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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국’이 곧 선도국가
‘고전 강국’이 곧 선도국가
  • 김월회
  • 승인 2022.03.09 09: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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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_ 선도 국가란 무엇인가⑦

"이제 우리는 누군가의 모방과 추격이 발전이 되고 진보가 되는 문명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세계고전전집을 엮는다면 선정 기준은 고전의 국적이 아니라 
첫발을 내딛고 이를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빚어가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여야 한다." 

고전은 길 없는 길을 열어갈 때의 지도이다. 또한 전진을 지속케 하는 동력이다. 하여 고전은 선도국가를 도모하는 우리에게 더욱 요긴하다. 첫발을 내딛고 이를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빚어가는 선도국가의 정체성 구현에 고전은 미더운 발판이 되어준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역대 중국의 통일왕조, 근대 이래의 독일이나 프랑스 등, 선도국가로서 문명을 빚어내고 갱신해온 나라들이 내로라하는 ‘고전강국’이었던 이유다.

고전 수입국의 자화상

사실 고전은 새 길을 개척할 때만 유용한 건 아니다. 고전은 그것이 비롯된 문명의 요체를 담고 있기도 하다. 이를테면 서양 고전은 서양문명의 요체를 담고 있다. 그래서 서양문명을 익히고자 하면 그들의 고전을 학습하는 게 능률적이다. 서구를 모방하고 추격함으로써 국가의 발전과 시민의 진보를 일구어냈던 시절, 우리가 서양 고전을 집중적으로 수입하여 학습한 까닭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에 서구의 문학작품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차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문학’이라는 이름과 실질에 걸맞은 한국문학 작품이 결코 적지 않음에도 말이다.

범위를 고전으로 넓혀도 마찬가지다. ‘세계고전전집’을 엮는다고 가정해보자. 틀림없이 상당량의 서구 텍스트가 거론될 것이다. 반면에 ‘세계고전’, 그러니까 국제적 차원에서 고전 반열에 올라 있는 우리 고전을 꼽아보라면 선뜻 답이 안 나온다. 물론 이러한 물음은 그 자체로 문제적이다. ‘우리 대 세계’라는 인식 구도 아래 세계고전과 한국고전 식의 양립을 당연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듯 이러한 시각은 후발 근대화 국가로서 서구 선진국을 모방하며 추격하는 것이 나라 발전에, 시민 진보에 가성비 좋은 방식이었던 지난 시절의 산물이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누군가의 모방과 추격이 발전이 되고 진보가 되는 문명단계를 넘어서야 한다. 세계고전전집을 엮는다면 선정 기준은 고전의 국적이 아니라 첫발을 내딛고 이를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빚어가는 데 얼마나 유용한지여야 한다. 

그래야 ‘고전 수입국’에서 벗어나게 된다. 나아가 우리 고전을 세계고전으로 발신, 확산시킴으로써 고전 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외국에서 세계고전전집을 기획한다고 할 때 한국의 고전이 과연 얼마나 포함될까.

예컨대 프랑스에서 세계고전전집을 기획한다고 할 때 그들의 머리에 떠오르는 한국고전으로 무엇이 있을까. 아니 그들은 과연 세계고전과 한국을 얼마나 연관 지을까. 프랑스 내 한국 관련 학과 7곳의 작년 대입 평균경쟁률이 19.4:1이었다고 해도 말이다. 이러한 물음에 쉬이 답하지 못함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에서 선도국가를 운운함은 안팎으로 민망한 일이다.

그들이 고전 강국이었던 까닭

지난해 한국문학번역원은 최근 5년간의 해외 출간 한국문학작품 판매 자료를 근거로 세계가 ‘문학한류’ 도입 단계라는 평가를 내렸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13개 언어권에서 16만 부 이상 판매되는 등 34종의 작품이 5천 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한다. 또한 매년 200종 이상의 작품이 해외에서 출간된다고 한다. 문학한류라는 진단이 그리 과하게 보이지 않을 성과이다. 이는 ‘세계고전 발신자로서의 한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한국문학번역원은 최근 5년간 해외 출간 한국문학작품 판매 자료를 근거로, 세계가 ‘문학한류’ 도입 단계라는 평가를 내렸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10개 언어권에서 30만 부 이상 판매됐다. ‘세계고전 발신자로서의 한국’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사진은 10개 언어권에서 출간된 『82년생 김지영』 표지다. 사진=한국문학번역원

그러나 범위를 넓혀 “한문으로 된 근대 이전의 고전은?”이라는 물음을 던지면 답변이 막막해지는 게 우리의 실정이다. 정작 우리 사회에서는 한국 한문 고전의 세계화에 별 관심이 없는데 오히려 중국이 나서서 세계화해주는 ‘웃픈’ 일도 발생했다.

2004년 국가사업으로 시작된 ‘유장(儒藏)기획’의 일환으로 『국제유장 한국편 사서부』 16책이 출간되는 등 조선시대의 유가 계열 텍스트가 중국에서 출판되고 있다. 유장기획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베트남 등지의 유가 계열 고전의 집대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출판을 목적으로 진행되었지만 언제든지 온라인 기반 콘텐츠로 전환 가능하다는 점에서 파급력과 활용가치는 사뭇 크다. 게다가 이 기획은 중국의 문화패권 야욕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유가 고전이 중국의 아류처럼 세계로 퍼질 가능성이 자못 크다는 얘기다. 

그런데 중국의 유장기획은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안겨준다. 세계고전은 그것이 국제적으로 발신될 수 있는 토대가 먼저 또는 같이 갖춰져야 비로소 실현된다는 점이 그것이다. 유장기획은 21세기 문명표준을 놓고 미국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시대조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차원에서 수행되었다. 역대 중국의 고전을 세계고전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한 토대를 풍요롭고도 단단하게 구축하려 한 저간의 욕망이다.

사실 중국은 역대로 이러한 욕망을 꾸준히 구현해왔다. 변화된 문명조건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천하 문명의 중심이란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송대에는『태평광기』 등 방대한 규모의 백과전서를 다수 편찬하여 전에 없었던 문명사적 대변혁에 대응하고자 했고, 명대에는 『영락대전』 등을 간행하여 몽골의 원에 의해 훼손된 보편문명으로서의 중화를 재건하고자 했다. 청대에도 『고금도서집성』과 『사고전서』 등을 편찬하여 만주부터 몽골, 위구르, 티베트와 만리장성 이남의 중원이 사상 최초로 통합된 대제국의 문명을 보편문명으로 빚어가고자 하였다. 

유장기획은 이러한 전통적 욕망의 소산이다. ‘G2’로 대변되는 새로운 문명조건에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자 보편 문명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토대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한국고전이 세계고전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토대의 구축은 그래서 시급하고도 절실하다. 중국의 이러한 문화패권주의적 행보에 대한 능률적 대응임과 동시에 고전 강국을 향한 초석이기에 그러하다. 

글로벌 한국고전플랫폼, 한국인문대전

현재 우리 한문 고전의 정리와 해제, 번역 작업은 산발적이지만 꾸준히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 그 성과를 집적하고 연결하며 국제적 확산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히 병행되어야 한다. 또한 한글 고전을 대상으로도 동일한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야 고전 강국의 토대가 될 ‘글로벌 한국고전플랫폼’의 명실상부한 구현이 가능해진다. 

동서고금에 대한 사전(事典)인 ‘한국인문대전’의 간행과 이의 온라인 기반 활용체제의 구축도 절박하다. 고전 강국은 독자적이면서 보편적인 인문의 뒷받침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를테면 ‘한국형 인문’이 창출되고 이것이 국제적으로 수용되어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그렇게 한국의 인문이 지구촌 곳곳에서 평화롭고 자율적이며 창의적 삶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게 될 때 우리는 선도국가임을 자부할 수 있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안팎의 인문을 한글에 담아내며 분석하고 재해석해야 한다. 이는 한국형 인문을 보편문명으로 다시 빚어갈 자양분을 풍요롭게 섭취하는 미더운 길이기 때문이다. 

한편 고전 강국의 실현에는 고전과 일상이 괴리되어 있는 현실의 극복이 필요하다. 가령 이황, 이이 하면 지폐에 실릴 정도로 오늘날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그들의 글은 박물관의 유물처럼 저만치 전시되어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고전 강국을 위한 토대는 이러한 간극을 메우는 다리가 되도록 다각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서울대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박사를 했다. 주로 고대와 근대 중국의 학술사상과 중국문학사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인문적 시민사회’ 구현을 위한 교양교육과 인문교육에 대한 연구도 함께 하고 있다. 저서로 『인문정신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좋은 삶인가』 『깊음에서 비롯되는 것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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