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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미학
절제의 미학
  • 안석교 / 서평위원·한양대
  • 승인 2001.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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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과정은 끊임없는 ‘문제’ 해결과정이다. 그 중 일부는 이해가 가능한 것들도 있으나 어떤 문제들은 해결하기가 몹시 어렵다. 많은 경우 명료한 답을 구하기가 어려운 문제들은 대체로 여러 학문분야들이 교차하는 교집합의 영역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전공분야간의 연계접근이 없이는 규명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가령 경제체제의 문화적 토양에 관한 질문이 그것이다.

우연스럽게 法頂 스님의 ‘무소유’를 비롯한 몇 권의 불교관련 수필집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된 질문 중의 하나는 이기주의와 욕구충족의 극대화가 공리로 정립된 서구적 경제행위와 동양(한국)사상의 괴리에 관한 것이다. 空, 無, 그리고 虛를 지향하는 불교사상이나 無爲自然의 도가사상, 그리고 유교의 中庸之道를 근간으로 한 동양문화권에서 자본주의적 극대화의 논리는 이식이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전통적 동양사상은 이제 행위규범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한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60년대 이후의 우리 사회나 70년대 말 이후 중국의 경우를 보면 축적지향적 자본주의정신이 급속하게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축적의 성향, 한푼이라도 더 벌어들이고자 하는 욕구는 기실 자본주의 경제발전의 정신적 동인이다. 이러한 점에서는 한국과 중국의 가속적인 공업화 과정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문제는 이들 동양국가에서 유·불·선의 문화전통이 이제 더 이상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규범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서구에서도 중세의 종교사상이나, 스콜라철학의 금욕사상이 확대재생산의 제약문화로 작용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근대시장사회에 들어서면서 서구의 기독교윤리는 베버가 주장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 발전에 순기능적으로 작용해온 것이었다. 반면, 우리의 경우는 물질적 풍요를 위해 ‘전통의 짐’을 팽개쳐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끝없는 생산력의 축적과정에서 발생하는 자연파괴현상이나, E. 프롬이 지적한 바와 같이 소유에 따른 실존의 빈곤현상 등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당면한 핵심사안들이다. 지구적 차원에서 확산되는 경쟁의 심화, 지속적 구조조정에 따른 불확실성의 증폭에 따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에 대한 열망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이나 고용의 안정성 제고, 재정의 사회정책적 기능의 강화와 같은 정책이 강화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소유의 철학을 접하면서, 어렴풋이 갖게 되는 결론은 ‘절제의 미학’이 갖는 중요성이다. 불교와 같은 종교를 중심으로 현대사회에서 절제된 욕구, 소유의 절제가 갖는 의미가 좀더 설득력 있게 부각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물질문명의 해독에 대한 처방으로 동양사상의 의미가 재조명되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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