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5:55 (금)
비판: 2단계 BK21 사업 내용을 보고
비판: 2단계 BK21 사업 내용을 보고
  • 정진수 충북대
  • 승인 2005.11.0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역의 기초과학 외면할텐가

▲정진수 충북대·물리학 ©
교육부는 7년간 2조천억을 BK 2단계 사업에 쏟아 붓겠다고 발표했다. 교육부가 무슨 발표를 할 때마다 “얼마나 더 망치려고 이러나” 싶어 겁부터 난다. 교육부가 두뇌한국(BK)21 1단계 사업을 시행한 이후, 일부에서는 “빌어먹을 코리아”를 만드는 일이란 비판이 있었는데, 이제 더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2단계 BK21 사업은 1단계 사업의 단점을 모두 계승하면서, 금액만 커졌다. 산·학협력을 강조하면서 기업 수요와 직접 연결되는 사업단을 우선 지원한단다. 원천·핵심기술, 신성장동력 분야의 사업을 위해 한 학과의 교수 70%~80%가 참여하고, 물리학의 경우에는 12인이 되어야 한다. “산업체와의 연계”는 산자부, “첨단기술 연구력 강화”는 과기부에서 해야 하는 일이다. 교육부는 많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이 없어 고사되는 기초과학 연구에 좀 더 지원해줘야 한다.


교육부는 1단계 사업에서 “선택과 집중”을 지향했고, 이 때문에 “연구력 격차가 심화”되었다고 비판했다. 지금 지방 대학은 아사 상태다. 개인 연구비는 사라졌고, 대학원생은 외국에서 수입한다. 대학에 진급하는 학생들은 중고등학교에서의 부실한 과학교육 때문에 이공계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태다. 교육부가 연구실적을 자주 비교하는 외국의 대학에 비하면 시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웬만한 국립대는 교육기자재가 중고등학교 보다 못하다. 샤워시설은커녕 화장실에 휴지도 제대로 없다. 연구실은 걸핏하면 전기가 나가고, 겨울에는 난방도 되지 않는 곳에서 강의를 한다. 이런 상황에 지금 같은 연구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거의 기적이다.


그런데 또 “선택과 집중”을 하겠단다. 이번 2단계에 지방 대학원 지원책이 포함되었다고 하지만, 1단계와 마찬가지로 효과적인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참여 인원수를 보자. 내가 아는 한에는 12인 이상이 참여할 수 있는 대학은 전국에 15개 내외다. 대학을 서열화 시키는 것이 모자라서, 작은 대학은 아예 신청조차 할 수 없게 만든다. 큰 대학의 경쟁력 없는 교수를 봐주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지역 우수대학원 사업은 지역발전 전략과 연계시키기 위해 지역발전 기여도 평가점수에 가중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지역의 기초과학은 반도체·이동통신·차세대전지·디스플레이 등 지역 전략 산업에 밀려 2단계에 들어서 아예 기반까지 잃을 수 있다.


1단계 사업 이후로 군소대학의 기초학문은 연구비가 사라졌다. 한 교수는 “이제 연구비가 없어도 전혀 창피하지 않다”고 했다. 개인 연구비 수혜율이 10:1 정도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초학문 연구비 사정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소문에 의하면, 올해 교육부 산하의 한국학술진흥재단 연구비 지원 중에서 올해 지역대학 우수 연구자 사업은 약 18:1, 1년에 5백만원 주는 작년의 정액연구비는 20:1 정도라고 한다.


생태계에는 다양한 유전자가 존재하여야, 변화에 적응해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학문에도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있어야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10년 후에 어떤 기술이 세상에 나올지 모르는데, 지금 돈이 되는 기술만 연구비를 주고 나머지를 도태시키면, 미래의 기술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나라 전체가 영향을 받는다.


교육부는 1단계 BK21 사업이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황우석 교수를 포함한 몇 가지 성공 사례를 든다. 우수 연구자들은 이미 충분한 연구비를 가지고 있어서, BK21 사업이 없이도 성공할 수 있었다. 과기부에는 한 개인에게 1년에 몇 억∼몇십 억 원씩 주는 연구비가 많다. 최근 우리나라의 SCI 논문이 증가했다고 한다. 이것도 BK21 사업의 성과라기보다는 대학에서 연구 성과를 강하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투자액 대비 효율성인데, 떼돈을 주는 BK 21사업은 효율성이 낮다.


노무현 대통령은 고려대 100주년 기념식에서 “대학은 국가이익에 종속되기 보다는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발전시키는 근거지여야 한다.”고 했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 메시지가 대학을 담당하는 주무부처에 전달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대학의 교육과 연구 여건은 방기한 채, 선택과 집중이라는 이름으로 대학을 산업의 시녀로 만들고 있다. 보편적 가치가 있어도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연구는 도태시키고 있다. 교육부가 원천·핵심기술, 신성장 동력만 외치지 말고, 교육여건에 좀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