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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지역학의 群雄割據 시대 도래하나
흐름: 지역학의 群雄割據 시대 도래하나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5.11.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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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의 精神史 집결 … 지역학 트로이카 구축

湖南學이 공식 출범했다. 호남 정신의 학문적 정립을 표방하며 지난달 결성된 전남대 호남학연구단(단장 송정민 신문방송학과 교수)이 10일 창립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이다.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의 ‘한국학에서의 호남학’, 최대우 전남대 교수의 ‘호남학 연구의 회고와 전망’, 송일기 중앙대 교수의 ‘호남학 문헌자료센터 설립의 필요성과 과제’ 등이 발표됐다.

안동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을 일구었다고 평가되는 한국국학진흥원 측에서 김순석 수석연구원이 나와 일종의 선행사례로서 ‘한국국학진흥원 연구현황과 지향’을 발표하기도 했다. 호남학연구단이 향후 호남학문헌자료센터를 발족하게 되면 서울·경기 지역의 ‘한국학중앙연구원’, 영남 지역의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지역학의 트라이앵글 구도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한국학의 세분화 본격적으로 시작돼

호남학의 발족은 학문적 경계를 넘어, 지방화시대의 정착이라는 관점에서도 조명된다. 지방화시대는 그 지역의 삶의 총체를 객관화하는 학문적 기반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국학의 세분화 흐름으로도 살펴질 수 있다. 현재 각 지역별로 지역학이 매우 드세게 대두되고 있는데, 강원발전연구원, 인천발전연구원, 충남발전연구원, 부산발전연구원 등에서 추진하고 있는 강원학, 인천학, 충청학, 대전학, 부산학 등이 있으며, 각 지역 거점대학의 연구소와 연계가 이뤄져 토론회도 자주 열린다.

이들은 대개 지난 2002년부터 각 지방시도의 이름에 學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3년 정도의 연구력이 쌓이면서 서서히 모양새를 갖추는 곳도 적지 않다. 지역의 경제적 부흥을 도모하기 위한 정책적 연구에 치우친 타 지역에 비해 부산학과 인천학은 문화, 정치, 언어, 역사, 공간 등에 대한 밀착된 연구를 통해 지역의 고현학을 충실하게 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연구대상만 지역일뿐 그 내용은 전혀 딴판일 때도 많다. 가령 인천학연구원이 펴내는 ‘인천학연구’에 실린 ‘인천 시인들의 시적 경향 연구’은 인천출신 시인 3명을 비교 연구한 것인데, 시인이 출신지를 내면화하고 표출하는 방식의 차이를 다뤘다기보다는, 그냥 작품론에 그치고 있다. 현재의 지역학은 대개 이런 식의 목적과 결과의 불일치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호남학의 출범이 눈길을 끄는 것은, 지역의 문화유산을 정리하는 것에서 그 정체성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인천학 연구의 방법과 과제’에서 조우성 씨가 “지역사 연구에 있어 가장 먼저 수행해야 할 일은 문헌 자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는 것으로, 이는 연구보다 몇 갑절 중요한 사업”이라고 지적했듯이, 각 문중의 창고나 마루 밑에서 찬 이슬을 맞고 있는 문헌자료들을 수집, 분류, 관리, 해제하는 것은 너무나 시급한 일이다.

지역 문헌의 체계적 조사·수집 성과 가시화

이번 호남학 심포지엄에서 김대현 전남대 교수는 “전남대 호남한문학연구실에서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2년 호남 관련 문집의 총 조사에 착수해 3년간 호남지역 20세기 근대 한문 문집을 조사”한 것, 전13권으로 호남지역 판소리전집을 완간한 것 등이 이번 심포지엄의 바탕이 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호남지역이 “세계 최고의 문집 생산지”라는 점을 들며 “호남인 작가에 의해 남겨진 문집 3천여종과 미간행 문집도 수집해서 해제작업을 진행할 것”을 예고하기도 했다.

탈근대 학문으로서의 호남학으로

임형택 교수는 발표에서 “호남학이 한국학과 어떤 관련에 놓여야 하는지”를 강조했다. 임 교수는 “한반도상에서 호남의 역할을 설계하고, 동아시아에서 호남의 위치를 잡아주는 큰 경륜은 호남학이 감당해야할 제1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임 교수는 호남학이 중앙집권화된 학문의 근대화 틀을 깨고 지방대가 자신이 터한 지역의 문제를 끌어안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근대학문의 틀을 해체하여 통합하고 재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기존의 틀대로 가다가는 역사학, 국문학, 지리학 등으로 분할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학문 패러다임에 호남연구의 내용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순석 국학진흥원 연구원의 발제문은 지난 3년간 진행했던 학술연구 성과를 종합요약하는 것이었는데,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문집의 체계적 수집과 함께 문집을 찍어낸 목판을 수집하여 팔만대장경 같은 ‘유학장경 보관소’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안동을 중심으로 수집한 목판은 4만장에 이르고 있다. 또 하나는 총 12권을 계획하고 올해 1·2권이 나온 ‘한국유학사상대계’이다.

이런 선행사례를 염두에 둘 때 귀에 들어오는 것은 “영남권에는 실학이 발생하지 않았는데, 호남에서는 실학이 융성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임형택 교수의 질문이다.

즉, 호남학이 배타적이지 않은 선상에서 영남학과의 차별적 정체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탐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문집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도 짙은 전라도 지역의 ‘恨의 정서’나 ‘문인기질’ 같은 것도 역사적으로 살펴지길 기대해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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