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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독일의 줄기세포연구는 어떤 상황인가
해외동향: 독일의 줄기세포연구는 어떤 상황인가
  • 정광진 독일통신원
  • 승인 2005.1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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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아 이용 연구 '원천금지'..."지금 안하면 나중에 원정치료" 으름장

▲데트레프 간텐 교수 ©
지난 9월 27일 베를린에서 ‘아시아-태평양 주간’ 행사 중 하나로 베를린 대학병원 ‘샤리떼’ (Charite) 와 ‘베를린 기술재단’(TSB)이 공동으로 주관한 ‘한독 줄기세포 연구’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독일 언론에 ‘복제왕’(Klonkoenig)으로 자주 소개되는 황우석 교수도 초대되어서 그간의 연구 성과를 소개하고, 서울에 곧 ‘세계줄기세포 허브’가 만들어지면 머지않아 세계줄기세포 연구의 중심지로 떠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짜이퉁’의 전언에 따르면 그에 대해 샤리떼의 원장인 데트레프 간텐(Detlev Ganten) 교수는 “우리도 당신들의 길을 천천히라도 따라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노골적으로 부러워했다고 한다. 그는 또 “처벌을 받기 때문에 황 교수와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 분야에서 공동연구하는 것은 독일 연구자들에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동물연구 등 적법한 분야에서라도 협력을 모색하겠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아울러 독일의 대표적인 복제연구 찬성론자답게 그 자리에서도 “이대로라면 세계적 추세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현행 줄기세포법을 개정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한스 쉘러 막스 플랑크 분자생의학연구소장 ©
하지만 독일 줄기세포 연구자들 모두가 이런 의견에 동의하진 않는다. 독일 줄기세포연구의 일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막스 플랑크 분자생의학연구소’ 소장인 한스 쉘러 (Hans Schoeler) 교수가 그 대표적인 인사다. 동일한 심포지엄에서 그는 “비록 황 교수가 수행한 연구를 독일에서 할 수는 없지만, 여기에서도 많은 것이 허용되었다”라고 평가한다. 기초연구 수행의 어려움은 거의 없고, 다만 ‘신선’ 배아나 복제배아를 필요로 하는 치료법 개발 연구에 있어서 제한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황 교수는 그의 방식대로, 우리는 우리 방식대로”, “전진해서” 질병치료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연합하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인터뷰에서는 연구자의 입장에서 볼 때 독일 내 비우호적 분위기가 관련 연구를 위축시키는 측면이 있음을 인정한다. 간텐과 쉘러, 두 교수가 독일 연구자들의 다양한 의견을 대변한다고 보긴 힘들지만, 현재 엄격한 규제를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연구자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이 희망하는 대로 관련 정책의 방향이 바뀔 가능성은 현재로선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는 1990년 12월 공포된 배아보호법에 따라 출산목적 이외에 인간배아를 사용하는 어떤 의료행위 및 연구도 금지돼있다. 이 법에 따르면 복제배아를 만들거나 배아 줄기세포 추출을 시도했을 경우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배아줄기세포의 수입에 관해서도 2002년 7월에 발효된 ‘줄기세포법’에서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줄기세포가 임신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남은 배아에서 2002년 1월 1일 이전에 획득 배양됐고, 그 줄기세포를 연구목적으로 수입하려고 하는 경우에 한해서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중앙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서 가능하게 했다. 이 법률이 통과된 후 지금까지 13건의 연구 프로젝트가 허용됐다. 하지만 이 법은 당시 불거진 갈등을 잠시 덮어두기 위한 불만족스러운 타협의 결과였기 때문에, 외국에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나올 때마다 학계나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정치권에서도 기한을 없애버리자거나, 아애 배아 연구를 폭넓게 허용하자는 주장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법 개정의 열쇠를 쥐고 있는 연방의원들 중에서는 현행법을 지지하는 견해가 여전히 우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대표적인 관련 연구 자유화론자인 슈뢰더 (전)총리가 지난 6월 14일 괴팅엔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연설에서 제기한 법규정의 완화 주장에 대해서 부정적 반응이 지배적이었다는 것으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더구나 이제 곧 출범할 새 내각이 더 보수적인 기민당/기사당 연합 중심으로 꾸려지고 있고 녹색당도 이 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등의 현실을 고려할 때 수년 내에 근본적인 방향전환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줄기세포연구의 잠재적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돼있기 때문에 연구비 지원이 줄어들 것 같진 않다. 오히려 그 동안 집중적으로 지원했던 성체줄기세포연구는 물론이고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해서도 법 규정을 최대한 신축적으로 운용해 연구지원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세계적인 차원에서 경쟁하고 있는 연구자들은 대개 비슷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독일의 제한적인 관련 법규는 배아를 사용하는 연구에 대해서 유독 민감한 여론과 그런 여론에 ‘민감한’ 정치결정권자들의 입장이 반영된 결과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독일에는 나찌 시대의 인체실험과 우생학 등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가 여전히 짙게 깔려 있고, 1980년대를 거치면서 만들어낸 사회적 합의물인 ‘배아보호법’의 정신을 훼손할 구체적인 이유가 없다는 여론이 여전히 지배적이다. 연구자들은 “우리가 지금 연구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외국으로 치료받으러 나가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지만,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손에 잡히기 전까지는 그런 으름장이 별 효험을 볼 것 같지는 않다.

정광진 /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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