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1:20 (금)
몸에 체화된 마음…신경체계 없이 설명될까
몸에 체화된 마음…신경체계 없이 설명될까
  • 이영의
  • 승인 2022.02.11 1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_『신경과학철학』 | 이영의 지음 | 아카넷 | 484쪽

뇌중심주의 극복하는 체화주의 가능할까
마음을 해명하기 위한 과학·철학의 지평

이 책은 우리 마음의 작동 방식을 해명하려는 인류의 오래 된 프로젝트의 최근 성과를 종합적으로 소개하고, 이 문제를 다루는 하나의 구도를 제시한다. 오랜 공부와 학문적 고민과 노동의 산물이다. 서평자는 이 책이 한국의 인지과학에서 이정모의 『인지과학: 학문 간 융합의 원리와 응용』(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4)이 했던 역할을 신경과학철학에서 하리라고 예견하며, 또 그렇게 기대한다.

 

저자는 책 첫머리에서 이 책을 “처칠랜드의 『신경철학』(1986)의 영향을 받아 저술”했다고 밝힌다. 그러나 그는 처칠랜드의 철학이 “그것의 근본적인 특징인 뇌중심주의로 인해 ...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라고 평하면서,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체화주의를 제안한다. 그렇게 이 책은 처칠랜드 부부 등의 공헌으로 확장된 신경과학 기반의 마음 해명 작업을 조명하면서 체화주의 그리고 확장된 마음과 행화주의 등 그것에 인접한 몇 가지 견해를 수용하여 이 해명을 보완하려고 한다. 

이 짧은 서평에서 뇌중심주의와 체화주의를 논하기는 어렵겠지만, 서평자는 뇌중심주의와 체화주의가 서로를 배제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범위 설정의 문제라기보다 무게 분산의 문제나 초점의 문제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라고 해서 두 진영 간의 논쟁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는 그것의 이론적 차원을 다루는 12장을 찬찬히 살펴보면 좋을 것이다. 

중앙신경체계에서 대뇌 이외의 부분, 예컨대 척수나 말초신경계가 심적 현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밝혀진다면 논의의 지형이 달라질까? 그럴 것 같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이 ‘체화’라는 관점의 요체를 제대로 반영하는 방식일지 의심스럽다. 샤피로가 비판하는 분리 논제(128쪽)를 옹호할 논자는 아주 적겠지만, 신경체계라는 장치의 힘을 거치지 않고 실현 가능한 몸의 역할이나 몸의 공헌이란 거의 없으리라는 사실―이러한 지적은 확장된 마음 논제가 결합과 구성을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아담스·아이자와의 비판(132쪽)과도 통한다―을 고려한다면, 체화의 관점을 어떻게 정식화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이 책에서 저자는 체화주의 진영의 지형을 개진하며 조심스러운 전망을 제시하는 데서 그치고 있지만 아마도 그의 마음속엔 어떤 선택과 그 다음 이야기가 이미 만들어지고 있을 것으로 본다. 그 이야기도 곧 듣고 싶다.

 

국내 연구자 참고문헌 꼼꼼히 다뤄

이 책의 참고문헌 목록은 후학과 동료들이 참고할 훌륭한 정보 원천이다. 특히 그것이 국내 연구자들의 문헌들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한국의 동료 연구자들에 의해서도 이미 상당한 논의가 진행된 문제를 다루면서도 국내의 문헌을 참고할 생각조차 않거나 기껏해야 구색 정도로 끼워 넣는 일부 논저의 모습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모범이 된다. 다만, 책의 본문에서 그런 참고의 관계를 좀 더 명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후학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본다. 그것이 마음 현상의 해명이라는 과제를 놓고 (신경)과학과 철학이 어떻게 얽혀들고 있는지에 관해 풍부한 정보와 정제된 길잡이 기능을 제공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 책은 철학과 과학의 영역을 매끄럽게 넘나들며 핵심적인 문제와 토론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질서정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한다. 당장 1부와 2부, 그리고 5부의 13장을 묶으면 표준적인 심리철학 또는 인지철학의 교재가 될 것 같다.

 

인간의 뇌 모양. 사진=위키백과

반면에 이 과제에 관한 이영의 교수 자신의 대답은 아직 완성형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한편으론 선물에 굳이 자기 모습을 또렷이 새겨 넣을 생각이 없는 저자의 고유한 성품이지 싶고, 다른 한편으론 여전히 진행형인 연구의 여정에 아직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 없다는 그의 태도표명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가 되면서도 못내 아쉽다. 서평자는 저자가 이 노작에서 드러난, 다채로운 견해들에 대한 식견과 뛰어난 균형 감각을 넘어, 다음 저서에서는 그의 생각을 시퍼런 풀내가 나는 글로 제시해주기를 벌써 기다린다.

 

 

 

고인석
인하대 철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