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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의 착각(3)
교수의 착각(3)
  • 박구용
  • 승인 2022.03.15 08: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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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_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교수에겐 정해진 출퇴근이 없다. 일주일에 9시간. 책임 강의시수를 빼면 자유롭다. 더구나 1년 365일중 155일이 방학이다. 1년 15주 2학기, 30주에 9시간을 곱한 270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에 교수는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또 아무 것도 안 할 수 있다. 부러움 살만하다. 하지만 이런 조건 때문에 교수들의 건강은 매우 취약하다.   

몸 건강은 평균적이지만 마음 건강은 최악에 가깝다. 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연구 압력이 교수들의 일상을 짓누른다. 출퇴근은 없지만 교수의 뇌는 항상 출근중이다. 무슨 일을 하고 있던 상관없이 연구 주제가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쉬는 시간, 노는 시간에도 두뇌는 일을 하니 정신에 활기가 없다.   

둘째, 연구 압력에 시달리는 교수들 대부분이 공부는 하지 않는다. 연구와 공부가 서로 다른가? 다르다. 연구는 특수한 문제를 찾아서 풀이하는 과정이다. 연구는 점점 전문화되고 있다. 그만큼 세분화되고 깊어진다. 반면 공부는 다양한 세계를 횡단하는 지적 산책이다. 섬세하게 파고드는 공부도 있지만 한 웅덩이만 파는 공부는 없다. 그래서 공부하지 않는 연구자는 그저 한 분야의 전문가일 뿐이다. 연구를 공부로 착각하면 병든다.   
“공부를 잘한 사람은 착하고, 성실하고, 이타적이고, 남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대부분의 학자나 사자 직업 분들은 본인이 그런 사람이라 착각하죠. 다른 이들이 본인들에게 예의를 차리고, 또 추앙 받아야 한다 생각하죠. 이건 착각 입니다. 학자들은 본인들의 지적욕구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사람들일 뿐입니다.” 

내가 출연하는 방송을 듣고 해외에서 어떤 분이 보낸 메일을 읽으며 뜨끔했다. 나 역시 공부를 게을리 한다. 그래서 착하지도 않고 이타적이지도 않은가보다. 연구자로서 존경받고 싶은 욕망은 크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부에는 관심이 적다. 이처럼 공부하지 않는 교수는 자신의 연구 성과가 갖는 빛에만 열광할 뿐 그것의 그림자에는 등을 돌린다.   

1892년 오스트리아 교육부의 예술평의원회는 화가 클림트에게 빈 대학 강당의 천정화 3점, 철학, 의학, 법학의 정신을 그림으로 표현해 달라고 의뢰한다. 1907년 완성된 작품들은 교수들의 강렬한 반대 때문에 걸리지 못하고 퇴폐미술이라는 낙인과 함께 나치에 의해서 불태워진다. 교수들의 거부감에 대해 클림트가 말한다. 

“대학 교수들이 보고 사랑하는 세계가 아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어두움에 대한 빛의 승리는 내 것과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헌납한 홀에 그들이 묘사하기를 바랐던 관념과는 거리가 멀다.” 

한 곳만 파는 교수들은 그곳에서 길어 올린 물에도 독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지식이라는 약물중독에 걸린다. 약과 독을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 빠진 교수들은 자신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인 냥 착각한다. 모처럼 공부 조금 하면, 다른 분야 책 몇 권 읽으면 다 아는 척한다. 연구를 공부로 착각한 교수 못지않게 공부를 연구로 착각한 교수의 정신도 건강하기 힘들다. 그러고 보니 안철수도 교수였다. 

박구용 편집기획위원
전남대 철학과·광주시민자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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