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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남자다움’을 강요받았나
그들은 왜 ‘남자다움’을 강요받았나
  • 김수아
  • 승인 2022.01.27 0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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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남성성의 각본들』 허윤 지음 | 오월의봄 | 368쪽

억압적 치안국가 형성에서 강제된 허구적 남성성
1970년대 문학 속 리얼리즘 미적기준은 젠더 편향

이 책은 한국의 역사를 통해 근대성과 남성성의 문제를 다루면서, 식민지시기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민족국가의 성립 과정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으로 떠오르는 각본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어 준다. 그리고 이러한 각본의 성립을 위해 누락된 복수의 다양한 남성성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문학 작품과 잡지, 그리고 영화 등 대중문화물의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비(非)남성의 담론들을 살피는 것이 주류 남성성이 보편적인 것을 가장하지만 사실상 구성된 허구적인 것이라는 점을 보이고, 새롭게 이를 재구성할 가능성을 확인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사회에서 정전(正典)화된 남성성 즉 헤게모니적 남성성은 리얼리즘이 추구해온 보편적 주체이자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통해 구축된 ‘남성=군인=국민’의 공식 속에서 구축됐다. 저자는 이러한 억압적 치안국가의 형성 속에서 ‘남자다운 것’을 상실한 비남성적 주체들이 문학 속에서 균열적 주체로 등장하는 장면들을 포착했다. 예를 들어 1950년대 결혼을 거부하고 남성다움을 수행하지 않으려는 청년들이 등장하는 당대 소설들은 훼손된 신체로 인해 군인이 될 수 없는 남성들의 형상을 통해 당시 국가가 건설하고자 했던 민족국가에 발생한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젠더 교란이 장르적 특징으로 등장하는 여장 남자 코미디 영화나, 남성성을 수행하는 여성들을 보여준 여성국극(여성들만 나오는 창극)의 세계는 성별이분법의 틈새 속에서 헤게모니적 남성성이 억압하고 있는 퀴어한 존재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그려낸다. 

또한 저자는 우리 문학에서 가장 보편적 주체로 형상화된 리얼리즘 문학 속 남성성은 노동자와 민중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박정희 체제가 호명한 민족의 영웅이라는 헤게모니적 남성성과 겹쳐 읽어야 한다고 진단한다. 헤게모니적 남성성을 이루지 못할 운명의 남성 주체들에 대한 연민이 표출되는 이 각본에서는 여성에게 정형화되고, 비가시화되며, 남성의 성장을 위해서 동원되는 도구적 역할만을 허용한다. 민중인 남성에게 부르주아 여성이 적으로 설정되고, 하층 계급 여성은 향수적 대상으로 사라지는 것이 되는 1970년대의 문학에서 결국 리얼리즘의 미적 기준은 젠더적으로 편향된 것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이 책이 엮어내는 역사적 사건과 우리 대중문화의 장면들은 보편적이고 헤게모니적인 남성이라는 허구적 주체가 활약하는 각본을 구성하기 위해 누락된 인물, 사건, 배경들을 검토하여 이 각본의 의미를 해석하고 복원해낸 또다른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해석을 위해 서구 이론가들의 논의가 동원되지만 우리 사회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되면서 우리 사회가 구축해온 남성성의 각본들을 역사화하는 방식으로 활용되었다. 

 

여성혐오와 페미니즘 공격이 교차

또한 이 책에서 분석된 남성성의 각본들을 현재 우리가 만나는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예를 든 것은 애국을 표방하는 호전적 남성성 각본으로, 국가를 재건하기 위해 세월호 유족과의 연대를 거부하고 이들을 모욕하는 서북청년단 재건준비위원회를 통해 재연되었다. ‘자유부인’이라는 형상에 여성을 투영하고 과소비, 공산주의, 성적 문란함 등의 기표를 부가해 여성혐오를 통해 국민을 구성하고자 했던 1950년대의 공론장 모습은 페미니즘이 반헌법적 가치라면서 우리 사회에서 몰아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2020년대 온라인 공론장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볼 수 있다. 

페미니즘이 해온 일 중 하나는 남성만을 일등 시민으로 간주하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주체들의 목소리를 억압해온 역사를 드러내고, 그 억압이 언제나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 일등 시민의 허상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이 책이 분석해 낸 남성성 규범에 다다르지 못한, 그래서 규범의 실패를 보여주는 소설 속 화자, 기사 속 주인공들의 삶은 그 하나하나가 바로 이 지배적 허구의 증명들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남성성 각본의 구성됨이란 바로 변화 역시 가능하다는 의미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현 상황에서 지배적인 남성성 각본의 모습은 어떤 인물과 배경을 누락한 채 구성되었으며, 어떤 변화가 가능할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 출발선을 그려준 것이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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