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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구 파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강정구 파문: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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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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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병헌 서강대 강사(정치학)


사회주의 아닌 ‘민중 민주주의’해방 직후는 철저한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한 요구가 분출했으며, 건준, 인공에 대한 대중적 호응이 컸다. 이는 당시 ‘좌파’가 내거는 친일청산, 농지개혁 등이 시대적 과제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 때의 사회경제적 모순의 해결을 위하여 요구되었던, 그리고 광범위한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이념은 보다 민중적인 민주주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념은 오늘날 관점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규정될 수 없으며 반공민주주의 혹은 프랑스혁명 당시 급진적 민주주의 이념과 유사한 것이었다.

김기봉 경기대 교수(역사이론)

맥아더 논의, 정치화 아쉬워 맥아더 평가와 동상철거 주장이 옳고 그르다는 판단보다 논의 자체가 터부시됐던 맥아더 관련 사항이 공론의 대상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학문적으로 접근하려는 지혜가 필요한데 현재 너무 정치적으로 흐르고 있다. 시민단체가 양분돼 극한대립을 벌이는 바람에 다른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애버렸다. 강정구 교수 구속수사에 대한 논란은 사법적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개인적으론 역사정치학적 논쟁을 벌여야 할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허만호 경북대 교수(정치학)

통일전쟁에 찬성하냐가 문제한국전쟁은 ‘공산화 통일’을 지향한 전쟁이었으므로
‘통일전쟁이었다’고 말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지향점을 강 교수가 찬동하는가가 문제가 되어야 한다. 탈식민주의가 해방공간의 시대적 주류였으므로 “사회주의 지향”이라는 표현은 일정부분 맞다. 그러나 강 교수가 인용한 미군정청 여론조사국에서 1949년 12월에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사회주의 지향’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시 응답자는 사회주의를 알고 사회주의를 선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주백 서울대 선임연구원(한국사)

해방정국은 민족열기 강해 광복 직후의 여론은 민족적인 상황이 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열기를 없앨만한 우파의 정책 기반 자체가 취약했다. 그런 반대급부를 중도좌파가 가졌다. 따라서 당시의 대중이 설사 사회주의를 선택했더라도 그것이 뭔지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구별할 수 있는 대중이 얼마나 있었겠는가. 또 당시는 요즘처럼 과학적 방법론을 동원한 여론조사도 아니었다.  따라서 강 교수가 그 통계를 인용한 것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이다.

김용직 성신여대 교수(한국정치사)

맥아더는 훌륭한 군인 맥아더에게는 두 가지 객관적인 공이 분명히 있다. 하나는 제2차대전에서 일본에게 항복을 받아내,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을 해방시켰다는 점이고, 그 다음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백척간두에 놓인 한국을 살렸다는 것이다. 만일 그가 무능한 군인이었다면 한국은 이미 망했을 것이다. 맥아더는 한국에서의 활동을 떠나 전세계적인 군인 사회에서도 뛰어난 평가를 받는 군인이었다. 더 이상 맥아더를 가지고 시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없다.

조병선 청주대 교수(형법)


법무장관, 법규근거 위반 검찰청법 8조를 보면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지휘할 수 있지만,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지휘하지 못한다고 나와있다. 이번 사건이 일반적인 지휘 성격을 띠고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구체적인 지휘에 해당하기 때문에 법규 근거 위반에 해당한다. 강정구 교수의 견해에 대해서는 통일에 대한 관점이라보다는 전체주의적인 사고, 즉 파시즘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민족을 앞세우는 것은 위험한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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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넘들 2005-10-28 02:18:51
8만8천명의 비전임 시간강사 문제에 대해서 위의 교수들은 한마디씩 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