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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비평: 그 소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영화비평: 그 소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 이재희 경성대
  • 승인 2005.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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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메르, 진주귀고리를 한 소녀 ©
화가 베르메르가 활동한 17세기 네덜란드는 세계 최초로 근대사회가 성립된 역동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고전주의 음악이 그런 것처럼, 거칠고 빠르게 변하는 당대의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다. 그의 실내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정물 같다. 대개의 인물들은 자기 세계에 몰입해 있고, 외부 감상자와 어떤 교류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그의 작품에서 특이하다. 진주 귀걸이를 반짝이는 소녀가 고개를 돌려 역시 진주 같은 눈망울을 반짝이며 감상자(최초 감상자인 화가)를 쳐다본다. 또 붉은 입술을 살짝 열고 무언가 이야기를 걸어온다. 이 작품을 보면 누구나 이런 흥미를 가질 법하다. 이 소녀가 누구이며, 화가는 이 소녀를 왜 그렇게 그렸을까. 이 영화는 호기심어린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집안이 어려워진 그리트는 베르메르 집에 하녀로 들어간다. 그녀는 빨래, 장보기, 식사준비 같은 일상적인 일 외에 주인의 화실(베르메르의 그림에 몇 번이고 나오는, 왼쪽에 반 쯤 열린 격자 창문이 있는 그 화실)을 청소하는 일을 맡는다. 베르메르는 이 소녀가 지닌 섬세한 감수성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물감 재료를 준비하는 등의 조수 일을 시킨다. 점차 화가와 소녀 사이에 애틋한 감정이 싹트고, 화가는 자기 부인의 진주 귀걸이를 소녀의 귀에 걸게 하여 그녀의 초상화를 완성한다. 사실을 안 베르메르의 부인은 분노하고, 그리트는 그 집을 나선다.

예술가를 다룬 다른 영화들처럼, 이 영화도 많은 부분이 허구다. 영화에서 베르메르의 부인은 하녀보다도 예술을 이해하지 못하며 오로지 질투에 눈먼 여인이다. 그녀는 ‘왜 나를 그리지는 않죠?’하며 남편에게 울며 항의할 뿐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자면, 가장 자주 베르메르의 모델이 된 사람은 그 부인이었다. 그리고 이들 부부 사이에서 15명이나 되는 자녀가 태어났다. 참고로, 당시 네덜란드에는 가족계획이 보편화되어서 대부분 가정에 자녀가 2~3명 정도였다.

또, 이 영화에서 베르메르는 전업화가로서, 반 라위번이라는 후원자에 크게 의존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베르메르의 그림이 비싼 편이긴 했으나, 매년 2점 정도밖에 그리지 않으면서 그림만으로 그 많은 자녀를 부양할 도리는 없다. 베르메르의 실제 직업은, 주로 이탈리아 거장들의 그림을 사고파는 미술상이었고 그에게 그림은 부업이자 취미였다. 동시대의 화가들과 달리, 그는 시장을 위한 그림은 거의 그리지 않고, 몇몇 후원자만 상대하는 신사 화가였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베르메르가 반 라위번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일은 없었다. 그 시대는 후원 자체의 중요성이 줄어들었고 화가와 후원자의 관계도 크게 변했다. 어쨌든 후원자에 구속된 전근대적 전업화가의 이미지는 베르메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일, 이 영화가 베르메르의 전기 영화였다면 고난에 찬 그의 인생역정이 훨씬 더 부각되어야 했을 것이다. 예술사의 전 시대를 통해서, 근대 시장경제가 성립되는 시기만큼 예술가에게 고통을 준 때는 없었다. 당시 인구가 2만 명에 불과한 델프트 시에는 화가가 1백 명이 넘게 있었다. 베르메르도 시장경제의 수많은 희생자 중 한 사람이다. 때 이른 그의 죽음은 미술시장의 침체 때문이었다. 영화에서, ‘진주 귀걸이’에 불같이 화를 내는 베르메르의 부인을 그 어머니가 달래면서, “돈벌이 수단이야. 아무 의미도 없어(Pictures for money. They mean nothing)”라고 던지는 말은 시장경제가 예술을 규정하는 바를 요약한다.

사실성의 결핍이 아쉽기는 하지만, 이런 정도는 가령 베토벤을 다룬 ‘불멸의 연인’과 견주어보면 전혀 놀랍거나 치명적이지 않다. 오히려 베르메르의 부인이 예술의 적대자로 묘사됨으로써, 영화 속에서 낭만적 사랑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고조된 극적 갈등을 즐길 수 있다. 또 베르메르가 그림 파는 사업가였고, 사업 때문에 죽었다는 것까지 이런 낭만적인 영화에서 일일이 고백할 필요는 없다.

베르메르에 관해 알려진 것이 너무 적고, ‘진주 귀걸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영화는 이런 미지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리트라는 인물을 창조하고, 이 걸작이 화가와 그녀 사이에 펼쳐진 사랑의 결정이라고 주장한다. 전적으로 상상력에 의한 허구이지만, 우리의 예술에 대한 감성은 더불어 풍요로워진다. 더구나 영화 속에는 17세기 델프트의 실내, 거리, 운하, 시장 정경과 족제비 망토, 비단 리본 같은 화사한 풍물들이 세심하게 배치되어 있다. 베르메르를 포함한 17세기 네덜란드 화가들의 그림이 영화 속에 녹아들어, 장면마다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지난해 가을에 국내에 개봉되었던 이 영화는 지금 디브이디로 볼 수 있다.

이재희 / 경성대·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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