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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파노라마] 도시에 식물원이 왜 필요할까
[디자인 파노라마] 도시에 식물원이 왜 필요할까
  • 조경진
  • 승인 2022.03.17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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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디자인 파노라마 ⑨_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팬데믹은 2년째 이어지고 있지만, 따뜻한 봄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봄을 느끼기 위해 여러 나들이 명소를 찾을 것이다. 식물원도 그 명소 중 하나다. 다양한 식물을 접할 수 있으니 아이들에게 자연과학을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다. 동시에 식물원은 도시를 디자인하는 데 하나의 상징이다. 정원 디자인 전문가 조경진 서울대 교수(환경조경학과)가 왜 도시에 식물원이 필요한지 디자인학으로 파헤친다. 조경진 교수는 독자들에게 “봄날 식물원 나들이를 권해드린다. 설강화, 복수초, 크로커스 등이 피어나는 풍경을 곧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매화와 벚꽃, 튤립이 만발할 봄이 기다려진다”라고 전했다.

202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참여작인 ‘식물극장’. 사진=조경진
202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의 참여작인 ‘식물극장’. 사진=조경진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19로 일상 패턴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는 것이었다. 대신에 로컬 라이프에 익숙해졌다. 집 주변 카페에서 일하거나, 동네 공원을 산책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틈나면 근처 숲을 찾아 밝은 햇빛 아래 맑은 공기로 숨쉬는 시간을 가지곤 했다.

팬데믹은 생활 주변 자연의 소중함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 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예술 디자인 전반에도 나타나, ‘식물’이나 ‘정원’과 관련된 전시나 출판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전시 영역에서만 살펴보면, ‘식물예찬’(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2021), ‘덕수궁프로젝트: 상상의 정원’(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2021), ‘정원 만들기’(피크닉, 2021) 등 최근 다수의 전시가 개최되었다. 식물과 정원에 관한 관심으로 반려식물이나 플랜테리어의 수요도 늘었고, 최근 식물원을 찾는 방문객이 크게 늘었다. 서울식물원의 경우 코로나19 이전(2019년 5월~2020년 2월)과 이후(2020년 3월-2021년 4월) 이용객 수를 비교하면 각각 241만6천46명과 526만2천300명으로, 두 배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

 

큐 가든에서 만난 스노우드롭. 사진=조경진
큐 가든에서 만난 스노우드롭. 사진=조경진

식물원, 순수과학연구에서 정치적 목적까지

필자는 2013년부터 서울식물원 총괄계획가로 일하면서 전 세계 식물원을 답사했다. 2014년 2월 런던 외곽 큐 가든(Kew Garden)에서 보았던 스노우드롭(snow drop)의 강한 인상은 아직 잊을 수 없다. 겨울 식물원 답사는 다른 계절처럼 화려한 꽃과 신록을 만나기 어렵다. 대신 겨울에 식물원을 찾게 되면 스노우드롭이나 크로커스 등이 언 땅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다. ‘눈 방울’ 혹은 ‘눈 귀걸이’와 같은 이 꽃은 ‘설강화(雪降花)’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 2019년 초여름에 다시 큐 가든을 찾았다. 121헥타르의 넓은 대지는 울창한 숲, 다양한 주제 온실과 전시관, 진기한 나무와 형형색색의 초화류로 채워져 있었다. 1759년 현재 자리에 터전을 마련한 큐 가든은 2만7천여 종의 식물 종을 보유하고 있고, 350여 명의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고 하니, 식물 보존과 연구에서 단연 앞서 있다 하겠다. 큐 가든은 대영 제국주의가 번창할 때 큰 역할을 했다. 영국령 식민지에서 식물을 가져다 종 개량을 거쳐 식용작물로 활용하곤 했다. 전 세계로 퍼져나간 차와 커피, 바나나, 파인애플 등이 그러한 예다. 식물원은 순수한 과학연구의 공간이라기보다 알고 보면 국가경영이라는 정치적, 실용적 목적으로 활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싱가포르 식물원 입구(왼쪽)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클라우드 포레스트 입구에 있는 폭포(오른쪽). 사진=조경진
싱가포르 식물원 입구(왼쪽)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클라우드 포레스트 입구에 있는 폭포(오른쪽). 사진=조경진

우리에게 익숙한 외국 식물원은 싱가포르 식물원과 가든스 바이 더 베이(Gardens by the Bay)다. 싱가포르 식물원은 시내 중심에 위치한 유서 깊은 식물원이고, 2012년 싱가포르 베이 지역에 개장한 새로운 식물원이 가든스 바이 더 베이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열렸었다. 전 세계 이목이 쏠려 있는 회담 전날 밤, 김정은 위원장은 가든스 바이 더 베이 플라워돔 온실을 방문했다. 2018년 7월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싱가포르 식물원을 방문했는데, VIP용 프로그램인 난초명명식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국빈이나 저명인사에게 국화(國花)인 난초의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이름을 붙여주는 행사였다.

싱가포르 식물원은 1822년 개척자인 래플스 경이 소규모의 식물원을 조성했는데, 이후 자리를 옮겨 1859년 문을 열었다. 초기에는 큐 가든과 협력하면서 식민지 식물원으로서 식물 연구뿐만 아니라 고무나무 등을 증식 및 개량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65년 영국으로 독립 이후 리콴유 수상의 나무 심기 운동을 지원하는 기능이 강화되었다. 나무 심기 캠페인 지원, 도시 녹화 및 원예 기술 보급 등으로 정원 도시를 만드는 일에도 식물원은 큰 역할을 하였다.

한편 가든스 바이 더 베이는 도시의 신개발지를 견인하는 관광지 성격이 강조된 식물원이다. 슈퍼 트리의 화려한 야간 조명 쇼와 온실인 클라우드 포레스트(Cloud Forest)에 들어서 만나게 되는 폭포는 인상적인 풍경을 제공한다. 두 개의 성격이 다른 식물원은 정원도시 싱가포르의 비전을 담는 상징적 공간이다.

 

제2, 제3식물원이 필요한 서울

도시의 식물원은 그 도시의 문화 수준을 반영한다. 많은 외국 중소도시들도 도시를 대표하는 식물원이 있고, 뉴욕시에는 식물원이 3개나 있다. 서울의 경우, 다른 외국 도시보다 식물원 발달이 늦었다. 1909년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개조하면서 온실을 만들었다. 서울 최초의 식물원인데, 제대로 된 연구와 보전의 기능이 미약했으며 공공 공간을 장식하는 목적이 강했다. 이후 1980년대 창경궁의 원모습을 복원하면서 식물원 기능은 소멸했다.

이후 남산 회현 자락에 한동안 남산식물원이 있었다. 1968년 서울시는 온실 위주의 식물원을 만들면서 제대로 된 수집 계획이 없어서 월남 파병 용사들에게 식물을 가져오게 했다고 한다. 초기 전시식물마다 파병 용사들이 가져온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했다. 전사한 장병이 보낸 식물을 관람하며 방문객들이 뭉클했다는 기사도 발견된다. 1973년 재일교포가 기증한 선인장을 수용하고자 식물원 온실을 늘려 재개원했다. 식물 수집을 기증자에게 의존했으니, 식물원 운영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2006년 ‘남산 제 모습 찾기’ 사업의 일환으로 남산식물원은 철거됐고, 이곳의 식물들은 서울대공원 등 전국 각지로 흩어지게 된다. 이후 한동안 서울 시민은 제대로 된 식물원이 없는 도시에서 지내게 된다.

2019년 마곡지구에 서울식물원이 문을 열었다. 호수와 잔디밭, 습지원, 주제원, 마곡문화관 등 다양한 공간이 있고, 무엇보다도 온실 외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0월에는 식물원 내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LG아트센터가 들어설 예정이다. 2022년 2월 기준 1천500만 명이 방문했다고 하니, 이제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명소가 되었다. 그러나 외국 도시의 식물원에 비해 면적도 상대적으로 협소하고 운영 예산도 적은 편이다. 제2, 제3의 서울식물원이 생겨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다른 도시들도 식물원을 조성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 식물과 가깝게 사는 라이프 스타일, 기후 위기와 팬데믹의 시대에 도시생활자가 사는 법일 것이다.

 

조경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환경조경학과 교수

2013년부터 2019년까지 서울식물원 총괄계획가(MP)로 일했다. 공공부문이나 비영리부문에서 도시 공원과 공공 공간 정책 자문과 기획하는 일을 했다. 도시 공원과 공공 공간이 만들어 내는 사회적 가치창출에 연구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정원을 말하다』(나무도시, 2013)(역서) 등 다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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