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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연구
열하일기 연구
  • 최승우
  • 승인 2022.01.18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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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지음 | 돌베개 | 842쪽

『열하일기』가 담고 있는 거대한 세계

이 책의 초판이 출간된 1990년까지 『열하일기』 자체를 연구의 대상으로 삼은 성과물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물론 전통시대의 연행(燕行) 사신들이 썼던 여행 기록과 연암 박지원의 연행기는 차원이 달랐다. 내용과 형식 모든 면에서 『열하일기』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열하일기』 전체를 조망하기보다는 그 책에 수록된 「호질」 「허생전」 등의 단편과 북학(北學) 사상에 초점을 맞췄다. 1990년대까지 우리 학계는 주지하듯 ‘내재적 발전론’이라는 시각에서 실학(實學)이라는 사상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의 흐름을 단숨에 바꿔놓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 책을 통해 부분이 아닌 전체로 연암 박지원이라는 문제적 인물을 파악하고 『열하일기』에 담긴 거대한 세계를 조망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의 출간이 한 계기가 되어 『열하일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번역본들과 교양서들이 잇달아 나오고, 심지어 작품의 배경인 열하 지역이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부상하기도 했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사상적 논설, 시화와 잡록, 문서나 서적으로부터의 발췌 등 다종다양한 내용을 수록한 백과전서적 체제를 갖춘 저작이다. 이 책은 이러한 『열하일기』의 체제를 해체해서, 청조 중국의 현실에 대한 연암의 인식과 이에 기초해 전개된 그의 북학론으로 재구성하여 논하고 있다. 그리고 이 논의와 밀접한 관련 아래 『열하일기』의 문예적 표현 기법을 다각도로 고찰했다. 따라서 이 책은 『열하일기』의 문예적 측면을 중심으로 기술하면서도, 문(文)·사(史)·철(哲)을 포괄하는 종합적 서술을 지향한다.
이 책의 성과로 인해 연암 박지원은 진정한 조선의 대문호로 거듭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3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열하일기』 최고의 연구서로 꼽히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열하일기』의 형성 배경에서부터 연암의 당시 중국 현실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 저작의 표현 형식상의 특징과 당대 문단에 끼친 영향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해명하고 있다.

연암 박지원 연구에 평생을 바친 학자의 최고의 성과물

김명호(金明昊) 교수에게 연암 박지원은 마르지 않는 샘이고, 평생의 화두다. 연구의 범위를 넓혀가는 다른 학자들과 달리 김명호 교수는 우직하게 연암이라는 한 우물만 팠다. 연암 박지원에 이어 박규수(朴珪壽) 연구에도 매진했으나, 박규수 역시 연암의 손자이면서 그의 문학적·사상적 계승자이니 연암이라는 자장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단행본으로 정리된 박사학위 논문이 바로 이 책의 초판본 『열하일기 연구』다. 이후로 연암 연구서로는 『박지원 문학 연구』(2001), 『연암 문학의 심층 탐구』(2013)를 더 냈다. 그리고 연암 박지원 평전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홍대용이라는 넘어서지 않으면 안 될 큰 산을 마주하고 『홍대용과 항주의 세 선비』라는 거작을 또 한 권 펴냈다. 아울러 『연암집』(燕巖集) 완역본, 『지금 조선의 시를 쓰라』 선역본을 펴냈다. 김명호 교수의 연암 박지원 연구 성과는 현재 학계 최고의 수준이다.
『열하일기 연구』의 초판본이 나온 지 30년이 지났지만, 현재까지도 이 책은 『열하일기』에 대한 “거의 유일한 본격 연구서”로 남아 있다. 이 책을 넘어서는 성과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꾸준히 재출간 요청이 있었고, 저자의 제자들은 구식활판 인쇄본인 초판본 텍스트를 직접 입력해서 저자에게 선물하며 재출간을 희망했다. 이제 수정증보판을 펴내며 저자는 초판본 『열하일기 연구』 이후 쌓아 온 모든 연구 성과들을 한 권에 담았다. 저자로서는 평생을 바친 과업이고, 학계로서는 연암 연구의 최고의 성과물인 셈이다.
무엇이 수정되고 증보되었는가?

초판과 달리 수정 증보판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초판의 체제를 유지하되, 저자와 학계의 30년간의 연구 성과를 적극 반영하는 방향으로 집필했다. 원래 7장으로 구성된 목차를 6장으로 조절한 것 외에는 초판의 틀을 거의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수정 보완이나 연구사와 관련된 추가적인 논의 등은 모두 주석으로 돌렸다.
연암의 사상을 논한 3장 ‘중국 현실의 인식과 북학론’은 서학(西學)의 영향을 좀 더 강조하는 쪽으로 논지를 수정했으며, 정조의 문예정책과 문단의 반응을 논한 5장 ‘당대 문단에 끼친 영향’은 새로운 자료들을 추가하여 대폭 보완했다.

2부는 초판 간행 이후 발표한 3편의 논문으로 구성했다. 2편은 기 발표된 『열하일기』의 문체와 사상에 관한 논문이고, 1편은 이번에 새로 집필한 『열하일기』 이본에 관한 논문이다. 이를 통해 초판에서 미진했던 논의들을 보완했다.

_ 〈「도강록」 ‘호곡장론’의 문체 분석〉은 광활한 요동 벌판을 처음 본 소감을 피력한 명문인 ‘호곡장론’(好哭場論)의 분석을 통해 『열하일기』의 문체적 특징을 보여주는 논문이다. ‘호곡장론’은 고문체를 기조로 하면서도, 적재적소에 조선식 한자어나 백화투의 구어적 표현을 가미하여 다채로운 문체를 보여준다. 간결하고 사실적인 묘사, 동일 구문의 반복, 4자구의 연속과 돌연한 차단, 기발하고도 적절한 비유, 시적이며 여운 있는 결말 처리 등 다양한 기법을 구사함으로써 기기(奇氣)와 기변(奇變)이 넘친다. 조선의 낙후된 현실을 개혁하고자 하는 원대한 포부를 안고 청조 중국의 선진 문물을 연구해 오던 연암은 마침내 숙원인 연행의 기회를 얻어 요동 벌판으로 표상되는 거대한 중국 문명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었다. 그때 그의 심중으로부터 복받쳐 오른 것은 기쁨이자 동시에 슬픔인 극도의 착잡한 감정이었으며, 따라서 그것은 웃음처럼 터져 나오는 통곡으로밖에는 표출될 수가 없었다. ‘호곡장론’의 독특한 문체는 이와 같이 복합적이고 격앙된 심경을 유감없이 표현하고자 한 노력의 결과이다.

_ 〈「일신수필」 서문과 동·서양 사상의 소통〉은 미완성의 문제적인 글인 「일신수필」 서문에 대한 심층 분석이다. 「일신수필」의 첫머리인 7월 15일 기사에서 피력한 ‘중국 제일 장관론’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 서론 격으로 별도의 글을 집필할 필요를 느끼고, 나중에 「일신수필」의 서문을 집필한 것이 아닌가 한다. 연암은 유학의 혁신을 위해 과감하게 동·서양 사상의 소통을 시도했다. ‘천하의 장관’을 인식한 사례로 공자뿐 아니라 부처와 서양인까지 거론함으로써 고차원의 개방적 인식을 촉구하고자 했다. 저자는 미완성으로 끝이 난 「일신수필」 서문을 통해 서학을 주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유학을 혁신하고자 한 연암의 사상적 노력을 규명했다.

_ 〈『열하일기』 이본의 특징과 개작 양상〉은 저자가 가장 고심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논문이다. 저자는 이미 초판을 집필할 당시 『열하일기』의 주요 이본 7종을 고찰하기는 했으나, 그 뒤 새로운 이본들이 대거 공개됨에 따라 더욱 철저하게 자료를 수집·검토한 위에서 이전의 고찰을 대대적으로 수정 보완한 논문을 집필하였다. 이본 대조 작업은 한 사람이 작업하기엔 시간적·물리적으로 너무나 힘든 작업이지만, 저자로서는 꼭 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초판 집필 당시 7종의 이본을 대조하는 작업에만 꼬박 2년의 시간이 걸렸던 터라, 이번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는 총 58종에 달하는 국내외의 『열하일기』 이본들을 계열별(초고본 계열→『열하일기』 계열→『연암집』 외집 계열→『연암집』 별집 계열)로 나누어 정밀하게 검토하였고, 그 결과물로 160면이 넘는 장편 논문을 완성하였다. 이본들의 세세한 차이는 표로 만들어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그야말로 책 속에 작은 책 한 권이 된 셈이다. 본격적인 학술 논문이고 자료 고증을 기초로 하는 글이지만, 세세한 논의들이 『열하일기』의 면면을 꼼꼼히 짚어주고 있어 읽는 재미가 있다. 이 책의 초판이 나왔을 당시, 독자들은 학술서인데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었다는 인상 깊은 독서평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런 면모가 이 글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부록으로 수록된 〈연암 박지원 연보〉도 초판본에 비해 많은 내용이 추가되고 고증되었다. 초판 이후 30년간의 연구 결과 밝혀진 연암의 생애 이력들이 꼼꼼하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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