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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체계이론’, 모더니티의 미래를 모색하다
‘비판·체계이론’, 모더니티의 미래를 모색하다
  • 정성훈
  • 승인 2022.02.22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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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철학의 길을 묻다

하버마스·루만의 대저작을 번역한 진보적 사회이론 연구
사회학·법학·과학과 교류하며 비판과 이성적 사회를 지향

지난 2월 11일,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 아트홀 봄에서 사회와 철학 연구회와 장춘익의 사회철학 간행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사회철학의 길을 묻다: 장춘익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나남)과 루만의 『사회의 사회』(새물결) 등 대저작의 번역자로 널리 알려진 장춘익 전 한림대 철학과 교수는 1990년대 동구권의 몰락 및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더불어 새롭게 부상한 진보적 사회이론 연구의 대표적 철학자 중 한 명이다. 

 

지난 11일, 서울여성플라자 1층 아트홀 봄에서 ‘사회철학의 길을 묻다: 장춘익 기념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날 주제 발표회와 패널 토론회가 진행됐다. 사진=탁선미 한양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지난해 2월 장춘익 교수가 작고한 후, 동료 학자 5명은 지난 8개월간 그의 학술논문, 강연문, 역자 서문, 미간행 발표문 등 35편의 글을 출간하기 위한 공동 간행 작업을 진행하였고, 그 작업의 성과가 『비판과 체계: 하버마스와 루만』, 『근대성과 계몽: 모더니티의 미래』 두 권으로 출간됐다. 사회와 철학 연구회는 그의 30여 년 철학적 사유의 여정을 재검토하는 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비판적 사회이론과 사회철학이 나아갈 길을 다시 한번 성찰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학술대회의 취지를 밝혔다.  

 

명확한 논증에 바탕한 실천적 연대

총 90여 명의 인문사회학자들이 참석한 학술대회 1부에서는 3개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장춘익 교수와 1990년대에 사제지간으로 만나 꾸준히 학적 교류를 해온 강병호 서울과기대 강사는 「장춘익의 사회철학: 지성과 연대」라는 제목 아래 장춘익의 모든 글, 즉 이론과 사상에 대한 연구물, 현대사회에 대한 주제적 연구물, 일상의 주제들에 대한 개인적 단상을 적은 에세이들 모두에서 명확한 논증에 바탕한 실천적 연대가 강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춘익 교수는 실천에 중요한 규범적 정당성을 언제나 사회이론의 틀 안에 위치 지운다는 점에서 윤리학자와 분명하게 구분되는 사회철학자라고 평가했다. 

『사회의 사회』 번역을 비롯한 루만 연구 시기인 2009년 이후 장춘익 교수와 집중적으로 공동작업을 했던 필자는 「비판에서 체계로, 다시 체계에서 비판으로: 장춘익 사회철학의 문제의식과 그 전개과정」이라는 제목 아래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섰다. 발표의 목표는 ‘자율적 주관성과 이성적 사회’에 대한 규범적 지향에서 출발한 장춘익 교수의 사회철학적 문제의식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장춘익 교수는 하버마스의 비판적 사회이론에 대해 ‘경험적 측면’ 혹은 ‘제도적 차원’에서의 보완을 시도하면서 루만 체계이론 연구로 넘어가게 되었으며, 루만 연구 이후 장춘익 교수는 “체계합리성 내지 생태학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함께 발휘되는” 복합적 합리성 개념에 도달했다는 것이 필자의 핵심 논지였다.

마지막 발표자인 이시윤 공주대 강사는 생전에 장춘익과 만나지 못한 신진 사회학자로서 「90년대 하버마스 네트워크의 형성과 해체」를 다룬 그의 화제의 박사학위논문(2021년 8월)을 토대로 한 「1990년대 학술장의 구조변동 속에서 한 하버마스주의 철학자의 궤적」을 발표했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인문사회과학 학술장에 일어난 ‘하버마스 현상’은 개혁적 신진 학문담론이 제도권의 주류 학자들을 끌어들여 학술공론장 내 주도권 변화를 가져온 획기적 사례였다고 진단한다. 장춘익 교수는 수준 높은 학문적 연구와 상대방을 적시하는 비평으로 ‘신진 하버마스 연구집단’의 리더 역할을 했지만, 이후 다른 개혁적 신진 하버마스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연구의 방향을 바꾸면서, 새로운 진보적 하버마스 학술공론장이 와해되었다고 아쉬움을 피력했다.

 

반독재 민주화 시기에 등장한 사회철학 담론

장은주 영산대 교수(철학)의 사회로 6인의 토론자가 참가한 2부 패널 토론회에서는 두 가지 쟁점이 드러났다. 우선 1990년대 후반 ‘하버마스 네트워크’의 해체의 원인을 신진 연구 집단 자체에만 소급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 또 장춘익의 헤겔-하버마스 시기의 ‘이성적 사회’에 대한 지향이 루만 연구 이후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지속되었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논의가 집중되었다. 

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학문 후속세대의 문제나 한국적 상황으로의 이론의 전유도 중요하다는 주장들이 있었다. 후자의 질문에 대해서는 신광영 중앙대 석좌교수(사회학과), 이행남 서울대 교수(철학과)는 장춘익 교수의 사회철학에서 체계이론이 갖는 의미를 확인하였고,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과), 주동률 한림대 교수(철학과), 한승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연구위원, 홍성수 숙명여대 교수(법학부)는 하버마스의 비판적 관점의 의미를 강조했다. 장춘익 교수는 일관된 비판적 문제의식을 견지하면서도 이론적 관심사를 조금씩 이동시켜갔다. 사회학, 법학을 비롯한 여러 사회과학자들과의 폭넓은 교류 속에서 그들의 언어를 적극 수용했던 만큼, 장춘익 교수의 사회철학이 지닌 이론적 복합성이 이 토론에서 잘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사회와 철학 연구회는 이시윤 강사를 향후 6월 월례발표회 발표자로 내정하고, 『장춘익의 사회철학』에 대한 필자의 서평을 학회지에 게재하기로 결정했다. 홍 교수의 지적대로 한국사회에서 ‘사회철학’은 1970∼19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시기에 “해방의 철학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마르크스연구뿐 아니라 하버마스의 비판이론마저 약화된 현재의 신자유주의 지적 풍토 아래서, 이번 학술대회는 사회철학의 새로운 전망을 가늠하는 매우 소중한 기회였다. 

 

 

 

정성훈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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