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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_『고구려의 역사』 이종욱 지음, 김영사 刊, 2005, 580쪽
논쟁서평_『고구려의 역사』 이종욱 지음, 김영사 刊, 2005, 580쪽
  • 최광식 고려대
  • 승인 2005.10.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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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연구 반영 못해…발해, 말갈과 연합정권

저자는 그동안 소위 주류사학계에 비판을 가하고 ‘본연의 역사학’을 주장하면서 한국고대사를 연구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저자는 신라사를 중심으로 연구를 해왔는데, 이번에는 고구려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복원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따라서 종래의 한국고대사 연구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한국고대사 연구의 수준을 식민사학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후식민사학이라고 호되게 질타를 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의 잘못된 부분을 구체적으로 적시하면서 비판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개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주장하는 점들을 보면 사실 여태까지 연구자들이 연구해온 성과에 기반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컨대 신화를 역사로 해석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노력은 이미 일부 연구에서 시도되었으며, 저자가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고구려 초기기록의 신빙성문제에 있어서도 일부 연구자들이 이미 논하였으며, 그러한 선상에서 연구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고구려의 역사 전개를 7단계로 나누어 1장은 건국신화에서 시작하는 고구려의 초기국가 형성과 발전과정, 2장은 태조대왕에서 신대왕까지 정복왕국으로의 성장, 3장은 고국천왕에서 미천왕까지의 기간에 벌어진 왕정의 강화와 국제관계의 활발한 전개, 4장은 중국문명의 수용과 대국의로의 전환, 5장은 왕국의 전성과 왕정의 피로, 6장은 수·당과의 전쟁과 인심이 떠난 왕국의 위기, 7장은 왕국의 멸망과 한국사속의 고구려에 대해 다루었다.

저자는 사료가 부족하여 그동안 연구가 미진했던 고구려 초기 역사를 비교사적 관점에서 복원하는 한편, 건국신화에서 역사연구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또한 실증적 해석과 추론을 통해 호동 왕자가 낙랑이 아닌 옥저 지역의 제후국을 정복하였다거나, ‘광개토왕비’에 일본을 부각하는 내용이 들어가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악용된 것은 고구려인 스스로가 원수였던 백제를 폄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역사를 왜곡하였기 때문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고구려는 예맥, 말갈, 선비, 숙신, 거란 등의 여러 종족을 지배한 일종의 제국이었다는 등 고구려사에 대해 여러 가지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이 사료를 나열하고, 그것을 저자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을 가하고 있다. 고구려는 소국, 소국연맹, 소국 병합 과정을 거쳐 다른 왕국들을 정복해 토지와 인민을 늘려 커다란 왕국으로 발전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단계는 저자가 신라와 고조선의 국가형성을 논하면서 적용을 한 것으로 고구려에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과연 이러한 발전단계가 고구려에도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를 검증한 후에 적용을 해야 하는데 그대로 도식적인 적용을 하고 있다. 저자가 비판하는 부체제설이 모든 한국 고대 국가에 적용하는 것이 무리이듯이 이 또한 마찬가지라 하겠다.

새로 발굴된 고고학 자료나 다양한 고구려 고분벽화를 해석해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려는 최근의 연구 경향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들 자료를 통해 생활사나 문화사 등 그 시대의 사회나 문화를 재조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다. 또한 대외관계의 경우 동아시아 여러 나라와의 국제관계속에서 구조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구려의 멸망을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고구려왕정의 피로’에서 그 원인을 찾고자 하는 것이 좋은 예라 하겠다.
그리고 발해의 역사적 정체성을 논하는데 있어 왕의 출신성분만을 중요시한 것도 문제라고 하겠다. 또한 대조영에 대해서는 ‘속말말갈’이라는 기록과 ‘고려별종’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별종’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속말말갈’설에 대해서만 언급한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또한 고구려인 20만 명이 당나라에 잡혀갔기 때문에 마치 발해에는 고구려인은 소수만 남아있는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데, 고구려가 멸망할 때의 고구려 인구는 70만호로 기록되어 있다. 이를 70만 명이라고 보더라도 신라와 돌궐에 간 10만 명을 제외하면 발해에는 40만 명 정도가 남아 살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발해는 고구려와 말갈에 의한 연합정권이라고 보는 것이 역사의 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역사의 정체성을 논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 계승의식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앞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고구려의 역사를 새롭게 보려는 저자의 노력에 대해서는 찬사를 보낸다. 그리고 종래의 잘못된 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새로운 방법론을 개척해나가는 자세에 대해서도 일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디딤돌로 하여 왜곡과 과장의 역사를 지양하고 진정한 ‘있는 그대로’의 입체적이며 본격적인 통사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최광식 / 고려대·한국고대사

필자는 고려대에서 ‘한국고대의 제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우리 고대사의 성문을 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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