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영국(원광대ㆍ생명과학부)
▲왼쪽부터 류재성, 이경진, 김선미, 추영국 교수, 서정우, 정지웅, 곽동훈, 이대훈, 김성민 © |
나는 10년째 풀타임대학원생을 1년에 2명만 받는다. 그 첫 번째 이유는 4~5명을 받을 경우 차년도 연구비 확보에 실패할 경우 과다한 인건비로 인해 큰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고, 또 한 가지는 전공의 균형발전이 깨질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생물학의 특성상 인기전공영역이 몇 년 주기로 종종 바뀌기 때문에 유행에 민감한 학생들이 한 전공으로 몰릴 경우 그렇지 않아도 해마다 감소추세에 있는 지방대의 대학원진학율과 맞물려 학과의 전공영역별 균형발전이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다른 대학의 경우 진학하는 소수의 대학원생을 두고 서로 확보하기 위해 과다하게 노력하다 보니 교수간 사이가 굉장히 나빠져 학과의 발전에 큰 해가 되고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 왔기 때문에 나는 지금까지도 10년째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1년에 2명씩 대학원생을 받아서 2명씩 배출하면서 양 보다는 질을 높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 두 명조차도 처음에는 나의 의욕대로 그렇게 쉽게 지도가 되지 않았다. 아침 8시 50분 등교 오후 9시 이후 하교를 반 강제로 실시하고, 토요일도 오후 늦게까지 연구하자고 다그쳤는데 이 와중에 한 두 명의 학생들이 그만두기도 했다.
그런데 연구실의 역사가 2~3년이 흐르면서 점점 대학원생들의 의식이 바뀌기 시작했다. 가장 큰 계기가 된 것은 대학원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인 학위취득 후 취업의 해결이었다. 나는 학생들이 열심히 노력하면 취업의 일선에 내가 직접 발 벗고 나선다는 대학원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취업알선에 최선을 다했다. 조건이 좋은 취업자리가 있으면 직접 전화도하고 책임자를 만나 부탁도 많이 했다. 그 결과 취업하는 졸업생이 늘어나자 학위과정에 있는 원생들이 믿음을 갖고 스스로 강해지기 위해 자발적으로 열심히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10년간 석사학위를 취득한 대학원생들 전원은 최소한 SCI논문에 1편 이상씩을 게재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나는 특히 지방소재 대학일수록 연구실을 교수가 제대로 끌고 나가기 위해서는 3박자가 중요하다고 본다. 무엇보다 대학원생들의 취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지도책임교수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 적어도 학부 3학년부터는 자기가 원하는 연구실에 들어가 생활하도록 지도하는 것이고, 셋째는 학생들 스스로 자기의 연구력 배양과 함께 연구실을 개선할 수 있도록 1주일에 1회는 반드시 연구실 미팅을 실시하는 것이라 본다.
끝으로 나는 학생들을 지도함에 있어 연구파트인 실험에서 몇 번 실패해 의기소침해 있을 때는 언제나 맹자의 말을 들려준다.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흔들어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굶주리게 하여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을 흔들고 어지럽게 하나니, 그것은 타고난 작고 못난 성품을 인내로써 담금질하여 하늘의 사명을 능히 감당할 만하도록 그 기국과 역량을 키워주기 위함이다”
충만한것 같습니다. 요즘 처럼 각박한 세상에 교수님같은 분이 계시다니 정말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