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팅커스
팅커스
  • 최승우
  • 승인 2022.03.02 1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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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하딩 지음 |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40쪽

조지 워싱턴 크로즈비는 죽기 여드레 전부터
환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오직 이성적 믿음만이 타락한 세계의

고통과 비애를 달래줄 수 있다는 것, 그것만 알 뿐.

그렇게 간단한 것이다.

그렇게 논리적이고 우아한 것이다.

잊어버린 노래는 사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노래란다. 알았던 기억이 있다고 생각할 뿐이지. 우리가
진짜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그 노래들을 전혀 안 적이 없지만 동시에 그 노래들이 분명히 찬란하다
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야. 책 속에서

논리적이고 섬세하며 우아한 시계, 그것의 가지런한 시간의 정렬을 사랑한 시계수리공 조지
는 완전한 소멸에 이르기 전 여드레 동안 자신이 직접 수리한 시계들과 가족들에 둘러싸인 채
마지막 순간을 기다린다. 그는 많은 것을 기억했지만 그 순서는 마음대로 정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그의 몸속, 꺼져가는 의식 아래에서는 요란한 붕괴가 한창이다.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허물어진다. 그가 누워 있는 병원 침대는 지하로 떨어진다. 붕괴는 꾸준
히 이어지고 뒤엉킨 잔재들 사이에 과거의 기억들이 부서진 마룻널 혹은 구부러진 대못인 양
삐죽 튀어나와 있다. 혼란한 무질서 속에서 그는 간질에 걸린 땜장이 아버지, 발작을 일으키다
어린 아들의 손을 물어버리고 어느 날 홀연히 집을 떠나버린 아버지를 추억하는데……

“미스터 신데렐라”의 탄생

“미스터 신데렐라.” 십여 년의 무명작가 시절을 지나 데뷔작으로 201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폴 하딩에게는 “문학계의 미스터 신데렐라”라는 별칭이 붙었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잘 알려지지 않은 밴드에서 드럼을 치다가 밴드가 해체되자 본격적으로 창작에 몰두하
며 몇 년에 걸쳐 첫 작품을 완성해낸다. 그러나 첫 작품 『팅커스』는 수많은 출판사들로부터 느
리고, 명상적이고, 잔잔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만다. 그럼에도 작가는 굴하지 않고 비영리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간신히 작품을 출간하고, 작은 서점들을 중심으로 서서히 바람을 일으키
기 시작하다 비평가와 주요 매체의 주목을 받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그 데뷔작으로 퓰리
처상을 수상하고 수상작 중 단기간 최고 판매 부수를 기록하기까지 했으니 그 별칭이 과장은
아닌 듯하다.

시계는 우주와 닮았다. 우리의 우주 또한 천상의 톱니장치, 회전하는 볼베어링, 태양의 용광로로 이루어진
기계장치이며, 이 모두가 협력하여 인간을 성경에 나오는 타락 이전의 선택된 시간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닌가. 무지한 벌레 한 마리가 문자반을 가로질러 기어가면서도 문자반 전체, 숫자가 적힌 원 전체, 짧은
바늘과 긴 바늘은 보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표면을 걸어갈 뿐 그 밑에 감추어진 톱니바퀴열과 태엽은 간접
적으로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도 세상, 나아가 우주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흙으로 덮인 우리
지구의 표면에서 꿈틀대고 안달한다. 다만 목적이 있기는 있다는 것, 하느님이 정하고 하느님만 알고 있는
목적이 있다는 것, 그 목적은 선하고 그 목적은 무시무시하고 그 목적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 오직 이
성적 믿음만이 우리의 웅장하면서도 타락한 세계의 절망적인 고통과 비애를 달래줄 수 있다는 것, 그것만
알 뿐이다. 그렇게 간단한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여, 그렇게 논리적이고 그렇게 우아한 것이다. 책 속에서

미국의 소설가이자 폴 하딩의 스승 엘리자베스 맥크랜켄은 “폴 하딩의 『팅커스』는 뛰어난 소
설이지만 그저 소설만은 아니다. 소설이 얼마나 거대해질 수 있는지, 소설이 얼마나 경제적
일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평했고 〈퍼블리셔스 위클리〉에서는 “소설가가 왜 장인인지 보여
주는 놀랍고 화려한 본보기”라는 평을 남겼다. 하딩은 “때로는 번개에 맞은 듯하고, 때로는
시계처럼 촘촘하고 복잡한 놀라운 언어로” 무한한 우주의 시간과 유한한 인간의 시간 전부를
아우르며 인간의 삶과 죽음, 대를 이어 내려오는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확하고 분명하
고 풍부한 동시에 시적인 문장만으로” 독자들을 타인의 삶으로 이어주는 환상의 무지개로,
소설만이 가닿을 수 있는 영역으로 데려다놓는 이 소설은 미국문학사에 기록될 완전무결한
데뷔작으로서 잊지 못할 인상을 남겼다.

그 모든 생의 고통과 비애에도

우리는 살아가고 죽어서 땅에 묻히리라

네 가슴 아픔과 네 영혼의 혼란이 곧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아직 인간이라는, 아직 세상의 아름다
움을 향해 열려 있다는, 그런 것을 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전혀 없는데도 그것을 받았다는 뜻이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어라. 그리고 네 가슴 아픔에 화가 날 때는 기억하라. 너는 곧 죽어서 땅에 묻히
리라는 사실을. 책 속에서 폴 하딩은 말한다. 가슴 아픔과 영혼의 혼란은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인간이라는 증거다.
멋대로 가슴이 아파오고 그것 때문에 화가 날 때는 고개를 살짝 돌려보라. 『팅커스』의 하워드
가 땜장이일 수도, 시인일 수도, 미치광이 간질병 환자일 수도, 도망자일 수도 있는 것처럼 세
상을 보는 각도를 조금만 틀어도 우리의 자리는 완전히 바뀐다. 고개를 돌려 스스로를 더 나은
무언가로 보려 할 이유를 발견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편치 않지만
그럼에도 이것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고, 그 안에는 문득 찾아오는 기쁨과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행복이 있다. 그렇게 스스로를 격려해도 까닭 없는 슬픔에 빠진다면 이것을
기억해라. 우리는 곧 죽어서 땅에 묻히리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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