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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이대근 외 지음, 나남출판 刊, 2005, 596쪽)
논쟁서평: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이대근 외 지음, 나남출판 刊, 2005, 596쪽)
  • 송규진 고려대
  • 승인 2005.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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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실증연구 축적...연구방향의 지나친 편중 문제

송규진 /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한국사

낙성대경제연구소에서 기획하여 발간한 ‘새로운 한국경제발전사’는 전통사회의 경제와 그 이행, 국제관계와 시장경제제도의 발달, 경제성장과 공업화전략, 과제와 전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조선후기로부터 19세기 개항을 통한 문호 개방과 서구 문물의 도입기, 식민지기, 해방과 민족분단, 그리고 6·25전쟁을 겪은 혼란기, 1960~70년대의 경제 도약과 고도성장기, 1900년대 이후의 IMF 경제위기와 구조조정, 그리고 경제패러다임 전환에 처한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발전사적 시각에서 다루고 있다.

집필진에서 겸손하게 이야기하듯이 필자들이 많기 때문에 책의 일관적 통일성에서 문제가 있고 반드시 다루었어야 할 주제들을 빠트린 경우가 있다고 해도 한국근현대 경제사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또 통계를 자료로 활용하고 추계 등의 방법론을 활용하면서도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이 책은 각각의 장들이 논문형식을 취하고 있고 장마다 주제가 다르기 때문에 책 전체를 일률적으로 평가하면 무리가 따를 수 있다. 다만 집필진이 이 책의 집필 동기를 총론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기 때문에 동기와 그 결과에 중심을 두고 살펴보고자 한다. 집필진은 17~19세기 조선 후기 이후 오늘에 이르는 한국경제의 긴 역사적 전개과정을 놓고 어떤 측면에서든 기존의 통설과는 다른 시각에서 그것을 재평가·재해석하고자 했다. 집필자들이 이야기하는 기존의 통설과 다른 시각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집필진의 의견을 종합하면 다음의 두 가지가 아닌가 한다. 먼저 조선 후기의 상품화폐경제의 발전과 자본주의 맹아의 출현, 개항 이후 세계시장에로의 편입과 외압에 의한 ‘내재적 발전’의 좌절, 식민지 지배에 대한 수탈과 그에 대한 저항이라는 관점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세계사에 그 유례가 없는 경제발전에 대해서 국내에서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풍토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역사학계에서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논의 중의 하나가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수탈론’을 둘러싼 문제이다.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 이 책은 명확하게 자신들의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역사학계에서는 조선후기 이래 내재적으로 성장해온 근대화의 싹이 일본의 침략에 의해 짓밟히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발전해왔는가를 밝히는 데 집중되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종래 일제 식민사관에 의해 각인되었던 ‘한국사 정체론’을 불식하는데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런데 이 책의 집필진은 특정 이념(이데올로기)을 앞세운 규범적 연구방법론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객관적 史(資)料에 기초한 실증적 방법으로 선회하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기울이자고 주장하면서 기존 역사학계의 통설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역사학계에서도 기존 연구에서 조선후기의 발전상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구체적인 사료에 입각해서 농업생산력이 발전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전했다는 것을 입증해 냈다. 그런데도 이 책은 ‘새로운’ 관점을 주장하기 위해 몇 가지 부분적인 사례로 전체를 확대 해석하려는 문제를 드러냈다. 제2장에서는 조선후기의 생활수준이 이전보다 열악했다는 것을 분석하려고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선의 농업이 상대적으로 가장 후진적이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조선후기 토지생산성의 하락 원인으로 이앙법이 보급되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85~86쪽). 그런데 이는 제3장에서 시장경제가 발전한 원인의 하나로 이앙법과 같은 농업기술이 보급되어 농업생산성이 높아짐으로써 농민들이 교환할 수 있는 잉여생산물이 늘어났음을 지적함으로써(113쪽) 논리가 모순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또 다른 규범적 연구방법론을 활용했기 때문이 아닐까.

일제하 한국경제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일본제국주의에 의해 무제한적인 수탈이 자행되었다는 다소 감정적인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은 민족해방운동의 당위성을 부각시키려는 실천의지를 담고 출발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와 긍정성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감정적인 차원의 설명으로는 전근대의 약탈과 구별되는 제국주의 단계의 식민지 수탈구조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할 수 없었기에 이론적이고 실증적으로 내용을 채워가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런 점에서 집필진이 ‘경제성장론’에 초점을 맞추면서도 많은 실증적 연구를 축적하고 있고 많은 논점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연구자의 한 사람으로서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통계분석에 입각하여 당연히 도출되게 마련인 경제의 성장에 치중되어 그것에 내재된 정치적 의미, 계급적 성격, 식민지자본주의의 질적 성격과 발전전망, 삶의 질의 문제 등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채 통계에 의한 결과를 전체상으로 파악하는 것은 결국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특히 통계수치를 제시하며 식민지기 조선인의 생활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주장(제10장)은 많은 논란이 예상된다. 당시 일제하의 수많은 자료와 일제를 경험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증언은 모두 거짓에 불과하단 말인가?

196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 없다. 이 책에서 국내에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데 누가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인지 그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 아마 이 책의 집필진의 불만대상은 한국의 경제성장과정에서 구조적인 문제점을 분석한 연구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 동안 재벌에 대한 특혜 및 정경유착, 수입확대 및 대외의존, 정부의 고도한 개입, 금융통제와 배분 불균형, 중화학공업화의 부적절한 시기선택과 과잉·중복투자·저효율, 노동문제 및 빈부격차, 농업문제, 환경 문제 등에 대한 많은 연구가 축적되었다. 과연 이러한 문제제기를 일컬어 이데올로기적 편향과 왜곡으로 매도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왜곡’과 ‘편향’에 맞서 이 책에서는 명확하게 ‘새로운’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국의 ‘재벌’유형의 기업집단은 세계적으로 보편적 현상이라는 점과 한국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재벌의 확장능력과 그를 지원한 정부의 강력한 정책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입증하기 위해 재벌경영은 효율성이 높았음을 강조했고 재벌이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어불성설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제14장).

노동정책과 노사관계에 대한 시각은 더욱 ‘새롭다’(제15장). 노동조합에 대한 규제가 강력해져 노동운동이 위축된 유신체제하에도 개별근로자를 보호하는 조치가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박정희정권의 노동시장정책도 대단히 모범적인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1980년대 학생층의 노동운동 침투(?)도 당시의 자본-노동관계는 고려하지 않고 해방 당시 남한 사회주의 사상의 연장선상에서 1980년대 당시까지도 북한사회에 대한 동경과 환상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1987년 이후에는 근로자 과잉보호를 상쇄하던 노동조합에 대한 통제가 해체되면서 이전에 존재하던 힘의 균형이 노조와 근로자에게 유리하게 바뀜으로써 노동손실일수가 증가하는 등 한국경제에 암초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한국인의 반기업정서에 대해서도 기업자체의 문제를 지적하기 보다는 교육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중등학교 단계에서 올바른 경제관과 노동관을 가지도록 교육해야 하며, 근로자 대상의 교육에서도 올바른 노동의식과 기업관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평가할 능력이 없다. 다만 집필진에서 내세우는 객관적 史(資)料에 기초한 실증적 방법을 강조하려면 그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해야 보다 설득력이 있을 것이라고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한국사 정체성론’과 ‘식민지근대화론’, ‘중진자본주의론’이 결합된 것이라는 느낌을 준다. ‘한국사 정체성론’은 한국사에 대한 ‘특수성’을 강조하면서 ‘합방’ 이전 한국사의 모든 역사적 행위가 결코 근대화를 지향할 수 없었다고 규정하는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 및 ‘중진자본주의론’은 내적 동인이 없어 자력으로 근대화를 할 수 없던 한국사회가 식민지지배를 통해 발전했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해방이후 중진자본주의, 선진자본주의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에도 개항기의 경제성장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식민지기와 달리 이 시기에 한국의 교역조건이 뚜렷이 개선되는 등 경제성장의 동력이 있음을 밝힌 논문이 있다((제4장). 또 일제의 수탈, 한국인들이 그로 인해 받은 피해, 그 부정적 유산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347쪽)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초점이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수탈론’ 비판에 맞추어지다 보니 이런 문제의식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지고 만 느낌이다.

그동안 이 책의 집필진들이 주장해온 ‘경제성장론’에 대한 학계나 일반인의 비판이 다소 감정적인 경우도 있고 곡해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집필진도 일제의 수탈, 한국인들의 피해, 또 한국의 경제성장 이면에서 소외된 많은 문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않은 데 대한 자기성찰이 부족하다. 이는 연구방향이 지나치게 편중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국민이 자기역사의 객관적 사실에는 눈이 멀고 자기도취사관에 빠졌다’(22쪽)고 문제를 삼을 것이 아니라 일제가 가한 수탈의 객관적 사실, 독재정권이 가한 재벌에 대한 특혜 및 정경유착 문제, 노동착취 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균형적 자세가 필요하다. 서평자는 이 책이 우리 학계에서 소홀시 되었던 한 측면을 복원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다만 아쉬운 점은 그것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함으로써 기존 학계에서 거둔 학문적 성과를 ‘신화’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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