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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와 같은 일부가 된 미디어, ‘몸의 역할’ 재발견 
신체와 같은 일부가 된 미디어, ‘몸의 역할’ 재발견 
  • 김봉억
  • 승인 2022.03.16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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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④ 영상미디어에서 이미지의 체화·탈체화

 

인지적 패러다임은 그 시작이 학제 간 통섭과 융합에서 시작된 만큼 여러 학문 분야와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런 경향은 영화, 영상미디어 연구에도 이어져 영상 미디어에 대한 역사적 조망과 미래에 대한 예측을 제공하고, 현실과 이상을 연결시키는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수신문> 특별기획 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네 번째는 ‘영상미디어에서 이미지의 체화·탈체화’를 다룬다. 영화학을 기반으로 시각 예술과 영상 미디어 연구로 외연을 확장하고 있는 정찬철 부경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언론정보전공)와 이상욱 동의대 교수(미디어·광고학부 신문방송학전공)가 각자 관심을 두고 있는 포스트휴머니즘, 신유물론, 체화된 인지와의 소통 가능성 그리고 몸, 뇌 그리고 환경과의 관계에 영상 미디어에서의 다양한 현실적 이슈들에 대해 논의를 펼친다.

동년배인 두 사람은 1990년대 후반 영화와 영상을 처음 공부하던 때와 현재의 논의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기호학-정신분석학-거대서사 중심의 영화 공부가 이제는 다양한 인문·사회학적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 텍스트 해석 중심이던 영화 비평도 이제는 다양한 학문적 기반을 근거로 더욱 확장돼 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흐름과 더불어 기존의 필름과 선형적 스토리텔링의 영화·영상 제작도 디지털 영상을 기반으로 OTT, VR, AR 그리고 최근의 메타버스 공간으로 확장되었으며, 이런 물질적 변화 역시 기존과 다른 영화·영상 연구 나아가 종합적인 시각과 현실적인 문제해결 능력을 동시에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두 사람의 논의는 다른 방향으로 공부했음에도 같은 지향점으로 모아진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영상 연구의 확장과 체화 인지

이상욱(이하 이) : 정찬철 교수님, 교수님과 동문수학하며 영화에 대하여, 예술에 대하여 이야기 나눈지 벌써 20여 년이 지났군요. 이런 좋은 자리에서 다시 이야기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특히 같은 영화, 영상, 미디어를 공부하면서도 저는 방송, 상업영화, 융복합영상 현장으로 뛰어다녔고, 교수님께서는 예술영화 제작과 해외 수학 그리고 VR, 디지털영상 등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연구 활동으로 서로 조금은 다른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정찬철(이하 정) : 저 또한 다시 함께 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의 1929년 걸작 「카메라를 든 사나이」라는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영화와 모든 영상 미디어는 우리 몸에 최적화된 문화기술입니다. 이런 자리에서 몸과 미디어 그리고 그 관계와 구조에 대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오늘 대담의 방향과 결말이 어떻게 흘러갈지 무척 기대됩니다.

저는 그동안 영화와 영상미디어라는 미디어 기술이 어떻게 인간에게 가치를 형성하고 변화하는지를 초기 영화부터 현대의 디지털 영상까지 거슬러가거나 서로 교차시키며, 그것의 변화와 반복의 흐름을 추적하는데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영화의 역사는 영화의 시기에만 한정해 보면, 지엽적인 해석과 관점에 갇힐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독일 미디어 학자 지크프리트 칠린스키(Siegfried Zielinski)가 『오디오비전』에서 명쾌히 보여주었듯, 영화를 광대한 영상 미디어의 관점에서 보면 파노라마, 디오라마, 매직랜턴, 필름, 텔레비전, 디지털 영화 등의 서로 다른 영상 미디어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최근에는 영상 미디어를 대상이 아닌 기술적 객체로, 휴머니즘의 관점으로부터 최대한 비켜서서 바라보기 위해, 포스트휴머니즘과 미디어고고학 등으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그랬을 때 오늘의 논의 주제인 우리의 몸과 영상 미디어의 상관관계를 보다 체계적, 그리고 일종의 연합(networked)의 관계 혹은 체화 인지의 핵심인 상황(situations) 속에서 조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체화된 마음에 대한 연구가 참 흥미로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어떤 면에서는 현상학을 중심으로 한 인문학적 연구의 방향과 일맥상통하면서도 굉장히 자연과학적인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한다는 점에서 새로웠습니다. 

이 : 체화된 인지는 주로 관념적 사변과 역사적 사실 연구에 집중되던 영화 연구의 확장에도 매우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분류하자면 자연과학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학, 뇌과학, 생물학 등의 성과를 직접적으로 적용하고 이를 통해서 다시 철학적이며 역사적 조망을 새롭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영상 제작의 이슈들에 대해 실질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점 또한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어떤 영상이 왜 인간에게 매력적이고, 필요한가?’, ‘영상 제작과 관련된 여러 선택의 순간에 어떤 것을 택할 것인가?’와 같은 현실적인 주제들에 대하여 체화된 인지가 직접적이며 효과적인 설명을 해준다는 점이 저에게는 매력적입니다. 이런 부분은 그동안의 영상 미디어 연구에서 부족했던 부분이지요. 

정 : 저는 포스트휴머니즘과 신유물론 논의에서도 체화된 인지의 개념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탈인간중심적인 사유인 포스트휴머니즘과 신유물론은 인간 대 기계, 인간 대 자연 등과 같은 인간 중심의 배타적인 이분법적 대립 구조를 벗어나, 통합적 사유를 시도하는 거대한 우리 시대의 철학 프로젝트입니다. 체화된 인지에서도 사람과 환경, 그리고 환경 속에서의 상황과 관계를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고 느꼈습니다. 환경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주요한 요소로 본다는 것은 최근의 포스트휴머니즘과 만날 수 있는 고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 저 역시 말씀하신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인지주의가 인공지능에 대한 공학적, 철학적 관심에서 시작되었으며, 최근 체화인지 논의에서 환경과 세계와의 관계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 논의와 많은 연결점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영상미디어에서 탈체화

정 : 이제 영화나 의사소통 미디어가 인간의 감각을 대체하고 기록한다는 점에서, 그것이 인간을 탈체화시켰다는 논의를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인간은 보는 행위를 대체하고 그것을 신체와 분리하여 기록할 수 있음으로 몸과 분리된 인지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디지털 시대에 강화되었지요. 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공간적 한계를 넘어 누군가와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몸이라는 맥락을 잃어버린 채 부유하는 자신의 이미지들만을 무수히 반복 복제하고 있는 듯합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저장된 나의 모습, 검색 결과로 펼쳐지는 나의 사진들, 휴대폰 통신을 통해 전송되는 다량의 사진들을 떠올려보면, 여전히 우리는 신체를 기록하지만, 상대방이 인지하는 것은 오로지 신체의 이미지일 뿐, 신체는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영화 역사 초창기 때부터 자주 반복 등장하는 도플갱어 서사도 신체 이미지의 복제 가능성이 낳은 결과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 도플갱어 서사를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최근 넷플릭스 오리지널의 완벽한 디지털 영상들은 오히려 생경함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고 깔끔하지만 삶과 유리된 채 녹아들지 못하는 듯한 감각적 경험은 이런 디지털 영상들이 몸의 불완전성, 개인적 지각의 맥락을 탈각시키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점에서 VR 미디어가 가진 한계도 이런 탈체화의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인간의 인지를 그대로 재현한다고 주장하는 VR 미디어는 오히려 몸과 맥락을 잃어버리고 종합적 인지 체계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하듯 체화-탈체화의 문제는 새로운 미디어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정 : 저는 이 지점에서 다시 탈체화, 다음이 궁금해집니다. 인간은 근대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인지의 방식이 문자, 원거리통신, 라디오 등을 통해 정보를 나눌 수 있는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게 되었지만 탈체화가 되면서 오히려 직접적인 소통에 대한 욕구가 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다른 기술적 방편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 미디어이론가 브렌튼 J. 마린(Brenton J. Malin)은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어 원거리 탈신체화 문자기반 통신이 일상화되면서 감정이나 얼굴표정을 표현하려는 상형문자가 동시에 증가한 점을 지적하면서 미디어를 정보만을 전달하는 차가운 대상이 아닌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장치로서 강조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이모티콘을 텍스트 기반 통신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디지털 가상 세계 속에서 나와 닮은 아바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모두 탈체화의 역반응입니다. 체화와 탈체화는 서로 대립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인지를 구성하는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한편으로는 체화 인지 내에 탈체화가 내포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 속에서 포스트휴머니즘과 신유물론적 사유가 만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 저는 미디어에 의해 탈체화된 인지가 현대에 이르러 다시 정반합의 관계로 다음 단계에 이르렀다고 봅니다. 지각을 탈체화 시켰던 미디어가 우리에게는 이제 너무도 익숙해진 인지의 한 부분으로 작용하면서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다시 재체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50~200년 전 인간은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자신 외부에서 내부로 가져올 수 없었지만, 현대의 인간은 미디어를 통해 학습하고 생각하고, 즐기고,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어쩌면 현대의 인간은 기존의 내부와 외부의 경계선을 미디어로 흐려놓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는 우리의 신체와 같은 일부가 되어 ‘재체화’된 형태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메타버스나 AI 등의 다음 기술발전들이 벌일 변화들에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영상 미디어의 재체화가 선험적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 그리고 이런 체화에 대한 전체적 조망은 그동안 관계에만 집중했던 미디어 생태학에서도 새로운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특히 미디어 생태학 중에서, 프리드리히 키틀러 이후 독일 미디어학자들이 기술결정주의라는 외부의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과 미디어와 문화의 통합적 사유의 가능성을 탐구고자 구축한 문화기술학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이 : 지금까지 논의를 정리하자면 영화와 영상 미디어에서 몸의 역할에 대한 재발견, 미디어와 환경과의 관계 및 구조 등은 미디어생태학(문화기술학), 포스트휴머니즘 논의에 있어서 중요한 논의이며 이는 체화된 인지 연구와 그 흐름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Covid-19 팬데믹 이후, 저 스스로는 우리 삶에 대한 생태적 관심을 도외시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금 제임스 깁슨(James Gibson)의 생태학적 지각론에 다시 관심이 갑니다. 최첨단 미디어로 논의되는 VR, AR, MR, 메타버스 등 실감형 미디어 시대에 생태적 접근은 현재의 문제를 해석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할 것이라고 봅니다. 마치 체화인지 연구가 영화의 이해에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정 : 저도 실감미디어를 인지이론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실감미디어는 인간과 미디어의 완전한 결합을 의미합니다. 가상현실 공간에 들어가기 위해 신체는 필수이며, 증강현실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그동안 개발된 모든 미디어가 꿈꾸는 완전한 신체의 연장이자 결합을 우리는 실감미디어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바쟁의 표현을 빌려 실감미디어를 ‘완전 미디어 total media’라고, 그리고 실감미디어와 인간이 완전히 결합된 상태를 ‘완전 체화의 미디어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부분에 대한 이론적, 역사적 연구가 진행될 수 있다면 즐거울 듯합니다. 

이 : 오늘의 대담이 매우 유익했습니다. 마침 같은 지역에 새로 부임하시게 되었으니 앞으로도 더욱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찬철 부경대 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언론정보전공)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서 석사를, 한양대에서 영화학 박사를 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포스트시네마, 시각효과, 미디어고고학, 문화기술 등이다. 주요 논문으로 「포스트시네마로의 전환」, 「완전 영화의 테크놀로지: 바쟁, 시네마스코프, 공간 영화」 등이 있다. 「키틀러 이후: 최근 독일 미디어 이론으로서 문화기술학에 관하여」 등을 번역했다. 

이상욱 동의대 교수(미디어·광고학부 신문방송학전공)
한양대에서 영화이론으로 박사를 했으며 상업영화 조감독, 융복합공연 영상디자인, 방송제작 등에 몸담았다. 주요 논문으로 「VR ‘완전영화’의 불가능성 : 체화된 인지를 중심으로」, 「소통하는 기계, 확장되는 인간 : 체화된 인지관점으로 본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 등을 썼다. 공동 저서로 『몸과 인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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