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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문학속의 파시즘』(김철·신형기 외 지음, 삼인 刊)
[쟁점서평]『문학속의 파시즘』(김철·신형기 외 지음, 삼인 刊)
  • 황종연 동국대
  • 승인 2001.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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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이라는 모호한 가설

황종연 / 동국대·국문학

‘문학 속의 파시즘’은 도전적인 저작이다. 그동안 한국근대문학연구에서는 ‘민족문학사’로 대표되는 종래의 관행에서 탈피하려는 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주제 설정에서나 이론 탐구에서나 이 공동저작만큼 강력한 수정주의적 발상을 보여준 작업은 드물다. 김철, 신형기를 비롯한 연세대 국문과 소속 젊은 저자들은 파시즘과의 관련이라는 관점에서 한국근대문학, 문학연구, 문학교육을 검토하는 가운데 파시즘이라는, 어쩌면 한국근대문학의 歷史像을 크게 바꿔놓을지 모를 한 주제를 문학연구의 현안으로 상정하는 데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근대문학의 맥락 속에서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사유하는 한 유력한 방식을 제시했다. 저자들의 수정주의를 좀더 상술하자면 그것은 아마도 문화정치학(politics of culture)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파시즘이라는 모호한 가설

문화정치학이 일반적으로 그렇듯이 저자들의 연구는 탈신비화 작업을 수행한다. 저자들이 탈신비화하고 있는 것은 어떤 특정한 문학적 권위나 업적이라기보다 근대적인 의미에서의 문학 그 자체이다. 문학이 과학이나 도덕과는 별개의 자율적 영역을 이룬다는 근대적 통념을 거슬러서 저자들은 20세기 유럽에서 문학적 이상과 파시즘 정치의 유착을 가져온 ‘정치의 심미화’를 참조하는 한편, 한국에서의 문학 담론이 어떻게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와 결합하는가를 고찰한다. 파시즘을 근대의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근대성의 한 속성이라고 간주하는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한국문학의 파시즘과의 연관은 역사상의 우연이 아니라 한국문학의 근대성 그 자체의 발로인 셈이다.

이러한 자율적 문학의 자기배반이라는 문제는 ‘문학 속의 파시즘’에 다루어진 다양한 논제들 중에서 단연 중요하고 흥미롭다. 그것은 작가 개인의 정치적 신념이나 처신보다 훨씬 심층적인 차원에서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관계를 생각하게 해준다. 하지만 한국문학에서 자율성의 원리에 입각한 문학이 파시즘 이데올로기에 연루되었다는 저자들의 주장은 아직은 불안한 가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말하자면 한국인의 정치적, 사회적 삶에 작용하는 파시즘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시즘이 아무리 야누스의 얼굴을 한, 복합적인 이데올로기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체주의, 국가주의, 민족주의, 남성주의, 민중주의 등과 같은, 사실상 모든 종류의 기율 또는 통제의 기제들과 연계시키면 결국 파시즘의 개념이 공소해지기 쉽다.

또한 자율적인, 혹은 심미화된 문학이 파시즘 정치와 결합하는 방식에 관한 이론에는 적지 않은 쟁점이 있다. 예컨대, 한국 근대문학에 성립된 미의 이념이 전체주의의 기획에 통합되었다는 논고를 보자. 논자는 문학의 심미화를 가능하게 만든 ‘부분화’ - 참조된 영어 원문에 좀더 충실하자면 斷片化 - 는 분화된 삶의 영역들의 ‘전체화’와 함께 진행된다는 가설에서 출발하여, 심미화된 문학은 그러한 전체화의 경향에 상응해서 ‘전체주의’에 봉사한다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삶의 전체화(totalization)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와 동일한 것이 아니다. 단편화된 인간 생활을 통합하려는 노력이 전체주의와 같은 중앙집권적이고 획일적인 조직화로 귀결된다는 생각은 근대 정치나 문학의 역사에 실제로 나타난 통합의 비전들의 차이를 헤아리지 않은 무리한 일반론이다.

통합의 비전에 포함된 차이 간과할 우려

미적인 것의 이데올로기는 ‘문학 속의 파시즘’의 저자들이 공유하고 있는 중요한 관심사 중의 하나이다. 이광수의 미적 교육론, 남한의 순수문학, 북한의 항일역사물 등과 같은 다양한 논제에서 미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연관은 빠짐없이 역설되고 있다. 그 연관은 물론 강조할 가치가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한국문학에서 정치의 심미화는 서로 분화된 미학과 정치의 위험한 통합이라기보다는 허약하고 기만적인 미학적 사고의 발현이라고 이해할 여지가 많다. 미학적으로 옳지 않은 것은 정치적으로도 옳지 않다.

미적인 것에는 억압과 통제의 원천만이 아니라 해방과 전복의 원천도 들어 있다. 이러한 미적인 것의 양면성에 대한 고려가 소홀한 것은 ‘문학 속의 파시즘’이 선사하는 모든 각성의 기쁨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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