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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수’가 좋은 대학을 만든다…그 상식에 답하려면
‘좋은 교수’가 좋은 대학을 만든다…그 상식에 답하려면
  • 방효원
  • 승인 2022.0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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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법과 대학의 미래 ⑧ 대학자치와 교권수호를 위한 대학법

“구성원의 관점에서 대학법은 대학자치와 대학운영의 민주화에 실질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대학 구성원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 각 구성원의 기능과 권리 및 권익에 대한 명확하고 상세한 규정, 
사학법인의 공익적 성격과 이사회의 운영 방법 및 민주적인 거버넌스 확립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야 한다.”

대학은 최상위 정규학교 과정이다. 고등교육 대중화 시대에도 대학 졸업자는 전문적인 능력을 인정받고, 유구한 전통을 계승하고 미래의 발전을 주도하는 인재로서 도덕적 의무감과 사회적 책무를 부여받는다. 그래서 전 세계 어느 국가든 공적 재원을 투자하여 대학을 육성하고, 고등교육의 보편적 실현을 통해 국가 발전을 도모한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가 인정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는 대학의 존립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지역과 대학의 공멸 방지는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왜 대한민국의 대학 교육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혹자는 고등교육을 위한 공적 투자의 부족을 지적한다. 우리 정부의 고등교육 재정 투자액은 OECD 회원국 평균치의 60%에 불과하니 타당한 지적으로 보인다. 정부의 시장경쟁 논리와 고등교육 보편성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빚은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재정만 뒷받침되면 대학이 좋아지고, 특히 지역대학 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 재정지원은 대학 발전의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지금 전 세계 대학들은 과학기술 발전에 조응하는 산업구조 변화에 맞춰 적응과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바로 적응과 변신 여부가 대학 생존을 가른다. 따라서 대학은 위기상황을 맞아 외부 환경을 탓하기에 앞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할 내적 역량 즉 연구 능력과 인재 양성 기능을 냉정하게 점검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단언컨대 대학의 미래는 교수의 비전과 경쟁력에 달려 있다. 그러므로 교수는 탁월한 학문적 성취, 교육자로서의 품격, 공동체를 위한 비판 정신을 겸비해야 한다. 나아가 극심해지는 지역 간 격차와 사회적·경제적 불평등, 세대·젠더 갈등을 해결할 새로운 공동체적 가치를 제시하고 국가 국제경쟁력 향상에 이바지하는 교수가 얼마나 많은지 성찰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대학의 미래는 교수의 비전과 경쟁력에 달려 있다. '좋은 교수'는 어떻게 확보하는가?  사진=픽사베이

날로 열악해지는 사립대 교수 권리와 신분

그렇다면 ‘좋은 교수’는 어떻게 확보하는가? 교원의 권리와 신분이 보장되고, 교육·연구 환경이 양호하고 좋은 근무조건이 제공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지극히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조건이 한국의 대학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우리 대학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훼손하는 비극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헌법은 대학자치와 학문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지만, 교육 당국은 관련 법률의 제정을 무한정 연기함으로써 헌법 정신의 구현을 회피하였고, 그 빈틈에 고등교육의 80%를 담당하는 사학법인의 자의적인 ‘대학 운영의 자율성’이 들어섰다.

왜곡된 대학 자율성이 초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날로 열악해 가는 사립대학 교원의 권리와 신분 보장이다. 국공립대학 교원은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공무원으로서 교원의 권리와 신분이 보장되는 반면, 사립대학 교원에게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이라는 최후 보루가 있지만 헌법 정신을 밥 먹듯이 위배하는 사법부의 어처구니없는 자의적인 판결과 사립대학 교원의 지위에 대한 정부 부처들의 상충하는 판단으로 법률은 속절없이 무력해지곤 한다. 

최근 모 대학에서 벌어진 ‘60세 정년’ 사태는 사립대학 교원의 지위와 신분 보장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법률상 사립대학 교원의 지위와 신분은 “국공립교원에 준한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하여 교육부는 “사립대학 정관에 따른다”라고 하여 대한민국 법률보다 사학법인의 정관을 우선시하는 후안무치를 보여주었다. 대선 후보들은 공약의 단골 메뉴로 연금개혁 카드를 내밀곤 한다.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연금관리 주체 중 가장 재정 상태가 좋은 사학연금관리공단이 정권에 아부라도 하듯이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려고 했다는 시도는 사립학교 교원의 권익 보호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립대학 교원은 사실상 사학법인의 자의적인 은총에 신분과 지위의 보장을 내맡긴 셈이 되고, 사학법인은 대학 운영의 자율성을 앞세워 다양한 이유를 들며 구성원의 신분과 권리를 침해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학업과 강의, 연구 등 대학의 기본기능은 물론이고 대학의 사명과 대학의 구성원과 대학의 법적 지위를 상세하게 열거하는 독일의 대학법을 모범으로 삼을 만하다.

‘대학 구성원’ 개념 정의는 시급한 과제

나아가 대학 구성원의 명확한 정의 및 권리와 의무에 관한 규정은 대학 거버넌스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각각의 구성원은 대학 본연의 임무, 연구와 교육, 수월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합리적인 대학 운영에 동참할 권리를 갖는다. 대학의 장 선출, 대학의 중장기 발전계획, 기구 개편, 구조조정, 재정 운영 등 주요 사안들에 대한 구성원의 동의는 민주적인 대학 운영의 기본요건이다.

그러나 현재 사립대학 대부분은 아무런 견제 장치 없이 이사회의 일방적인 판단으로 대학을 운영하고, 대학의 장을 결정한다. 초등학교 반장도 학생의 직접선거로 선출하는 세태에 비추면 사립대학의 초라한 초상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대학 구성원의 문제는 국립대학에서도 중요한 사안이 아닐 수 없다. 구성원의 권리와 의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비교원이 대학 운영에 대한 참여 범위의 확대를 주장하고, 대학의 장 선출에서 교원과 동등한 권리를 관철하려고 한다. 「교육공무원법」 제23조3항의 개정(2021. 8. 31)으로 이제 국립대학의 장은 구성원의 합의 없이 선출될 수 없다. 연구와 교육의 전문성에 기초한 교원의 특권이 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향후 국립대 구성원의 갈등 해소 차원에서 대학 구성원에 관한 개념 정의는 시급한 과제임이 틀림없다. 

일반 국민은 ‘사학법인=비리·부실’의 낙인을 찍어 놓았다. 적지 않은 사학법인의 반헌법적이고 비민주적인 대학 운영에 대한 징벌적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안은 사학법인이 개인의 사유재산이나 개인 기업이 아닌, 공익법인으로서의 엄연한 지위를 실현하는 것이다. 공공성의 회복을 통해 사립대학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다면 대학의 기본기능을 회복하고, 더불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학법인은 재정과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구성원의 실질적인 참여가 보장되는 이사 선임 방법 개선으로 개방이사 수를 늘리는 등 개방이사제를 현실화해야 한다. 또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부실 사학법인이 명분 있게 퇴출할 수 있는 조치도 강구되어야 한다.

기존의 교육 법체계를 극복하는 대안은 단연코 대학법이다. 우리는 앞선 기사에서 제도적·법률적·사회적 차원에서 제정의 필연성을 주장했다. 구성원의 관점에서 대학법은 대학자치와 대학 운영의 민주화에 실질적으로 작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이 법에는 대학 구성원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의, 각 구성원의 기능과 권리 및 권익에 대한 명확하고 상세한 규정, 사학법인의 공익적 성격과 이사회의 운영 방법 및 민주적인 거버넌스 확립 등의 내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방효원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위원장
현재 중앙대 의과대학(생리학교실) 교수로 있다. 중앙대에서 생리학으로 박사를 했다. 대한생리학회 이사장과 중앙대 평의원회 의장, 교수협의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중앙대 교수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학법과 대학의 미래’ 기획연재는 ‘삼각지 연구팀’의 집단지성으로 마련이 되었고, 연재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다음은 ‘삼각지 연구팀’ 참여 교수입니다. △김용석 대학정책학회장·한국기술교육대 교양학부 △김유경 전 국공립대교수회연합회 사무총장·전 경북대 사학과 △박순준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고등교육연구원장·동의대 역사인문교양학부 △방효원 한국교수노동조합연맹 위원장·중앙대 의대 생리학교실 △안상준 국가중심 국공립대 교수회연합회장·안동대 사학과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이사장·전 광주대 환경공학과&간호학과 △유원준 한국교수노조연맹 수석부위원장·경희대 사학과 △임상혁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법무위원장·숭실대 법과대학 △장민수 전 선문대 국제경제통상학과

이번 기획연재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겠습니다. 반론이나 또 다른 제안도 좋습니다. editor@kyosu.net 로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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