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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과 함께 하룻밤을 보낼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있다면
공룡과 함께 하룻밤을 보낼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있다면
  • 윤정민
  • 승인 2022.02.10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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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류학자의 박물관 이야기』_ 최협 지음(민속원|319쪽)
독일 베를린 박물관 섬에 위치한 독일 개신교 교회 '베를린 돔'이 보인다. 사진=최협

우리는 보통 여행을 준비할 때 그 나라와 그 도시에 어떤 관광지를 다녀올지 고민한다. 좋은 식당, 공원, 공연장 등이 있지만, 박물관과 미술관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음 놓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기 어려운 지금, 최협 전남대 연구석좌교수(사진)가 지난해 8월 펴낸 『어느 인류학자의 박물관 이야기』는 마음속으로나마 지구촌 곳곳의 박물관을 여행하기 알맞은 책이다.

최 교수는 30년 넘게 인류학을 연구하면서 학술대회 등의 인연으로 21개국 40여 곳의 박물관을 다녀왔다. 그가 인류학자가 되기로 다짐한 곳인 미 워싱턴 국립자연사박물관부터 메르세데스 벤츠박물관 등 이색박물관까지 최 교수의 방문기가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에게 ‘박물관’은 학자로서의 ‘인생’을 담은 곳이다.

특히 저자가 여러 국가의 인류학 박물관을 소개하는 글에는 그 국가를 향한 부러움과 우리나라 인류학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함께 엿볼 수 있다.

최협 전남대 연구석좌교수(왼쪽)가 지난해 8월 『어느 인류학자의 박물관 이야기』를 펴냈다. 사진=최협(왼쪽), 민속원(오른쪽)

저자는 민족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등 인류학박물관이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데 중요한 통로’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인류학 관련한 국립박물관이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국립자연사박물관이 없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부 대학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자연사박물관도 있지만, 최 교수는 그 규모가 작아 세계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류학박물관 건립이 논의되지 않았던 건 아니다. 1995년 당시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추진했으나 이후 IMF 경제 위기 등의 이유로 무산됐다. 2000년대 들어서 건립 계획이 다시 논의됐으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빈번히 ‘부적정’ 판정을 받았다. 가장 최근에는 2012년 박근혜 정부가 세종시 국립박물관단지 조성 협약에 따라 국립자연사박물관 부지를 세종시로 확정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박물관 건립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이처럼 최 교수는 매 박물관을 소개할 때 ‘왜 이 박물관을 방문하거나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가’를 담았다. <교수신문>은 그가 소개한 박물관 40여 곳 중 주요한 곳을 짚어봤다.

 

 

일본국립민족학박물관 남아시아관. 사진=최협

엑스포를 연다면 일본처럼

1977년 완공된 일본 국립민족학박물관은 오사카 엑스포 기념공원 안에 위치해 있다. 일본 정부는 왜 이곳에 ‘세계의 모든 민족문화를 연구하는 센터’를 만들었을까. 최 교수는 1970년 오사카 엑스포가 열렸던 곳에서 “세계와 소통한 일본이 이제 자국의 문화를 넘어 세계 모든 지역의 문화를 함께 연구하고 보존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105쪽)이라고 말했다.

민족학박물관을 세운다는 건 그만큼 민족학 유물들을 많이 확보했다는 의미다. 당시 오사카 엑스포에는 77개국이 참여했다. 참여국들은 국가전시관에 자국을 대표하는 민족학적, 문화적 물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그 물품들을 엑스포가 끝난 뒤 기증받기 위해 각국을 설득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덕분에 이 박물관은 지금까지 민족학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며, 연구하고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자리잡게 됐다.

최 교수는 책에 이 박물관을 소개하면서 1993년에 열린 대전 엑스포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다. 대전 엑스포 개최 당시 최 교수는 참가국 108개국에 민속품을 기증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정부에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런던자연사박물관 중앙홀에서 사일런드 디스코를 즐기는 영국 시민들(왼쪽), 공룡과 함께 하룻밤을 보내는 시민들.
사진=런던자연사박물관 페이스북

박물관에서 디스코 춤을 춘다면

최 교수는 자연사박물관이 자연의 역사 전체를 대상으로 다루지만, 이 중 일부분인 체질인류학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부터 호모 사피엔스까지 인간의 생물학적 진화를 다뤄왔다고 말했다. 즉, “인류학 분야의 성과가 연구와 전시를 통해 이루어지고 소통되는 장소가 자연사박물관”(269쪽)이다.

2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350여 명의 연구진을 두고 있고, 약 8천만 점의 자연사 자료와 표본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찰스 다윈의 연구 자료들이 이곳에 있어 다윈전시실도 둘 정도다. 2009년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아 8층 높이의 건축물을 증축해 ‘다윈센터’를 열었다. 초현실주의적인 구조물이지만 1800년대 후반에 지어진 구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최 교수는 사람들이 전시를 이색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한 박물관의 기획력에 주목했다. ‘사일런트 디스코’는 그중 하나로, 박물관 중앙홀에서 헤드폰을 착용한 채 공룡 표본 등 유물들 사이에서 디제잉을 듣도록 한 프로그램이다. 만 18세 이상 시민들만 참가할 수 있으며, 저녁에 3시간씩 2회 진행해 새벽1시에 끝난다. 이 프로그램이 진행될 때는 박물관에서 술도 팔고 있어 직장인들이 퇴근하고 많이 찾는다고 한다. 이밖에 중앙홀에 캠핑장처럼 마련해 하룻밤을 지내도록 한 ‘공룡의 하룻밤’ 프로그램도 매회 예약이 열리자마자 매진되는 만큼 인기가 많다.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는 이슈타르 문. 사진=페르가몬 박물관

서양 박물관 편견을 깨는 페르가몬 박물관

독일 베를린의 ‘한강’ 슈프레 강에는 여의도의 4분의 1 크기의 섬이 있다. 이 섬은 보데 박물관, 페르가몬박물관 등 박물관 4곳과 미술관 1곳을 구성하고 있어 ‘박물관 섬(Museumsinsel)’이라고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이 섬에는 지금도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문화행사들이 열리고 있다.

최 교수는 박물관 섬의 다섯 박물관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페르가몬 박물관을 책에 다뤘다. 서구 박물관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산물로만 보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다.

이곳에는 고대 바빌론의 성문 ‘이슈타르 문’과 페르가몬 왕국의 ‘페르가몬 제단’을 볼 수 있다. 두 유물 모두 오스만제국 당시 발굴해 독일로 가져온 것들이라 독일이 약탈한 것 아닌지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유물은 오스만제국의 승인으로 이뤄진 ‘문화재 복원사업’에 따라 전시가 가능한 것들이다. 실물 그대로 복원하는 데 선진 과학기술과 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슈타르 문은 11세기 중 지진으로 파괴돼 흙더미에 묻혀 방치돼 있었다. 이후 19세기 영국과 독일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독일로 가져와 10년 넘게 복원작업을 벌였다. 박물관에는 이슈타르 문 복원작업 당시 사진과 복원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이 복원작업이 “고고학 복원사 중 가장 세심하고 치밀하면서도 거대한 복원 프로젝트 중 하나”(185쪽)라고 평가했다.

대중들이 서구 박물관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산물로만 보는 인식에 대해 최 교수는 물론 식민주의적 문화재 약탈이 비판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으나, “오늘날 유럽의 유수 박물관에서나마 사라지거나, 잊히거나, 파괴됐을지도 모르는 인류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보존됐다는 건 어찌 보면 다행스러운 일”(186쪽)이라고 말했다. 현대에 들어서야 문화재 보호·보존 개념이 세계적으로 확립되는 만큼 박물관을 바라보는 시각에 편견을 가져선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에 전시된 제임스 루나의 'The Artifact Piece'. 사진=최협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에 전시된 제임스 루나의 'The Artifact Piece'. 사진=최협

인디언을 ‘위한’ 박물관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립 아메리카 인디언 박물관은 백인 중심 사회에서 타자(他者)로만 치부되던 아메리카 원주민의 의견이 적극 반영된 곳이다. 원주민이 살던 자연환경을 반영하고자 건축 구조를 곡선으로 처리했고, 건물 색을 흙색으로 칠했다. 미 인디언 사무국 차관보이자 포니 부족 출신인 케빈 고버(Kevin Gover)가 지난해 1월까지 약 15년 동안 박물관장으로 역임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이 박물관의 주요작품으로 시각 예술가 제임스 루나(James Luna)의 「The Artifact Piece」를 소개했다. 진열대에 인디언이 누워있는 모습의 이 작품은 1980년대 당시 인디언 문화를 마치 죽은 유물처럼 취급하던 박물관들을 비판하고자 만들어졌다.

 

스웨덴 바사 박물관 전경과 인양 당시의 바사 호. 사진=바사 박물관
스웨덴 바사 박물관 전경과 인양 당시의 바사 호. 사진=바사 박물관

배 한 척을 위해 지은 박물관

스웨덴 바사 박물관 안의 주요 유물은 배 한 척이 전부다. 이 배는 17세기에 건조된 스웨덴 전함 바사(Vasa) 호로 당시 스웨덴 해군의 신식 군함이었다. 하지만, 첫 항해 때 출항 후 얼마 안돼 침몰하면서 333년 후인 1961년 인양됐다.

놀라운 점은 목선인데도 인양 당시 보존 상태가 양호했다는 것이다. 스톡홀름항구 앞바다 바닷물의 낮은 염도와 수온으로 어패류와 배벌레가 살기 어려운 등 목선 파손의 위협 요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인양 후 복원·보존작업도 이 박물관이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다. 300년 이상 바닷물과 펄에 젖은 목선을 건조·복원·보존하기 위해 당시 최첨단 문화재 복원 기술이 투입됐다. 지금도 목재 습도 조절 등 바사호를 꾸준히 보존하기 위한 전략이나 선박 인양 때 발견된 선원 유골을 3D 인물로 복원하는 등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즉, 이곳에 방문하면 문화재 복원·보존 기술의 진수를 엿볼 수 있다.

지난해 11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시행되면서 하늘길이 활기를 되찾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오미크론 등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 유행이 거세지면서 해외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민들은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언젠가 하늘길은 다시 열릴 것이다. 최 교수의 책은 팬데믹이 끝난 뒤, 어느 박물관을 다녀올지 마음속으로나마 미리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윤정민 기자 luca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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