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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의문에 답하기 위한 조건
우주의 의문에 답하기 위한 조건
  • 정미지
  • 승인 2022.03.02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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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정미지 충남대 우주·지질학과 박사과정

지난 크리스마스 때야 넷플릭스의 「돈 룩 업(Don't Look Up)」을 시청했다. 나는 케이티와 같은 관측천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이다. 주인공이 사용했던 스바루 망원경 근처의 제미니(Gemini) 망원경으로 관측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나의 석사와 박사학위의 연구주제는 우리은하의 중원소함량이 낮은 별들의 화학적, 역학적 분석을 통해 우리은하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쳐 왔는지 규명할 수 있는 단서를 찾는 것이다.

누군가는 내가 관측천문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로 영화 속의 케이티처럼 매일 밤 별을 바라보며 시간을 쏟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사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측 천문학자들은 망원경으로 관측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컴퓨터 앞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관측시설 내부에서 수동관측을 하는 영화 속의 장면과는 달리, 대부분의 관측은 산 아래의 방문자센터에서 원격으로 이루어진다. 일 년에 단 며칠 밤, 혹은 몇 시간의 관측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관측 제안서를 작성하고 심사를 통해 망원경 사용 시간을 배정받게 된다. 운 좋게 관측 시간을 배정받더라도 관측 당일의 날씨가 관측의 방해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에 항상 성공적인 관측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초과학 분야가 그러하듯, 천문우주과학은 우주기술개발강국으로 불리는 선발주자들보다 뒤늦게 출발한 분야다. 그렇지만 현재는 선발주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을 정도로 높은 연구 기술력과 성과를 가지고 있다. 다가올 8월에는 천문학자들의 올림픽으로 불리는 국제천문연맹총회(IAUGA)를 유치할 만큼 많은 선배 연구자들이 힘을 쓰고 있다. 또한, 후속 세대가 사용하게 될 대형마젤란망원경(GMT)의 10%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망원경 완공 전 공백기 동안 다양한 중대형 망원경을 이용한 관측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고 있다.

국내 대학에는 7개밖에 없는 천문우주과학 관련 학과로 이루어지는 작은 커뮤니티 속에서 교수님들, 박사님들, 그리고 학생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대중을 향한 인식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강연을 개최하거나, 우주와 관련된 콘텐츠를 제작하는 등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미디어와 대중이 바라보는 천문학의 현주소는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누리호 발사, 제임스 웹 망원경, 유성우와 같은 이벤트가 있지 않다면 천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금세 사라지고 만다.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 과학적 사실에 대한 기사에는 천문학자들이 자살률이 높은 이유와 같은 맥락 없는 우스갯소리나 음모론에 대한 댓글들이 주를 이룬다. 대중과의 소통과 홍보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각의 인식은 안타깝기만 하다.

현재 천문학을 연구하는 한 사람의 학생연구자로서 우리나라는 우주강국을 꿈꾸고 있지만, 국가적 차원의 장기적인 지원과 천문학에 대한 인식개선 노력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주변에는 생활비가 부족해서 연구와 상관없는 과제들을 도맡고, 일부는 적은 지원이라도 끊기지 않기 위해서 고용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일용직 아르바이트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적지 않다. 우리의 현실과는 같은 듯 같지 않은 평행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에 나는 「돈 룩 업」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한국천문연구원에는 "우리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 의문에 과학으로 답한다."라는 천문학자의 사명을 담은 비석이 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가볼 수 없기에 우주에 대해 인류가 가지는 원초적인 호기심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나에게 “맨눈으로 볼 수도 없으며 평생 가보지 못할, 돈이 되지 않는 천문학을 왜 연구하느냐?”라고 묻는다.

내가 연구를 이어나가는 원동력에는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기쁨도 있지만, 인류가 가지는 우주의 근원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며 한 사람의 연구자로서 이 땅에서 천문학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계승해 나간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오늘도 내 자리에서 묵묵히 연구를 이어나가고 있다.

정미지 충남대 우주·지질학과 박사과정
우리은하의 하부구조를 구성하고 있는 별들의 화학적, 역학적 특성을 통해 우리은하의 형성과 진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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