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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마음·이성과 감정 이원론 벗어나 ‘더 나은’ 해결 방법을 찾아서
몸과 마음·이성과 감정 이원론 벗어나 ‘더 나은’ 해결 방법을 찾아서
  • 김봉억
  • 승인 2022.03.03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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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 첨단연구의 현장 ‘체화된 마음 연구’ ③ 체화된 인지와 도덕

 

<교수신문>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복합 연구가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첨단연구의 현장을 찾아 지식생산의 새로운 흐름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체화된 마음 연구 : 몸-뇌-세계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체화인지연구단’이다. 체화인지연구단은 최근 인지과학 분야에서 마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체화된 마음 이론(theory of embodied mind)’을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년간 인문사회분야 일반공동연구 지원사업(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 주관)으로 수행하고 있다. 

체화된 마음 이론은 내재주의와 뇌 중심주의에 치중하고 있는 현재의 ‘마음 연구’를 극복하기 위한 인지과학 이론으로, 1990년대 이후로 해외 학계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체화인지연구단에서는 철학, 문학, 미학, 인지과학, 법학, 영화학, 의학 등 다양한 전공의 연구자들이 모여 융복합적으로 체화된 마음을 연구한다. 

이번 특별기획에는 20명의 교수·연구자가 참여한다. 연재 주제별로 체화인지연구단 연구자와 관련 외부 전문 연구자의 대담 형식으로 풀어내 자유롭고 생생한 담론을 제시할 예정이다.

‘체화된 마음 연구’ 세 번째는 ‘체화된 인지와 도덕’을 주제로 다룬다. 한곽희 영남대 교수(철학과)와 노양진 전남대 교수(철학과)가 대담을 나눴다. 체화된 인지가 도덕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 체화된 인지에서 몸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이성이나 숙고의 역할은 무엇인지, 체화된 인지에 기반한 도덕이론은 어떤 형태일 수 있는지를 토론했다. 

△ 체화된 인지가 도덕적 판단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한곽희(이하 한): 체화된 인지는 도덕적 판단에 관한 감정주의(sentimentalism) 이론을 강화하는 기반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덕 이론에서 도덕적 판단에 대한 대비되는 두 가지 이론은 감정주의와 이성주의(rationalism)입니다. 이성주의에 따르면, 도덕적 판단을 할 때 이성의 요구에 따라야 합니다. 감정은 이성에 의해 조정되어야 하는 대상입니다. 반면에, 감정주의는 도덕적 판단을 위해 감정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널리 알려졌듯이, 흄(Hume)은 감정이 도덕적 판단의 주요 기반이며 이성은 판단 이후의 정당화의 역할을 감당할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 그러면 체화된 인지는 어떻게 감정주의를 강화할 수 있을까요.
한: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체화된 인지이론의 주장을 알아야 합니다. 체화된 인지 이론에 따르면, 인지가 단순히 마음의 정신적 과정이 아니라 몸적 과정을 중요한 요소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행위자의 제스처가 그 제스처를 지각하고 있는 상대방의 인지에도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행위자 자신의 인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언어뿐만 아니라 제스처를 포함한 의사소통이 더 효율적이라는 주장을 생각하면 체화된 인지 이론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몸적 요소에는 위와 같은 몸의 운동뿐만 아니라 감정도 포함됩니다. 역겨움, 깨끗함, 두려움 등 다양한 감정들이 인지 과정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감정의 역할을 인지과정의 중요한 요소로 인정하는 체화된 인지이론에 기반을 둔 도덕이론은 기본적으로 감정주의의 노선을 취하게 됩니다. 

노양진(이하 노):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선 체험주의 도덕이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2세대 인지과학’의 경험적 발견에 주목하는 체험주의(experientialism)는 제2세대 인지과학이 제시하는 ‘체화된 마음’ 논제를 통해 ‘도덕적 경험’의 인지적 본성을 새롭게 해명하려고 합니다. 체험주의에 따르면 ‘마음’은 몸과 독립된 별개의 실체가 아니라 몸-두뇌-환경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창발’하는 새로운 국면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체험주의는 우리의 경험을 물리적 층위와 추상적 층위로 구분하며, 추상적 경험은 물리적 경험을 토대로 확장되며, 동시에 물리적 경험에 의해 강력하게 제약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전 경험은 신체화되어 있습니다. 

△ 체화된 마음에 기반을 둔 체험주의 이론에서 도덕적 판단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습니까.
노: 체험주의 이론도 감정주의 노선을 지지한다고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체험주의는 이성/감정의 대립구도 안에서의 논의를 거부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레이코프(Lakoff)와 함께 체험주의를 창시한 존슨(Johnson)은 도덕적 경험의 문제를 이성이나 감정의 문제를 넘어서서 더 근원적으로 ‘상상력’의 문제로 봅니다. 존슨은 우리 경험이 뿌리부터 ‘상상적 구조’, 즉 ‘비법칙적인 은유적 경로’를 통해 확장된다고 봅니다. 도덕적 경험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도 안에서 일차적으로 폐기돼야 할 것은 몸-마음, 주관-객관, 이성-감정 등의 이원론 등입니다.

△ 체화된 인지에서 몸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이성이나 숙고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한: 도덕적 인지 혹은 도덕적 판단에서 이성적 요소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몸이나 감정에 의존한 도덕적 판단이 행동의 기반이 되는 것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수나 산초를 먹지 않는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냥 강한 냄새가 싫어서”라고 답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 집단을 차별하고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고 해 봅시다. 그 사람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냥 그 사람들 보면 안 좋은 감정이 생겨서”라고 답했다고 합시다. 이것이 도덕적으로 적절한 답변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상해 보입니다.

감정이 근본적이라고 주장하는 흄도 이성적 요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흄은 도덕적 판단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제공하는 일반적 관점의 중요성을 인정합니다. 이 외에도 흄은 자신의 마음을 면밀히 관찰하고 검토하는 능력인 반성의 중요성도 인정합니다. 물론 이 개념이 이것이 논리적 추론 능력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일차적 감정에 대한 이차적 사고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 외에도 표현주의(expressivism)를 주장하는 기바드(Gibbard)나 존슨도 감정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감정에 기반한 판단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노: 존슨이 제안하는 도덕 이론은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듀이(Dewey)의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듀이는 우리 삶을 문제 해결의 과정으로 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도덕적 문제 해결은 선결된 도덕원리를 따르는 문제가 아니라 일반적인 문제 해결의 한 국면입니다. 이러한 시각에서 듀이는 도덕적 문제와 관련해서 ‘도덕적 숙고’라는 개념을 제안합니다. 일반적인 문제 해결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문제 해결 또한 다양한 가능성들에 대한 ‘드라마적 리허설’을 행하며, 그 중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과정입니다. 그 선택의 과정은 물론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시행착오를 거치게 될 것입니다. 듀이는 시행착오를 통해 더 나은 것을 선택해 가는 이 모든 과정을 관통하는 능력을 ‘지성’(intelligence)이라고 부릅니다.  

개개인의 도덕적 숙고 과정에서 과거의 절대주의 도덕 이론들은 이런저런 참조점이 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상 그 어떤 이론도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최근의 경험적 지식이 우리의 인지적 조건에 대해 알려 준 것은 ‘절대적’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덕 이론이 인지적으로 불가능한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도덕적 숙고는 절대적/보편적 도덕원리를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도덕적 문제 상황에서 ‘더 나은’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 체화된 인지에 기반한 도덕이론은 어떤 형태일 수 있습니까.
노: 전통적 도덕 이론은 ‘보편적 도덕원리’의 추구로 특징지어집니다. 존슨은 보편적 도덕원리를 탐구하는 절대주의 도덕 이론이 우리 자신의 인지적 조건에 대한 부적절한 이해에서 출발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절대주의 도덕 이론은 우리 경험의 중요한 일부를 무시하거나 간과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결과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억압하는 부도덕한 이론이 됩니다. 절대주의 도덕 이론은 근원적으로 현재와 같은 몸을 가진 유기체로 우리 자신의 몸 크기에 부합하지 않는 이론입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인지적 조건에 대한 부적절한 해명을 대가로 ‘철학적 열망’에 빠져든 예고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체화된 마음’ 논제에서 출발하는 체험주의 도덕 이론은 전통적 도덕 이론들의 기본적 가정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점에서 메타적 성격을 드러냅니다. 전통적 도덕 이론에 대한 체험주의의 이러한 메타적 비판은 포스트모던 이론들의 해체론적 비판과 그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체험주의 도덕 이론은 대안적 탐구, 즉 ‘도덕적 경험의 본성에 대한 해명’이라는 새로운 탐구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탐구 가능성 자체를 근원적으로 부인하는 포스트모던 이론과 궤를 달리 합니다. 이것이 절대주의/객관주의와 해체론적 허무주의 사이의 이분법적 딜레마를 넘어서는 제3의 시각으로서의 체험주의가 제안하는 ‘경험적으로 책임 있는 도덕철학’의 필요성과 가능성입니다. 

한: 체화인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성중심주의적 도덕이론이 우리들의 실제 생활과 다르다는 것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이 실제 생활에서 도덕적 개념들을 형성하고 숙고하는 방식에 감정이나 상상력이 근본적인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적절한 도덕이론은 감정이나 상상력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선 좀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체화인지 이론에 기반을 두는 도덕이론에 대해 존재와 당위의 차이를 말하며 반대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몸과 감정에 의존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고 도덕적 숙고에 상상력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존재에 관한 사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인 당위의 근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몸과 감정에 의존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인간의 모습에 관한 연구는 연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인간의 특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더욱 신의 명령에 의존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한편, 체화인지에 관한 경험적 연구와 기존의 주요 규범이론과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해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체화인지에 기반을 두고 체화된 도덕이론을 제시하는 존슨은 기독교 윤리이론과 의무론에 비판적인 주장들을 제시하긴 합니다. 그런 비판들이 적절한지를 포함해, 체화된 인지에 관한 주장들이 공리주의, 의무론, 덕윤리 등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 있는가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은 중요한 이론적 작업으로 보입니다.  

정리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한곽희 영남대 교수(철학과)
고려대 철학과에서 학부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덕윤리학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최근 「매뉴얼 모델로서의 공학윤리와 융통성의 덕」 「감정, 이성, 그리고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관하여」 「실험 도덕 철학의 도전에 대한 비판적 고찰」 등의 논문을 썼다. 

노양진 전남대 교수(철학과)
전남대 철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서던일리노이대에서 철학박사를 했다. 주로 언어철학과 윤리학, 철학방법론과 관련한 연구를 하고 있다. 저서로 『기호적 인간 : 기호적 경험의 체험주의적 해명』 『나쁜 것의 윤리학』 『몸이 철학을 말하다』 『몸·언어·철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 『인간의 도덕』  『삶으로서의 은유』 『몸의 철학』 『마음 속의 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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