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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해설] 나노과학의 현황과 전망
[과학해설] 나노과학의 현황과 전망
  • 교수신문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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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8 10:34:22
 ◇ 나노세계는 현실세계와는 다른 양자물리의 법칙이 적용된다. 자료사진-과학동아
제원호 / 서울대·물리학

20세기 자연과학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하면 아마 양자물리가 손꼽힐 것이다. 거시적인 현상을 설명하던 고전물리의 개념을 뛰어넘는 새로운 양자 개념이 도입되면서 오늘날 현대 과학기술의 근간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양자 개념은 우연히 생긴 것이 아니고 수소원자가 방출하는 분광학 에너지 스펙트럼의 실험결과들 즉 그 내부구조를 정확히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러한 위대한 발견이 20세기 초에 원자 하나 하나를 붙잡아 두고 연구하는 오늘날의 나노기술과 같은 첨단 조작기술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도리어 원자들이 시공을 초월해서 모두 정확히 동일한 물성(크기나 내부구조 등)을 가지는 독특한 성질 때문이다. 즉 한번에 많은 원자들을 관측하더라도 주위 환경의 영향이나 그에 따른 오차에 상관없이 단일 원자의 성질을 얻을 수 있는 분광학 방법들이 개발되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수소원자의 크기가 0.05 나노미터(1 나노미터는 1 미터의 십억 분 지 1)인 점을 생각하면 요즘 한창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나노과학의 영역(보통 수 내지 수십 나노의 크기)보다 훨씬 작은 미시적인 대상이 이미 1백년 전부터 연구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무한한 나노계의 응용 가능성

그러나 단일 원자나 단일 분자 등의 미시계보다 훨씬 크면서도 이것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전혀 새로운 중시계(mesoscopic system) 또는 나노계(nanoscopic system)에 대한 관심이 최근 고조되고 있고 또 그 응용가능성 때문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인공원자 또는 고체원자라고 불리우는 양자점이라는 반도체 양자구조에 관한 연구, 풀러린 C60을 포함하여 탄소 나노튜브 등의 거대분자에 관한 연구, 세포 안에서 각종 미세한 생물학적 조직들의 자기조립 또는 자기복제 성질에 관한 연구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나노계 영역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단일 원자와 달리 각 개체들의 크기와 모양이 서로 약간씩 다르고 그에 따라 물리 화학적 성질이 변하게 되며 특히 주위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다른 반응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들 각 나노계의 성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오차가 따르는 거시적인 평균적 연구가 아니라 단일 나노계의 물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연구가 필수적이다.

현재 이러한 나노과학의 연구를 위해 나노기술의 핵심인 주사터넬링현미경과 전자현미경 또는 원자힘현미경 등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단일 나노계 개체의 내부구조에 대한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고 특히 다양한 현상과 정보를 제공하는 분광학적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단일 나노계의 물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나노영역의 측정방법 즉 나노기술이 필요하게 되고 나노과학과 나노기술은 서로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나노기술이 가능한 것은 나노과학이 있기 때문이고 나아가 나노과학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나노기술의 뒷받침이 없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앞으로의 나노과학은 ‘다학제적’인 성격을 띌 것으로 기대된다. 즉 다양한 자연과학 응용기술 분야의 상호협력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의 상황은 주사탐침현미경 등의 나노기술을 사용하여 자연과학의 여러 분야에서 나노영역에서의 새로운 흥미로운 현상을 관측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단계를 지나면서 새로운 응용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단계이다. 기대하기로는 지난 세기에 단일 원자의 미시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양자물리가 탄생되었듯이 앞으로 펼쳐질 21세기에서는 미답의 나노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학문이 발견되기를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나노과학에서 파생될 수 있는 나노기술에 대해 언급해보자. 현대의 정보화 시대에서는 디지털 기술에 의해 정보의 복사가 빠르고 값싸고 완벽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복제 과정은 해당 정보를 얻는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었고 또 그 내용이 얼마나 복잡한 지와는 무관하다. 만일 이러한 일들이 정보의 세계가 아니라 물질의 세계에서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예를 들어 기억용량이 지금보다 만 배 큰 반도체 소자를 마치 복사기로 값비싼 정보를 무한정 복사하듯이 마음껏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물론 엄청난 디자인 비용이 들겠지만 그 생산비용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제조과정은 마치 어린아이들이 레고를 가지고 간단한 장난감이나 복잡한 빌딩을 만드는 것과 유사하다.

물리학의 ‘디지털 혁명’

여기서 레고조각 하나를 원자나 분자 하나로 교체하고 같은 방법으로 하나씩 조립하여 나노계 크기의 작은 물체를 만든다고 생각하자. 이렇게 원하는 나노구조를 만들기 위해 원자나 분자 하나 하나를 정확히 조작하여 이동시키는 기술이 바로 나노기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원자 또는 분자 하나 하나를 이어가면서 원자 수준의 정밀도로 나노영역의 원하는 소재나 기기를 만드는 기술을 말한다. 원자나 분자를 독립적인, 마치 디지털 정보의 비트와 같은, 별개의 것으로 다룸으로써 얻을 수 있는 나노수준의 생산기술은 디지털 기술과 같은 혁명을 물질 영역에 몰고 오게 될 것이다.
값싸고 무궁무진한 재료들-원자나 분자-을 사용하여 작고 빠르고 효율이 높은 나노기계들을 만들어 나노영역에서 조작함으로써 소자의 궁극적인 소형화와 성능향상이 가능케 될 것이다. 나노기술 구현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나노산업’의 가능성을 제공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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