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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한 우주의 진화…슬기로운 인간은 반성한다
장엄한 우주의 진화…슬기로운 인간은 반성한다
  • 김재호
  • 승인 2022.02.15 1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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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코스모사피엔스』 | 존 핸즈 지음 | 김상조 옮김 | 소미미디어 | 984쪽

조합·복잡화·수렴을 특징으로 하는 인류의 진화
과학 한계 인정하고 질문과 토론 수용할 때이다

“우주적 진화 과정에 놓여 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산물” 이 책에서 정의하는 인간은 이렇다. 그런데 우주적 진화 과정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모든 학문의 궁극적 질문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가? 저자 존 핸즈의 결론은 인류가 ‘조합·복잡화·수렴’을 거치며 진화한다는 점이다. 특히 인간은 스스로 반성할 줄 알고, 자신이 무언가 알고 있다는 걸 아는 존재이다. 

이 책의 제목 ‘코스모사피엔스’는 우주(Cosmos)와 슬기로움(Sapiens)의 뜻을 담은 합성어로, 우주를 가늠하려는 의지를 지닌 지성체로서의 인간을 지칭한다. 저자는 물리적, 유전자상의 진화를 넘어 정신의 진화를 이룬 ‘반성적 의식을 소유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980여 쪽의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책은 우주의 신비와 지구의 생성과 구조, 20세기 자연과학(특히 물리학)의 이론과 발달 과정, 지구라는 행성의 해부학과 생물학을 거쳐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담아내고 있다. 

1990년 2월 14일,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명왕성 근처를 지나던 보이저 1호의 망원 카메라로 지구를 찍어보자고 제안한다. 태양계 바깥으로 향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프로젝트라는 점에서 생각해보면 일종의 ‘일탈’이었던 셈인데, 이때 찍은 사진 한 장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60억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바라본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 인류 역사상 가장 철학적인 천체 사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칼 세이건은 사진이 우리가 사는 지구가 “그저 우주에 떠 있는 보잘것없는 티끌에 불과”함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면서, 우주에 대한 지적 열망과 우리 근원에 대한 탐구가 인류를 겸손하게 만들고 선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코스모사피엔스』의 저자인 존 핸즈 역시 ‘창백한 푸른 점’을 보는 관점으로 우주의 기원과 인간의 진화를 살피는 탐구자라 할 수 있다. 

우주의 진화와 함께 인류는 과학을 발전시켜 왔다. 사진=픽사베이

과학은 그 자체로 한계를 갖는다. 존 핸즈는 “과학은 우리의 주관적 경험의 물리적 상관관계에 대해 말해 줄 수는 있지만, 이 경험의 본질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라고 적었다. 과학 자체가 가진 한계가 있음에도, 과학을 활용하는 과학 집단은 질문과 토론을 반기지 않다. 존 핸즈는 다양한 과학자들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주류 과학계의 폐쇄성을 몸소 경험한 듯하다. 

실질적인 관찰과 실험이 이루어지기 힘든 분야일수록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하지만, 몇몇 스타 과학자들의 허점을 지적한 질문은 날이 선 답변과 무시로 돌아오곤 했다. 거침없고 까다로운 태도로 기존의 과학 이론을 비판하는 내용이 다소 공격적으로 보이나, 면면을 살펴보면 존 핸즈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흠집 내기보다 토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성적 존재가 슬기롭게 검증하는 게 과학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과학 이론들이 짧은 시간 동안 이뤄낸 인류의 성취이기에 더욱 경계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저자의 지적은 과연 온당할까? 영문판에 자신의 추천사를 실어 공개적 지지를 밝힌 ‘사회생물학의 아버지’ 에드워드 O. 윌슨 교수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윌슨은 과학적 사고가 전문화되고 출판물의 수가 증가하면서 오히려 대다수의 과학자들이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 어려운 현실이 되었다는 점을 들어, 존 핸즈와 같이 ‘통섭’을 지향하는 과학자의 관점이 절실하다고 이야기한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최재천 교수는 여기에 덧붙여 “과학 교육이 단순한 지식의 전달과 습득에서 벗어나 토론을 통한 가치 판단 능력의 함양으로 갈 수 있는, 근본적 개혁이 필요한 때” 과학적 균형을 되찾으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존 핸즈는 책에서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 즉 그 어떤 것도 권위 때문에 무조건 받아들여선 안 된다는 영국 왕립학회의 모토를 여러 번 강조한다. 반성적 존재로서 슬기롭게 검증해나가는 과학의 길. 거기에는 적도 친구도 없다. 자신을 스스로 먼 곳에 둔, 객관적인 관찰자만이 있을 뿐.

김재호 기자 kimyita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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