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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고전]<14> 조셉 니덤의『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1954)
[우리시대의 고전]<14> 조셉 니덤의『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1954)
  • 이문규 / 전북대
  • 승인 2001.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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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7 14:24:29
조셉 니덤 (1900-1995)
니덤은 영국 카이우스 컬리지에서 화학발생학과 발생생물학으로 학위를 취득했다. 1930년대 중반 젊은 중국인 연구자들과의 만남은 니덤의 학문적 생애를 좌우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니덤은 중국어를 배우고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국으로 건너가 충칭에 ‘중영과학협동부’를 개설한다. 그는 인쇄술, 나침반, 화약이 중국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충격을 받는다. 전쟁 이후 유럽에 돌아온 니덤은 “중국이 광범위한 과학적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중국이 아닌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시작한다. 이에 대한 답으로, 니덤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6권에 걸쳐 집필했고, 니덤 사후 7번째 책부터는 캠브리지 대학의 ‘니덤연구소’에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문규 / 전북대 과학문화연구센터 연구원

흔히 과학의 뿌리는 서구 문화에만 존재했던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특히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 세계가 근대 과학을 탄생시키고 그에 바탕하여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루었다는 점 때문에, 아직도 과학을 그들의 우월성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취급하는 경향이 강하게 남아 있다. 1954년부터 출판되기 시작한 니덤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이런 편견을 없애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책으로 평가된다.
이 책은 전체 7권으로 계획됐다. 제1권은 중국의 언어, 지리, 역사 등 중국 문화 전반을 다루는 서론 부분이고, 제2권은 니덤 특유의 관점이 강하게 담겨 있는 중국의 과학사상사이다. 제3권부터 본격적으로 중국 과학의 성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먼저 수학 및 하늘과 땅의 과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4, 5, 6권은 각각 물리학 및 물리기술, 화학 및 화학기술, 생물학 및 생물기술에 대한 것이다. 제7권은 중국 과학의 사회적 배경을 다루는 결론에 해당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처음 계획은 크게 확대됐다. 제4권이 3책으로 나누어졌고, 지금까지 제5권이 9책, 제6권이 5책, 제7권이 1책 출판됐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처음에는 몇몇 중국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니덤 혼자서 진행했던 작업이, 이후 각 분야의 전문 연구자 여럿이 참여하여 해당 분야를 전담하여 집필하는 형태로 바뀌었다. 현재는 ‘니덤연구소‘가 중심이 돼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처럼 방대한 규모의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는 중국 전통 과학의 성과가 아주 분명하게 담겨 있다. 이를 통해 그 전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국 과학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이것은 동시에 서양 이외의 다른 문화권에도 상당한 수준의 과학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의 곳곳에서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 과학이 중국 과학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과학의 본질이나 근대 과학의 성격을 다시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즉, 니덤의 “모든 민족과 문화의 고대 및 중세 과학은 근대 과학의 대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강물들”이라는 유명한 비유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근대 과학은 ‘유럽적인’ 또는 ‘서양적인’ 과학이 아니라 보편적으로 유효한 세계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 과학의 형성에 중국 과학이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며 학계 전반에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그에 대한 비판 또한 적지 않게 제기됐다. 먼저 처음 계획과 달리 규모가 확대되고 독립적인 개별 연구자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책 전체의 일관성이 떨어지게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결함이 됐다. 그리고 이 책의 導論에 해당하는 제1권과 제2권은 니덤 자신의 중국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깊어지기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수정이나 보완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부분에 비해 그 이용가치가 매우 떨어지게 됐다. 또한 니덤이 중국 과학을 그 자체로 바라보지 않고, 현대 과학을 잣대로 삼아 그것을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태도를 취한 것도 많은 비판을 받았다. 예를 들어 니덤은 제3권의 하늘의 과학에 속할 天文이나 땅의 과학에 속할 風水地理와 같이 중국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분야를 모두 ‘사이비 과학(pseudo-science)’으로 취급하여 제대로 살펴보지 않았다. 오히려 제4권에서 다룬 물리학은 하나의 독자적인 분야로 자리잡지 못하고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존재했을 뿐이었음에도, 니덤은 그것을 억지로 묶으려 하였다. 다분히 비역사적인 이런 관점은 중국과학사를 중국 역사 속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커다란 장애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중국의 과학과 문명’은 중국은 물론이고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갖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과학사 연구자들에게 상당한 자극이 되어 자국의 과학 전통을 찾아내려는 많은 노력을 가져왔다. 이 책은 그들에게 좋은 안내서이면서 동시에 반드시 넘어야 할 벽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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