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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드하는 사람, 그리고 리드되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리드하는 사람, 그리고 리드되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
  • 장영란
  • 승인 2022.03.22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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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역사로 본 21세기 공공리더십 ③_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아리스토텔레스의 설득 리더십과 이상적인 민주주의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마무리됐고, 오는 6월에는 각 지역의 리더를 뽑는 지방선거가 열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신뢰하는 사람’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어떤 사람을 리더로 선택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누구를 리더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사진은 왼쪽부터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가 만든 아리스토텔레스 동상의 모사품, 헬레나와 파리스, 에로스, 아프로디테 등이 그려진 도기. 사진=로마국립박물관(왼쪽), 보스턴미술관(오른쪽)
제20대 대통령선거가 마무리됐고, 오는 6월에는 각 지역의 리더를 뽑는 지방선거가 열린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신뢰하는 사람’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어떤 사람을 리더로 선택했는지 돌아보고, 앞으로 누구를 리더로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다. 사진은 왼쪽부터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가 만든 아리스토텔레스 동상의 모사품, 헬레나와 파리스, 에로스, 아프로디테 등이 그려진 도기. 사진=로마국립박물관(왼쪽), 보스턴미술관(오른쪽)

현대사회에서 ‘리더십’을 말할 때 우리는 단지 ‘리더’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누군가 이끄는 사람이 있다면 이끌려지는 사람도 있다. 리더는 단독자로 존재하지 못한다. 그는 항상 타자와의 관계에서 존재할 수 있다. 누군가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은 리더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세계적인 지휘자라 하더라도 연주자들이 없다면 훌륭한 화음을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리더십은 리더뿐만 아니라 리드되는 사람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리더에 해당하는 말은 ‘헤게몬(hegemon)’으로 ‘이끄는 자’를 의미한다. 현대어에서 헤게모니(hegemony)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다른 나라에 우위를 차지하는 힘이나 영향력을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데려가다’라는 동사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리더는 우리를 무엇으로 향해 데려가는가? 리더의 목표는 공동체에 가장 좋은 것, 즉 ‘공동선’이어야 한다.

누군가 리더가 되려면 타자를 이끄는 힘을 가져야 한다. 한 공동체에는 서로 다른 관심이나 가치관을 가진 수많은 사람이 공존한다. 만약 강제적인 방식을 제외한다면 타자의 마음을 이끌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이다. 설득은 타자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방법이다. 그래서 진정한 리더는 타인을 설득시키는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상적 사회를 추구하기 위해 리더는 다른 사람들을 진심으로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고대 그리스어로 설득은 ‘페이토(peitho)’다. 일차적으로 ‘설득하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매력 있다’나 ‘유혹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설득은 사람의 영혼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그리스 도기 그림을 보면 파리스가 앞에서 뒤를 돌아보며 헬레네의 손을 잡고 끄는 듯한 장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파리스가 헬레네를 납치하는 장면이라 생각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파리스와 헬레네 사이에 작은 에로스가 있고 헬레네 뒤에서 팔을 뻗어 머리에 손을 대고 있는 페이토 여신이 그려져 있다. 에로스는 파리스와 헬레네가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보여주며, 페이토는 파리스가 헬레네를 매혹시켜 함께 트로이로 가도록 설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더는 리드되는 사람들을 설득으로 이끌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설득은 믿음을 주는 것”이라 했다. 설득하기 위한 세 가지 요소로 화자의 ‘성품(ethos)’과 청자의 ‘정념(pathos)’과 ‘논증(logos)’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화자의 성품은 말하는 사람이 가진 가장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라고 말했다. 청중은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보이면 화자의 말을 훨씬 더 쉽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청중의 정념이나 감정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적절한 전략이 필요하며, 청중에게 확신을 주기 위해 적절한 논증이나 예증도 필요하다.

리더의 경우도 다른 사람들을 이끌기 위해서 설득을 할 필요가 있는데 가장 기본적인 요건은 좋은 성품을 갖추는 것이다. 좋은 성품은 설득의 첫 단계부터 신뢰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신뢰하는 사람은 ‘실천적 지혜’와 다양한 ‘덕’을 가진 사람이라고 했다. 우리는 삶의 경험을 통해 모든 일을 적절히 판단하여 처리하는 ‘지혜’로운 사람을 신뢰한다. 자신의 권한을 함부로 남용하거나 오용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집단이나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절제’ 있는 사람을 신뢰한다. 자신에게 불리할지라도 옳은 일을 선택하고 거짓이 아니라 진실의 편에 서는 ‘용기’ 있는 사람 등을 신뢰한다.

지난 9일 강원도 최전방 화천군 화천읍 풍산초교에 차려진 투표소에서 한 주민이 투표하는 모습이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는 리더를 선택할 때 최악이나 차악을 선택해서는 안 되며 최선을 선택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결과에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우리가 언제나 최선을 선택하며 정의를 추구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최선인지를 알아야 하며, 누가 최선의 리더인가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경제적인 이유나 또는 특정한 이념 때문에 부정의하거나 불공정한 사람을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어떤 리더를 원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우리는 리더란 항상 우리보다 앞서가는 사람을 그리게 된다. 그러나 리더는 타인보다 늘 앞에 있지는 않다. 리더는 때로는 앞에서 이끌기도 하지만 뒤에도 따라가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함께’ 가는 사람이다. 가장 좋은 리더는 당연히 가장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나아가 가장 좋은 리더를 선택하고 싶다면 우리 자신도 좋은 사람들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진정으로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좋은’ 리더를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주체는 리더뿐만 아니라 리드되는 사람들이다. 리더십은 리드하는 사람과 리드되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이상이 되어야 한다.

 

장영란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교수

한국외대에서 서양고전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국여성철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신들의 전쟁과 인간들의 운명을 노래하다』(사계절,2021), 『영혼이란 무엇인가』(서광사,2020),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서광사,2018), 『플라톤의 국가, 정의를 꿈꾸다』(사계절,2008), 『호모 페스티부스: 놀이와 예술과 여가로서의 삶』(서광사,2018), 『죽음과 아름다움의 신화와 철학』(루비박스,201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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