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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민중·노동’이 쏘아올린 비판사회학을 그리다
‘분단·민중·노동’이 쏘아올린 비판사회학을 그리다
  • 유무수
  • 승인 2022.01.2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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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비판사회학의 계보학』 정수복 지음 | 푸른역사 | 412쪽

우리가 발 딛고 선 ‘보고 경험하는’ 현실의 문제들 
외국이론이라면 주체적 시각으로 해명 후 적용한다

이 책은 미국 표준사회학을 준거로 삼는 주류 사회학을 비판하고 한국의 현실에 적합성이 있는 비판사회학의 길을 추구한 이효재, 한완상, 김진균의 삶과 학문을 다룬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 사회의 긴급한 현실적 문제를 개혁하는 사회학에 관심을 가졌고, 1980년대 권위주의 정부 시절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해직당한 교수였다. 1970년대 이후 형성된 한국의 비판사회학은 민주주의와 민족주의, 민중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웠고 △정치적 억압 △경제적 불평등 △사회적 소외 △문화적 가부장제 △분단의 지속 등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설정했다.

 

이효재는 해방 후 미국유학을 한 첫 세대 사회학자이며, 1958년 선배 사회학자 고황경과 함께 이화여대에 사회학과를 창설했다. 이효재는 4·19, 5·16을 거치며 정치사회적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미국사회학을 가르칠 때 우리 사회에 맞는 학문이 아니라고 느꼈고 여성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의식화하는 사회학을 모색했다. 1970년대에는 독재권력과 분단현실을 비판했고, 1985년에는 분단시대를 살아가는 가족과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글을 모아 『분단 시대의 사회학』을 출간했다. 또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조직하고 여성민우회를 창립하는 등의 개혁적 실천활동을 했으며, 1990년대에는 부모 성 같이 쓰기를 주창하여 자신의 이름을 ‘이이효재’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한완상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한국 비판사회학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한완상은 중학교 시절 한국전쟁의 상황에서 사회의 모순과 부정부패의 현실을 목격하면서 “사회는 병이 났을 때 왜 고치는 의사가 없는가?”하는 의문을 가졌고 사회의 영과 육을 고칠 수 있는 사회의사가 되기 위해 사회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부패와 억압이 극심했던 군대 환경 속에서 사회학은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지식으로 향상시켜야 한다”라고 믿게 되었다. 한완상은 1970년대 후반 ‘민중사회학’의 영역을 발전시켰다. 그는 사회의 현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현실일 때는 반드시 개선되거나 변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완상은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에서 공직자로 활동했다.

 

왼쪽부터 이이효재, 한완상, 김진균. 사진=교수신문 DB

김진균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90년대에 민중과 민족의 관점에서 비판사회학을 지향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활동했다. 김진균은 1956년 입시준비를 위해 서울 달동네에 살면서 생존경쟁의 현장을 체험했고 사회적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유신체제의 민주화탄압이 강화되고 지인들이 각종 사건에 휘말려 대학을 떠나고 동생이 용공조작 사건으로 구속되면서 김진균은 민주화 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비판적 지식인으로 급진화되는 길을 걷게 된다. 김진균은 외국에서 새로운 학문을 도입할 때 그 속에 어떤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는 것을 거부했고 도구로서 주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우리가 발 딛고 선, ‘보고 경험하는’ 현실 그 자체의 독특한 문제구조를 우리의 주체적 시각에서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김진균은 1990년대에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설립활동을 했다.

정수복 저자는 사회학자의 임무는 더 좋은 삶이 가능한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지식을 생산하고 공유하고 유통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사회학적 지식은 특히 위기의 시대에 유용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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