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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민화로 참다운 미를 찾다...“예술품마저 식민지화 현실 안타까워”
조선시대 민화로 참다운 미를 찾다...“예술품마저 식민지화 현실 안타까워”
  • 김재호
  • 승인 2022.03.04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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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민화를 만나다_이영수 단국대 종신명예교수

조선시대 민화 가치 먼저 알아본 일본이 작품 수탈하며 수집
전 세계 흩어져 있는 민화 되찾기 위해 사비 쓰며 발로 뛰어

이영수 단국대 예술대학 종신명예교수는 전 세계 흩어져 있는 우리 민화를 찾기 위해 사비를 들여가며 노력하고 있다. 조선시대 민화는 전집으로 출간돼 문화유산으로 보존되는 의미가 있지만 상업성이 없는 게 현실이다.

수많은 민화는 추후 국가에 기증할 예정이지만, 그 전에 더 많은 작품이 알려질 필요가 있다. “전 세계인들이 가져간 우리 그림을 직접 가서 설득하고 구매한 후, 촬영·편집·집필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이영수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민화를 복원하는 작업이 얼마나 힘든지 설명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 우리 민족은 식민지 국가로서 문화가 말살됐다. 일제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수탈하고 왕릉을 도굴했다. 또한 고려불화도 130여 점을 가져갔다. 그래서 직접 일본의 각 지방을 순회하며 민화를 되찾아왔다”라고 말했다.

우리 문화유산을 다시 복원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이 명예교수는 안목과 자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의 그림을 사와서 자랑하고 우리 그림을 멸시하는, 즉 예술품을 식민지화 하는 이들에게 큰 경종을 울리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이 명예교수가 작업한 전집들을 공공 영역에서 구매해 보관해야 한다. 이 일이 우리 문화를 보존하는 일이다.

 

조선시대 민화, 현대인 감성에도 영향끼쳐

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습관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다. 궁궐, 사찰, 관아, 민가의 실내를 장식하기 위해 그린 그림들이 많다. 이 명예교수는 “무속신앙, 심우도, 십장생도, 효제도 등은 민간신앙과 불교, 도교, 유교 사상을 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 명예교수에 따르면, 조선시대 민화는 일본에서 먼저 그 가치를 알아봤다. 1959년 일본의 민예운동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는 「조선의 민화」라는 글에서 속화(俗畵)라고 경시된 비제도권 그림의 가치가 재평가될 날이 올 것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민화는 현 시대에도 중요한 것일까? 이 명예교수는 “조선시대 민화가 이 시대에도 예술작품으로서 존속할 가치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현대인의 욕망과 정서, 감수성, 삶의 다양성 등이 포함되는 것은 필연적이다”라며 “과거의 꿈과 소망을 오늘날에 새롭게 완성시켜가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명예교수는 현재도 수많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화가로서 창작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저력은 무엇일까? 그는 “나의 작품들은 보석분말로 제작된 작품이며 석채화는 아름다운 발광성과 견고한 표면질감이 마치 작은 변화를 연상시킨다”라며 “참다운 미가 어디에 있는가 밝히며 한국 미술로 차원 높게 승화시킬 때 한국미술의 세계성과 가능성은 예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명예교수는 “사람은 가도 좋은 작품은 영원히 남는 것”이라며 “영원불멸한 암채화(岩彩畵)를 위해 앞으로도 더욱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 명예교수는 “나의 회화가 가지는 큰 가치는 민화를 통해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가늠하고 그 표현의 산물인 예술작품을 재해석하고 현대적 시각으로 변용·형상화 하는 데 있다”라며 “작가는 부지런히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겨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명예교수는 수집한 조선시대 민화를 “언젠가 국가에 기증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는 “정부 차원에서 민화 전시장을 만들어 국민과 전 세계인이 우리 전통민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등재도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이 명예교수의 소망이다. 아울러, 그가 직접 그리고 소장하고 있는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 스포츠화 32점도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다.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으로 우뚝 서는 데 일조하려는 것이다.

묵과 채색 그리고 형이상학·형이하학

동양화의 정수가 무엇인지 물었다. 이 명예교수는 묵과 채색을 통해 형이상학·형이하학을 설명했다. 그는 “묵이 기운(氣韻: 글이나 그림에 표현된 정취)의 문제를 주로 다루려고 한다면 채색은 수류부채(隨類賦彩)의 세계를 다룬다”라면서 “이 말은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그 어떤 미지의 힘을 묵이 문제삼고 있다면, 채색은 보이는 세계를 더 한층 분명하고 선명하게 보이도록 문제 삼는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명예교수는 “채(彩)는 문장이고 색은 차별이라고 했다. 문장은 문자가 있기 이전의 신성문자이므로 이 뜻은 옛 사람들에게 세계의 질서를 뜻한다”라고 설명했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묵은 밤(月)이고 채색은 낮(日)이다. 이 명예교수는 “채색화는 낮의 미화를 상징하며 이 낮의 미학은 곧 인간 세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기도 한다”라며 “수묵산수화가 탈속적인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는 사실과 비교할 때 채색이 의미하는 세속의 관심은 분명히 묵과의 대립적인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실제로 수묵산수화는 사대부의 소위 글씨문화(筆記文化)에서 나타났다. 채색화는 고분벽화나 병풍 등에서 나타났다.

동양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이 명예교수는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동양화의 양식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범위 내에서 자연학적인 테마를 계속 전개해 나가는 소극적인 방법이다. 둘째, 재래의 양식을 과감하게 부숴버리고 전통적인 의미의 재질이나 묘법을 독립시켜 가는 방법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첫째 모델은 어디까지나 전통회화의 교조성(敎條性)을 지속해 가면서 주체적으로 우리 자신의 자연학적인 이념을 발전시켜 나가게 될 것이다. 둘째 모델은 어디까지나 수정주의(修正主義) 노선을 택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재래적인 교조성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입장이 되는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서구적인 미술이념과 합류하는 노선을 택하게 된다. 시대의 당위성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점에서 무작정 과거에 안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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