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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대한민국의 정체성
대학정론: 대한민국의 정체성
  • 박광주 부산대
  • 승인 2005.11.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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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주 논설위원·부산대

정국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제일야당 한나라당이 노무현정부를 향해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정부가 대한민국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바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면 이는 정말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정권의 퇴진을 요구해도 될만한 중대사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헌법에는 자유민주주의의 요건들이 잘 명시되어 있다. 집회, 결사, 언론, 양심의 자유들이 그것이다. 여기에는 신앙의 자유와 정치적 신념의 자유도 물론 포함된다. 누구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필수적인 이 같은 자유들이 불필요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그렇게 말해서는 아니된다.

노무현정부가 이 같은 자유를 제한해도 좋다고 공언하고 있다면 그것은 분명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합법적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다. 그리고 한나라당이 그같은 이유로 노무현정부의 단죄를 요구한다면 아무도 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문제는 과연 한나라당이 인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 대한민국헌법의 정신에 제대로 부합하고 있는 것이냐 하는 데 있다. 저간의 정체성논란의 발단이 된 것은 어느 한 학자의 한국전쟁의 성격에 관한 발언이다. 그의 발언은 상당한 한국민들이 한국전쟁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것과 배치될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한나라당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과 정면으로 대립되는 것이다.

모든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설명역시 다양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한 가지 설명만이 있어 왔던 것은 학문적인 이유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반공이념의 시각에서 모든 사실을 바라보도록 강요되어 왔던 탓이다.

권위주의 정권은 반공을 자유민주주의라고 강변하면서 실제로 자유민주주의를 훼손시켜왔다.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왜곡시켜 온 것이다.

이제 한국현대정치사상 처음으로 정부가 사상과 신념의 자유를 허용하는 조심스런 시도를 하고 있다. 그동안의 권위주의통치기간 동안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데 주축이 되었거나 또는 묵인해왔던 정치세력이 자유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조심스런 시도를 두고 오히려 정체성 운운하는 것은 참으로 시대역행적인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남에게 나의 견해를 강요하지 않는 것, 우리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려면 최소한 지켜야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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