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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소득’ 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소득’ 순이 아니잖아요
  • 유무수
  • 승인 2022.02.03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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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행복경제학』 박정원 지음 | 한울엠플러스 | 376쪽

대단한 수련이 필요한 중용이나 ‘소확행’은 자기실현 아냐
기본재를 공급하는 국가 역할 수반돼야 모두가 행복해진다

“…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 가수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1985)에 나오는 가사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 가닥 불빛으로 남겠다는 의지가 여전히 불타고 있는 상태는 불행인가, 행복인가. 당대 최고의 권력과 부를 가진 덕분에 매일 쾌락과 향락을 즐기다가 결국 파멸한 진시황의 아들 호해(胡亥)는 행복한 삶을 살았던 것일까? “만족한 바보가 되는 것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한 공리주의자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에 의하면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고독한 남자가 주지육림 속에서 희희낙락했던 호해보다 행복한 존재다.

 

행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 이는 ‘어떻게 살겠다는 것인가’를 결정한다. 행복경제학자인 박정원 저자는 20세기 경제학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대신 개별 경제주체의 효용극대화를 선택한 것”은 비극이었다고 지적했다. 경제학자들은 행복이 실질소득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믿어 소득이 높은 국가를 선진국으로 분류했다. 이러한 사고 위에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까지 가세하여 소득을 증가시키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풍조가 퍼져나갔다. 

이스털린(Easterlin)의 연구에 따르면 “행복은 소득에 비례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1970년대 국민 평균 행복지수는 1940년대 후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과거보다 60%가량 상품구매력이 증가했지만 더 행복해지지 않은 것이다. 핀란드는 행복도와 물질적 조건 조사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교육제도 또한 최고라는 평을 듣는 나라다. 그런데 유럽에서 정신질환자 비율이 가장 높고, 자살률도 매우 높다. 2012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국가의 발전정도를 1인당 GDP가 아니라 국민의 행복도와 지속가능성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질적 공리주의를 외친 존 스튜어트 밀(1865–1868)은 “만족한 바보가 되는 것보다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낫다”라고 강조했다. 사진=위키피디아

미국 메릴랜드대 연구진의 2005~2014년 생애주기에 따른 통계분석에 의하면 대체로 인생의 행복은 청소년기에 높다가 점차 하락하여 40대 중반이나 50대 초반에 최저점에 도달하고 이후 다시 상승을 계속하여 생애 마지막에 가장 높아져 U자형 곡선을 이루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행복도 변화는 거북의 등 모양처럼 인생후반기에 하향 곡선을 나타냈다. 저자는 △쉼 없이 달리는 지위재(학벌, 외모, 과시 등) 경쟁 △불안한 건강 △환경오염 △흔들리는 가족공동체 △일과 삶의 불균형이 개선돼야 할 과제이며, 기본재를 공급하는 국가의 역할이 국민의 행복도 증진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탐욕에 기초한 사회질서를 제거하고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약자들의 연대와 투쟁도 필요하다.

타고난 능력을 부지런히 개발하고 사회 속에서 그 능력을 발휘하는 자기실현적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저자가 제안한 행복의 조건은 네 가지다. 첫째,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것이어야 하며(일반성), 둘째, 누구나 달성 가능한 것이어야 하며(개방성), 셋째, 삶을 완성해나가는 것이어야 하며(가치성), 넷째, 전 인류 및 생태계의 행복과 합치되는 것이어야(확장성) 한다. 행복은 보통 수준의 사람이 정상적인 삶을 살면서 달성할 수 있는 좋음이다. 그래서 일반인에게 어려운 관조나 대단한 수련이 필요한 중용의 삶, 일상의 만족 또는 즐거움일 뿐인 소확행은 자기실현에 해당되지 않는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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