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9:45 (금)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에서
  • 이후남
  • 승인 2022.02.17 08:4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학문후속세대의 시선
이후남 아주대학교·전주대학교 강사

‘요사스럽고[妖] 괴이함[怪]’이라는 국어사전 속 정의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 어느 날이었을까. 그때부터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나 ‘요괴(妖怪)’였다. 고전소설의 요괴를 대상으로 한 연구 논문과 기초 자료를 많이 축적한 뒤, 한국의 전통 요괴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세계화하고 싶다는 다소 ‘원대한 포부’를 가졌기 때문이다. 나의 이 바람을 ‘원대한 포부’라 칭한 이유, 즉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나만의 연구를 해 나가면서 느꼈던 고민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순수 학문’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 학계에는 학문의 경계를 나누는 잣대가 존재한다. 특히 인문학계나 자연과학계에는 ‘순수 학문’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순수 학문은 응용 학문이나 실용 학문의 밑바탕이 되는 아카데믹(academic)한 학문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나도 대학원을 다닐 때 이를 동경했던 것 같다. 그래서 문화콘텐츠화 및 현대적 변용에 관한 논문은 ‘너무 쉽게 쓴다, 알맹이가 없다’는 말로 섣부르게 평가절하했었다. 물론 잘못된 생각이다.

고전을 대상으로 한 콘텐츠화 논문, 고전을 현대적으로 변용한 대중 매체물에 대한 논문 모두 나름의 가치가 있다. 간혹 정말 실현 가능성이 없고 구체적인 대안이 없는 논의도 보이지만 후학들이 차차 수정해나갈 일이다. 

또 전통 소재를 찾는 창작자들은 우리 연구자들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야담집 속에 나온 한두 줄의 인어공주 이야기를 가지고 20부작의 드라마(「푸른 바다의 전설」)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고전소설 원전에는 전혀 없던 요괴를 대량으로 창작한 영화(「전우치」)가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하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더 이상 순수 학문이라는 틀만 가지고 가치 판단을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제는 ‘주인공 중심’에서 벗어나야 할 때

고전소설은 선인이 악인을 반드시 이긴다는 원리가 작동하여 언제나 주인공이 승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전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 풍토 역시 ‘주인공 중심’이었다. 따라서 요괴처럼 주인공이 아닌 존재에 대한 연구는 자연스레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나누는 시선은 고전소설 작품 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학계에도 존재한다. 처음 요괴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쓴다고 했을 때, 굳이 남들이 하지 않는 비주류에 대해 연구를 하냐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때 나도 잠시 흔들렸던 것 같다. 그러나 한 편의 소설은 주인공과 같은 핵심 요소에, 요괴와 같은 구성 입자 구실을 하는 요소가 더해져 온전히 완성된다. 따라서 비주류에 대한 연구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박사 졸업을 하고 4년여의 시간이 지나 주변을 돌아보니 이제는 요괴 연구를 반기는 분위기인 듯하다. 비주류 연구에 대한 선입견이 개선된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관련 논문이나 기초 연구가 충실히 쌓여서가 아니라는 점이 씁쓸하다. 게임, 웹툰, 영화, 드라마 등의 매체를 통해 대중들의 호응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긍정적인 시선이 생긴 듯하기 때문이다. 주객이 전도된 것 같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인가? 아무쪼록 대중들의 지지에 힘입어 요괴를 포함한 비주류 분야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박사 논문을 쓰기 시작할 때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전통 요괴와 관련된 문헌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점이었다. 학술적으로 참고할 만한 제대로 된 백과사전과 도록이 없었고 선행 연구도 얼마 없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논문을 썼었다. 이에 비해 요괴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가져온 중국과 일본에는 요괴 관련 서적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만큼 요괴를 활용한 문화산업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다. 우리나라에 좀비, 뱀파이어, 오니(Oni) 등의 수입 요괴들이 판치고 있는 것도 그러한 효과이다. 

그러나 이렇게 남의 나라를 부러워만 하고 있을 시간에 빨리 못다 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아직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요괴들이 많기 때문이다. 비주류가 주류가 되는 날까지, 아니 둘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날까지 나를 포함한 소외 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들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 

이후남 아주대학교·전주대학교 강사

한국학대학원에서 「고전소설의 요괴 서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고전소설의 요괴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으며, 대중들에게 고전소설의 요괴를 알리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최근 『요망하고 고얀 것들-욕망을 따라 질주하는 고전소설 요괴 열전-』이라는 교양서를 발간하여 ‘K-요괴’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