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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 세계문학의 높이에 도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
[책들의 풍경] 세계문학의 높이에 도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
  • 김재환 기자
  • 승인 2001.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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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8 10:30:07

“일국적 편향성과 편협성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며, 수많은 국민문학·지역문학들로부터 하나의 세계문학이 형성된다.” 문화의 세계화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된 요즘, 맑스의 이 통찰은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하게 다가온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더불어 지식과 문화의 생산도 일국적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것은 문화수용 역시 전지구적 시야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문학이 한 민족의 정신과 삶을 이해하는 유력한 방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우리의 세계이해는 그만큼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서점에 무수히 꽂혀 있는 ‘알록달록한’ 세계문학전집은 이를 웅변으로 보여준다. 그 목록들은 ‘중심부’의 정전들로 채워져 있고, 그나마도 일본과 영어라는 우회로를 거친 것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우리의 ‘선택의 감각’은 후진적이다. 오역과 중역, 날림 출판이라는 현실을 돌아보면 이런 우울함이 오히려 사치스러울 정도이다.

주변부를 아우르는 균형감각 돋보여


또 하나의 ‘세계문학전집’이 출간되었다. 지난달 문학과 지성사에서 출간된 ‘대산세계문학총서’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작품은 1차분으로 모두 다섯 편. 초기 영문학의 대표작으로 다양한 형식실험을 통해 문학의 새로운 전범을 창출한 것으로 평가되는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 그동안 일부만 발췌 번역되어 연애시로 오해되곤 했던 하이네의 ‘노래의 책’, 스페인어로 쓰여진 중남미 최초의 소설 ‘페리키요 사르니엔토’,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더불어 프랑스 문학의 현대를 연 아폴리네르의 ‘알코올’, 미국 흑인 여성문학의 어머니로 불리는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등이다.


이 작품들을 총서의 목록에 등극시킨 선택의 감각은 ‘균형과 현대성’이라 할 수 있다. 이 총서의 기획·출간 원칙은 이 점을 잘 보여준다. △작품성과 문학적 가치 중시, 상업성이 없거나 난해하여 번역되지 못한 작품들을 발굴, 번역 △고전만이 아닌 현대 작품의 적극 소개 △해당 언어 전공자의 원어 번역 △부실한 번역본의 경우 재번역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과 국가의 작품 소개 △현대 한국어 번역 등의 출간원칙은 이 시리즈에 대한 신뢰감을 더해 준다. 출간을 앞두고 있는 작품들의 목록은 더욱 풍성하다. 영어권, 독어권, 아랍어권, 중국어권 등 각 문화권 별로 구성된 선정위원이 2백 여명에 가까운 번역대상 작가를 선정해 놓고 있다. 여기에는 위고나 디킨스와 같은 잘 알려진 작가 외에도 존 도스 패소스(영어권)나 아르튀르 아다모프(불어권) 등 생소한 작가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아랍권이나 이태리어권은 아예 낯선 작가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작품과 작가의 선정은 서구 문학 내부의 변모와 문화다원주의라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전통적 의미의 ‘정전’(canon)은 해체/재구성되고 있으며, 라틴아메리카 등 ‘주변부 문학’이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현상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전집에 요구되는 또 하나의 ‘기율’은 번역의 질. 이 총서는 번역의 질을 높이기 위해 번역심사제도라는 일종의 ‘검증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선정위원인 신문수 서울대 교수(영어교육학)는 “먼저 번역 샘플을 제출하여 번역능력 여부를 심사하고, 완역이 되면 해당 전문가에게 심사를 의뢰, 오역을 바로잡는 수정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문학작품의 번역이 오역과 졸역 시비에 휩쓸렸던 사례를 두고 보자면, 이런 시스템은 미덕이라 할만하다.

외래문화수용의 한 척도인 세계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은 문학적 자원이 빈곤했던 우리에게 풍요로운 정신적 양식을 제공해왔다. 뒤늦게 서구 근대문화의 유산을 받아들인 우리에게 을유문화사판이나 정음사판, 삼성출판사판의 전집은 세계문학의 넓이와 깊이를 실감케 해준 전집들이다. 하지만, 이 전집들은 서구나 일본의 전집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진, 외국어 능력이 부족했던 일본어세대의 번역물들이다. 한글세대가 등장한 지 오래이고, 문화적 탈식민의 성취가 요구되는 지금에 이르러서는 역사적 시효가 다한 판본들이다.


현재 출간되고 있는 시리즈 중 현대적이고 균형적인 감각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되는 것은 민음사판 세계문학전집.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이윤기 옮김)를 필두로 50여권이 출간된 이 시리즈는 전문번역가에 의한 충실한 번역, 현대적 언어감각, 영미·유럽권과 함께 제3세계를 아우르고 있다는 점 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대산총서가 상업성에 대한 고려 없이 문학성과 문화적 균형감각을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고 있다면, 이 시리즈는 상업적 성공을 좀더 고려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독서시장의 흐름을 기획에 적절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외에 제3세계문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전집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지난 80년대 출간되었던 한길사의 ‘한길세계문학’과 외국어대 출판부의 ‘세계문학 총서’. 오랫동안 중심부 문학에 길들여졌던 독자에게 제3세계 문학이 생소했던 탓인지 그다지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현재 출간이 중단된 상태다.


세계문학전집은 외래문화를 수용하는 한 나라의 태도와 수준을 증거하는 척도일 것이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성숙한 윤리감각을 기를 수 있는 문화적 자원이기도 하다. 대산세계문학총서의 ‘기획의 말’은 이렇다. “우리가 향유하는 ‘세계문학’은 아직도 좁은 후미 안에 갇혀 흔들리는 잔물결처럼 빈약하다. 그 좁은 전망의 틀을 벗어나 광활하고 심원한 바다로 나아가듯, 세계문학의 저 깊은 정신적 조류를 탐색하고, 그 조류들이 얽히며 풍요롭게 빚어내는 감성의 큰 물결들을 온몸으로 느낌으로써, 우리는 이제, 우리의 전존재가 세계의 바다에 합류할 수 있는 역동성을 구해야 한다.”
김재환 기자 weiblich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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