양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려는 반이성적인 해결책이 동원되었다. 기후변화를 마녀의 활동과 결부시켰고 마녀로 지목된 여성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였다. 1921년 일본의 관동 대지진에서 갈라치기로 희생된 약자는 조선인이었다. 

근대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학적인 실험과 관찰과 지식이 축적되면서 인류는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다듬어 왔으나 과학을 통한 신물질의 발견과 생산은 또 새로운 재난을 일으키고 있다. 해양을 치명적으로 오염시키는 미세 플라스틱이나 국내에서 끔찍한 재해를 일으킨 가습기살균제는 인간의 개입으로 인한 재난의 일부 사례다.

 

반대파가 척결 대상이면 소통 불가

10인의 공저자가 쓴 『우리 안의 파시즘 2.0』은 “내 편만 옳은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사학과)는 「여는 글」에서 특히 586세대의 일상에 내재된 파시즘적 요소를 비판한다. 임지현 교수는 문재인 정부의 ‘토착 왜구’론을 계승한 이재명의 ‘친일파 신색깔론’은 반대파를 척결의 대상으로 갈라치기하여 정치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자세라고 지적했다. 이는 한국 사회의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파시즘적 결이다. 또한 ‘우리 안의 파시즘’을 비판하는 것은 적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진영론적 사고방식은 운동권 세력의 개인적 일탈을 정당화하는 ‘진보 도착증’이다. 

 

이진우 포스텍 명예교수(인문사회학부)는 「능력주의의 두 얼굴」에서 “민주적 공정사회인가, 엘리트 계급사회인가?”라고 문제제기를 한다. 이진우 교수는 “지난 30년간 대학에서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능력주의 정서가 점점 짙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소위 좋은 대학에 입학한 학생은 자신의 성공이 자신의 능력과 노력에 의한 것이라고 믿으며 중위권 대학의 학생들은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능력과 노력뿐이라고 확신하는 경향을 보였다. 

설문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공정’이라고 답한 청년 세대는 자격 없는 이들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일에 거부감을 표현했다. 저자는 올바른 능력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전제조건은 안정적인 일자리이며,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능력주의를 이용하는 측면은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상훈 (사)정치발전소 학교장은 「국민주권 민주주의에 사로잡힌 한국정치」에서 “참여가 대의를 밀어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라고 질문한다. 박상훈 저자는 2016촛불집회와 관련하여 문재인 정부는 촛불합의 대신 촛불혁명을 앞세워 대의 민주주의를 폄훼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직접 민주주의를 외치며 여론동원 정치를 추구할 때 국민통합을 파괴하는 극단적인 분열은 필연이다. 대통령의 통치방식에 이견을 표출하는 지식인, 언론인 등을 친일파나 토착왜구로 갈라치기 하여 ‘국민의 적’으로 낙인찍으려 한 정치를 할 때 조직되지 않은 흩어진 소리는 체계적으로 배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누적되면서 진보세력의 도덕적 기반이 무너지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윤석렬 당선인과 전화통화를 하고 당선축하를 하면서 ‘국민통합’을 당부했다. ‘조국사태’ 때 조국을 응원했던 유시민 전 노무현 재단 이사장은 국민을 섬기는 마음으로 권력을 잘 사용하기를 바란다고 제안했다. 내 편만 옳다는 독선에 의한 진보도착증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두루 경청하고 응답하면서 통합과 번영을 투철하게 추구했다면 창의적인 기류가 신선해졌을 것이다. 선거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애초에 윤석렬 당선인이 혜성처럼 대통령 후보로 부상할 수 있었을까. 

 

사랑하려면 사람·꽃·강을 온전히 관찰하라

에리히 프롬은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에서 스페인의 군대에 의해 먼지처럼 흩어져버린 아스텍 부족의 운명을 안타까워했다. 프롬은 ‘내 편 네 편’으로 갈라치기를 하고 네 편을 희생양으로 짓밟고 내 편만 호의호식 해보겠다는 행위는 ‘죽은 것에 대한 사랑(네크로필리아)’과 연결된다고 비판했다. 생명에 대한 감수성과 폭력은 동반될 수 없다. 네크로필리아에게 없는 것은 생명에 대한 경이요 신성한 생기다. 국제적 차원의 파괴적 폭력과 패권추구는 네크로필리아 증상의 발현이다. 

에리히 프롬의 마지막 8년을 함께 한 조교였던 라이너 풍크에 의하면 프롬은 “1950년대부터 이미 삶을 사랑하며, 살아 있다고 느끼는 능력이 점차 줄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시장경제가 확장되고 대량생산 제품의 판매 전략이 날로 중요해지면서 산업은 사람들을 유혹해 더 많은 소비를 유도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중요시하지 않게 되었고 능률적이고 고객지향적인 사람이 되려고 하는 흐름이 강하게 형성되었다. 프롬에 의하면 시장경제가 발전하려면 살아 있는 것과 대립되는 기계적인 것의 의미가 점점 커진다. 이는 우리 손으로 만든 사물을 숭배하는 행위이며, 선지자들이 말했던 우상숭배다.

프롬에 의하면 창의적인 삶을 살 수 있는 전제조건은 첫째, 어린 아이들처럼 감탄하는 능력, 둘째,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능력, 셋째, 접하는 상황을 지성으로만 판단하지 말고 감정으로도 수용하기, 넷째, 매일 새롭게 태어나겠다는 마음가짐이라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투영과 왜곡 없이 접하는 사물, 상황, 사람을 추상적으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장미를 보고 ‘이것은 장미다’라고 분류하는 것은 장미의 추상화이고 장미를 부수적으로 보는 것이다. 

사랑은 이해, 설득, 생명력을 불어넣으려 애쓰며 더 많이 느끼고 더 생산적이고 자기 자신과 더욱 가까워진다. 나태주 시인이 동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고 했듯이 사물을 충분히 오래 바라봄으로써 그것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는 사실을 배워야 한다. 화가가 신선하게 봄으로써 특별한 대상을 완전히 인식하고 그에 맞게 응답할 때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삶을 사랑한다면 사람, 꽃, 강, 자신을 온전히 관찰하려 애쓸 것이며 성장, 발전, 깨어나는 과정이 중요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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