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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이사: 노동과 창조
학이사: 노동과 창조
  • 서도식 서울대
  • 승인 2005.11.1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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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술대학으로의 진학을 위해서 공부하던 그 시기만 하여도 막연하지만 피카소와 같은 천재 예술가를 꿈꾸었으며, 그래서 나는 테레핀의 진한 송진 냄새를 평생 맡고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운명에 대한 나의 착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유년시절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스케치하면서 가슴 한구석에 남겨놓았던 그림에의 순수한 사랑은 미술대학에 입학하면서 치열한 고통으로 바뀌었고, 축축한 지하 화실에 번져있던 진한 곰팡이 냄새도 야외 이젤과 물감 박스에 담겨졌던 낭만적인 풍경도 더 이상 만나기 어렵게 되었다.

천재들만의 특별 무대인 미술관이나 전시장에서 만났던 예술가들의 거침없는 표현 언어들을 나도 언젠가는 마음껏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은 응용미술과로 진학하면서 접어야만 했고, 대신에 디자인이라는 생소한 용어를 자주 접하면서 순수의 반대쪽에 있는 개념들과 친해져야 했다.

감각이 안내하는대로 자유롭게 그어 나가던 선은 합목적적 방향키의 지시에 따라 엄격하게 조정되거나 멈추어졌으며, 천방지축의 창조의지는 물리적인 기능성과 효용성의 조건에 의하여 통제받기 일쑤였다.

 학부 시절 공예를 전공으로 선택하게 된 배경은 계획적이고 기계적인 설계를 전제하는 디자인에 대한 부적응과 순수미술에의 미련이 합치된 결과로 기억된다. 공예는 아이디어보다 매우 촉각적이면서 때로는 큰 몸짓까지도 필요로 하는 노동을 원동력으로 한다.

나는 처음부터 점토작업과 금속작업에 직관적으로 이끌렸으며, 힘든 작업과정에서 흘리는 땀의 양이 많을수록 그만큼 희열감이 커지는 것도 느꼈다. 형태를 빚는 기술이 간단치는 않아서 숙련될 때까지 계속 손의 관절 움직임이나 근육을 길들이는 것이 마치 운동 레슨을 받는 것처럼 반복적이기도 하였지만, 재료에 순응하는 태도로 몸의 움직임을 맡기면서 그리 오래지 않아 기본 기술 정도는 쉽게 체득할 수 있었다.

 미국 하버드 대학의 가드너(Howard Gardner)교수는 그의 연구 보고서에서 육체적인 지능이 운동선수와 댄서, 장인의 기술 등에 공통적으로 작용하며, 장신구를 제작하거나 물레로 항아리를 만드는 행위 모두에 뛰어난 생물학적인 운동신경의 조절이 요구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반복적인 연습을 필요로 하는 금속판재의 땜과 문양 조각 일 등은 원활한 신경회로의 유전적 재능이 많은 친구들이 더 빨리 정확하게 처리하였다.

 금속을 주요 매체로 다루는 금속공예는 탄력적이고 율동적인 근육의 움직임을 요구한다. 금속공예를 전공하는 여학생들이 종종 그들의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한쪽팔의 근육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면서 볼 멘 목소리로 “선생님 저는요 대학 들어와서 이런 일 하는 줄 몰랐어요. 그림도 많이 그리고 생각도 많이 하면서 디자인도 하고 예술도 하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라고 불평한다.

공예의 본질을 노동의 지나친 몰입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기술의 노동이 필수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이디어와 창조적 감수성이 없어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우리는 이따금 박물관의 진열장 안에서 탁월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조상들의 공예품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다. 이러한 문화재들을 정교한 기술과 노동의 산물로만 바라본다면 그 속에 융합되어 있는 너무 많은 침묵의 지식은 더 이상 어떻게 설명할 방도가 없다.

나는 학생들에게 전통적인 기술과 문화, 역사를 창의적으로 반영하는 선조 공예가들의 미적 감수성과 지혜가 노동의 방향을 조정함으로써 예술적 가치의 문화재 탄생을 가능하게 하였다고 강조한다. 현대공예가에게도 마찬가지로 필요한 덕목일 것이다.

 천재 예술가의 꿈을 꾸면서 미술대학에 진학하였던 나 자신이 장인정신을 숭고한 가치로 교육하는 공예가가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오랜 시간동안 반복해 왔던 망치질 때문에 굵어진 내 팔뚝을 기이한 눈으로 쳐다보는 학생들에게 긴 훈련을 견뎌낸 사관생도의 늠름함처럼 자랑스럽게 가슴을 펴고는 니체의 짜라투스트라 표현을 들려준다. “선택하는 일, 그것은 곧 창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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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애숙 2005-11-24 08:27:35
매우 인상적인 글입니다.교수님을 오래전부터 알아서 더욱 공감이 갑니다.교수님의 작품은 교수님 얼굴을 보는것갗이 느껴집니다.항상 그렇게 순수하신 작품활동 하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