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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산과 물
[딸깍발이] 산과 물
  • 교수신문
  • 승인 2001.06.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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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7 09:37:44
우리나라에는 산이 참 많다. 많은 이들이 산을 좋아한다고, 산에 오른다고, 산에 산다고, 산을 살고 있다고까지 말한다. 서로들 다른 산을 말하고, 산에 대하여 다른 것을 떠올리면서 똑같이 산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설악산에서 지리산을 거쳐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산은 똑같이 발음되지만 산의 뜻은 다르다.

산에 다니는 이들은 제각기 하나의 산과 같다. 산에 오르는 이만큼, 산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이들만큼 산에 대한 오해와 과장, 소문과 풍문은 많다. 등반을 죽음과 추락, 그 공포의 감정으로 수직을 향하는 춤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난이도에 따라 등급을 정해놓고 소수점 이하 세 자리까지 바윗길을 구분하는 이들도 있다. 구분하고, 분리하는 힘을 권력이라고 한다면 산 사회에서도 권력은 많다.

우리말에는 산을 달리 말할 단어, 산과 비슷한 유의어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산은 산이 되고 만다. 모든 산이 하나의 산이 되고 만다. 범속한 산이 신비한 산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산이란 단어가 금세 모호하고 위험한 것이 되는 것도. 산의 유의어는 없지만 반대어는 있다.

물. 우리들은 산 좋아하는 이, 물 좋아하는 이를 나눠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다. 산과 물의 구분은 불온하다. 물의 동의어도 없다. 동의어가 없는 단어들은 불온하다. 동의어가 없는 사회가 불온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산과 물이란 단어가 불온한 것이 아니라 산과 물을 나눠서 말하는 것이 불온하다.

산을 물과 다른 것으로 여기다보니, 물의 고통은 산과 별개의 것이 되고 만다. 또 산의 오염과 파괴는 물로 치료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정부가 추진하는 새만금 갯벌 사업에 대해서 부안 사람들도 둘로 갈려 싸우고 있지만,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침묵하고 있다. 올 여름 가뭄이 심해지자 건교부는 때를 놓치지 않고 치수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부적절한 댐 건설을 강행하려고 한다. 오래 전부터 유네스코는 댐공사를 반문명적이며 비효율적이라고 했고, 캐나다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만든 댐조차 자연순환을 위해서 없애는 형편이다. 건교부 공무원들은 물을 저장하기 위해서라면 산을 수장시키고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이미 점봉산, 지리산에서 했던 것처럼. 산 없는 곳에 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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