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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 교수가 말하는 ‘냉전시대 북한연구 과제’
최장집 교수가 말하는 ‘냉전시대 북한연구 과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01.06.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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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편향에서 탈피 ... 우리눈으로 우리 그림 그릴 때
지난 12일 고려대 인촌기념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소장 최장집 교수, 정치학)가 ‘북한의 경제발전모델과 남북경협모델’을 타이틀로 북한전문가워크샵을 개최하고 있었다. 워크샵의 제목은 ‘경협’에 무게를 실었지만, 사실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이날 기조발제를 맡은 최장집 교수의 ‘탈냉전시대의 북한연구의 과제’였다.

최교수의 기조발제는 그가 서 있는 녹록치않은 정치적 입점에도 불구하고 제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가 제기한 ‘탈냉전시대의 북한 연구’라는 표현이 마뜩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참가자들의 말이다. 그러나 이번 전문가워크샵은 작은 규모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의미를 띠는 ‘사건’으로 평가해도 좋을 듯하다.

3세대 학자들의 비교분석적 방법 돋보여

전문가워크샵이 과녁으로 삼은 것은 개방노선을 채택한 북한의 정치경제적 경로였던 것. 중요한 것은, 이러한 진단이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훌쩍 건너뛴, 객관적 현상으로서의 북한 이해 형태로 제출됐다는 점이다. 이 점은 최장집 교수가 “오늘 발표한 논문은 지금까지의 북한연구의 방법이나 내용과 사뭇 다르다.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발견할 수 없고, 한국의 정책적 바램을 북한사회에 투사하는 정책적 접근도 아닌, 특히 비교분석적 방법이 두드러진 좋은 시도”라고 평가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이들 3세대 북한전문가들의 북한 이해와 접근은 2000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의 자신감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렇다면, 학계가 풀어가야할 과제는 없는가.

최교수는 냉전시대 북한연구의 특징을 두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압도하고, 한미동맹론적 시각이 지배적이며, 북한을 전략의 대상으로만 바라볼 뿐이며, 북한전문가는 많이 양산됐으나, 북한전문 연구자는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냉전이 해체되면서 많은 변화가 왔지만, 여전히 냉전시대 북한연구의 잔영이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정부 시기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정부의 흡수통일 시나리오에 동원됐으며, 김대중 정부 시기에 와서는 대북포용정책에 맞추어 남북경협분야의 실무적 논의나 북한이 중국식 개혁 개방을 따를 것이라는 정부 태도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분위기였다고 환기하면서 최교수는 오늘날 정부정책에 대해 비판적이고, 학문적으로 엄정함을 기치로 한 연구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동아시아 전체 틀에서 북한 이해

최교수가 제출한 탈냉전시대 북한연구의 과제는 어떤 모습일까. 기존의 북한연구가 갖는 이데올로기성, 강한 가치지향성, 희망적 사고의 투사, 시나리오 혹은 전략적 논의, 정책추수적 논의를 벗어나 북한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인 분석대상으로 설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최교수의 생각. 기존의 북한 연구들이 분석적 연구의 결여태였던 것에 비해, 오늘날 요청되는 연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비교연구라는게 그의 주장이다. 즉 사회주의의 여러 경험들과의 비교 속에서 북한을 제대로 연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연구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시야를 좀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 최교수도 이러한 시야의 확대를 강조했는데, “북한을 별개로 고립시켜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틀 속에서 통합적으로 보자”고 주문하는 것도 그러한 맥락에 놓인다. “중심부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관점으로 북한을 보고,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확실히 설득력이 컸다. 그간 우리는 우리 민족 문제, 안보 문제,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통일, 한국 사회의 미래 모습 등에 대해 남이 그린 그림을 통해 거꾸로 우리 현실을 인식하고 이해해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최교수의 기조발제의 핵심은 ‘자아준거적’ 북한학의 수립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하다. “미국 정책이 바뀌면 우리 학문의 주제, 관심, 해석 이 모든 게 변했다. 부시가 강경 정책을 말하면 또 변하고, 다시 대북 포용정책의 방향으로 선회하는 듯하자 다시 포용정책을 말하는 모습은 반성해야 한다. 우리 눈으로, 우리 가치, 목표를 가지고 우리 그림을 그려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는가.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 연구가 떠 안아야 할 과제가 더욱 커진 셈이다. 최익현 기자 ihchoi@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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