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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청계천의 묵시록
문화비평: 청계천의 묵시록
  • 김영민 한일장신대
  • 승인 2005.11.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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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는 느리게 걷는 것이 좋다. 천천히 걷다 보면 이곳의 자연스러움과 접한다."

이 기사의 전언처럼, 복원된 청계천이 생산하고 선전하는 이미지는 우선 그 '자연스러움'이다. 청계천 프로젝트를 전하는 각종의 매체-이미지들은, '자연'이라는 추억의 중심을 뱅글뱅글 도는 스펙타클화한 동심원들인 것이다. 물론 이 동심원들은 '자연'이라는 文禍的 착각에 의해서 유지되는 인공도시의 알리바이이다; 하지만, 실은 '자연스러움'이라는 역설적 수식어는 그 자체로 '청계천'으로 대표되는 문화적 자연의 실체를 고스란히 증거한다.

서구화, 산업화, 근대화, 정보화란 시골을 잠식하는 도시화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닭울음과 산그늘로 이어지던 시골의 시간이 24시간 체제로 휘황한 도시의 시간으로 바뀌는 현상이며, 느리고 거친 시골길을 빠르고 매끈한 도시의 교통로에 접속함으로써 도시라는 이동-기계 속에 내재화하는 현상이다. 시골을 잡아먹은 도시라는 공룡들은 도시 속의 이곳저곳에 그 잠식의 결과로 배설물을 쏟아놓는데, 이른바 公園은 그 대표적 배설물들이다. 도시는 시골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증상을 도시 곳곳에 공원이라는 배설물의 형태로 재구성해놓음으로써 그 獨食의 죄의식을 경감시킨다. 대체로 혐의를 벗겨내는 수단이 '알리바이'라면, 청계천과 같은 도시 속의 (자연)공원이야말로 도시화의 가장 탁월한 알리바이가 아니고 무엇이랴.

시골을 먹어치우는 도시, 그 도시 속에 역수입된 인공의 시골이 청계천같은 公園, 혹은 空圓이다. 자연에 관한 한, 그것이 公이기에 곧 空인 것이다. 서울시민과 더불어 그 청계천을 즐거워하고, 그 인공정원을 조금도 질투하거나 미워하지 않는 내게 그곳은 마치 환상이 강림한 곳과 같다. 그 환상의 요체는 도시가 시골을 排泄/排設할 수 있고 문화가 자연을 생산할 수 있으라는 도착된 자신감인데, 바로 이것이야말로 한갓 시골의 문사인 내가 주목하는 청계천의 상징적 악덕인 것이다. 환상으로서의 청계천, 혹은 청계천스러운 환상은 자연의 총체적 위기라는 임박한 현실을 은폐한 채 임의로 자연을 급조해 낼 수 있다는 도착된 도시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 환상을 먹고 살아가는 길지 않은 세월 동안, 억압된 자연의 현실은 섬뜩한 실재의 역공으로 우리의 터전을 붕괴시킬 것이다.

문제는, 청계천이라는 '자연스러움'-'자연'이 아닌-의 복원으로 대표되는 성공적/지속가능한 개발주의가 숨긴 역사성을 묻는 일이다; 그리고 어떻게 도시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장치와 성향에 순치된 채 그 당연한 역사성을 자연스러운 외관으로 덧씌우게 되었는지를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 멋진 개발주의의 공시적 整合 뒤에서 누가 가장 크게 웃고 있는지를 아울러 묻는 일이다. 마지막으로, 왜 우리는 자연이 그 괴멸적 실재의 힘으로 문화의 뒷덜미를 잡아채기 전에는 아무래도 '자연'을 이해할 수 없는 무능력자가 되었는지를 심각히 되묻는 일이다.

사상사는 자연에 대한 공통감각이 당대 사회구성체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음을 잘 보여준다. 예컨대, 넓게 보자면 근대의 계몽주의는 자연에 대한 중세적 공통감각이 몰락하고 개인의 인간성(human nature) 속에서 새로운 자연(nature)을 확보한 일을 기초로 한다. 마찬가지로 그 모든 사회문화적 변화는 기성의 자연(스러움)이 서서히 부자연스럽게 여겨지고, 어느덧 이상하게 보이다가, 마침내 기괴한 꼴불견으로 낙착하는 사연과 대체로 일치한다. 가령 민중들이 뭇솔리니나 차우체스코와 같은 독재자들을 겪어내는 방식, 그리고 통금이나 장발단속과 같은 문화적 지체현상을 넘어서는 방식은 그 적절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나는, 청계천이라는 극히 도시주의적인 호들갑을 접하면서, 자연을 향한 迫眞의 뜻으로 쓰이는 자연스러움이 거꾸로 가장 反자연적인 것일 수 있다는 문명의 묵시를 읽는다. 半자연은 필경 反자연일 수밖에 없는 법이니, '청계천에서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그곳에 자연은 없다.'

김영민 / 한일장신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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