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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는 단순 교양 아니다…생산 영역의 베이스캠프”
“인문사회는 단순 교양 아니다…생산 영역의 베이스캠프”
  • 김봉억
  • 승인 2022.01.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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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본부장
“차기정부 국정과제에 ‘인문사회’ 꼭 들어갔으면”

인문사회 학술지원 방향은
학술지원은 사회의제 담은 메가아젠다 연구까지 나아가야
거대시너지 창출하는 인문사회·과학기술 융합연구 집중을
학술연구 성과가 초중등·고등·평생·시민교육까지 연계해야

인문사회 가치와 혁신 
인문사회를 생산적 차원에서 봐야 디지털 대전환도 가능
비판력·상상력의 원천 인문사회…혁신은 연구·교육 함께
궁극적 혁신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만남 통해 이뤄져

차기 정부에 바란다
그동안 진정한 의미의 인문사회 학술정책이 없었다
5년 후 국가R&D 예산은 40조 예상…인문사회 1조는 돼야
학술연구수석, 인문사회·과학기술 연결해 혁신 방향 찾아야

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은 차기정부 국정과제에 '인문사회 학술'이라는 여섯 글자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진정한 의미의 학술정책이 없었어요. 차기 정부에서는 ‘인문사회 학술’에 대해 깊은 인식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이강재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장(서울대 중어중문학과·사진)은 지난 2019년 11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임기 2년을 보내고, 1년을 더 연장해 일을 맡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비전임 연구자를 위한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제도 시행, 박사급 전임연구인력의 인건비 4천만 원으로 상향 등을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꼽았다. 

본부장 임기를 1년 연장한 올해, 꼭 이루고 싶은 일은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당장 예산을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학술지원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한국학술정책연구원이나 학술기본법을 말하는 겁니다. 단기적으로는 다음 대통령이 출범하기 전까지 국정과제에 ‘인문사회 학술’이라는 여섯 글자가 꼭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게 올해 상반기에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강재 본부장은 특히 학문후속세대가 정착할 수 있는 제도 마련에 주력해 왔다. 올해 꼭 하고 싶은 일도 비전임 연구자를 위해 해왔던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제도가 확실하게 안착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합연구 확대를 들었다. 이를 위해서도 장기적인 기반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학령인구 감소로부터 파생되는 독립연구자의 길을 어떻게 확보해 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독립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들 것인가.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방향이라고 했다. 

대선을 거쳐 차기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 상반기는 대전환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다. 차기 정부 국정과제에 ‘인문사회 학술’이라는 여섯 글자가 어디라도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그를 지난 4일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에서 만났다. 

△ 최근 임기를 1년 연장했다. 지난 2년간 스스로 생각하기에 의미 있는 일, 아쉬운 점은 무엇입니까.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만, 제가 의미 있게 추진했던 비전임 연구자를 위한 사업을 들 수 있습니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제도의 시행, 박사급 전임연구인력의 인건비 4천만 원으로 상향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인구 감수와 학령인구 감소가 결국은 인문사회 학술에 영향을 미칩니다. 전국 대학의 학과 폐과는 결국 인문사회 학문의 축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학문후속세대들이 학문을 이어갈 연구 기반으로서의 직장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국가적으로 일정 정도는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 지난 2년 동안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이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제도였습니다.(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장기유형은 매년 300명을 뽑아 연간 4천만 원의 연구비를 최대 5년 동안 지원한다.)

또한 학술정책의 장기적 측면에서 인문사회총연합회(인사총)를 설립해 인문사회 연구자의 네트워크를 구성한 것도 의미 있는 일입니다. 기초학술기본법 국회 발의도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인문사회 학술정책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의 개정 노력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연구자들이 현실로 잘 느끼지 못하는 분도 있지만, 법안으로 인해 생긴 연구현장의 어려운 점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개정을 이끌어낸 점은 큰 경험입니다. 또 학술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 내에 인문사회연구기획실을 만든 것도 중요한 걸음입니다. 이를 통해 학술지원사업의 혁신을 시도하는 받침이 됐기 때문입니다. 사소한 듯 보이지만 학술지원사업에서 선정자 발표 기일을 준수하려고 무척 노력한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도 적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아쉽다기보다 추진하려고 애썼으나 아직 완성이 되지 못한 점, 임기 내에 확정하고 싶었지만 성과를 마무리 못한 게 있습니다. 기초학술기본법 발의 이후 정치적 상황 때문에 아직 통과가 되지 못한 점이나, 학술지원 예산의 증액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코로나 시국과의 연동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물론 그나마 다른 예산이 삭감되는 데에 비해 삭감을 막아냈다는 것이 다행일 수도 있습니다. 연구 성과와 교육의 연계를 통해 연구 성과를 크게 늘리고 싶었지만 이 또한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 인문사회 학술지원에서 눈에 띄는 게 독립연구자의 길도 열어 뒀습니다. 
“1년 지원을 받은 연구자가 축적이 되면서 실력이 쌓이면 5년 장기 지원을 받고, 또 실력이 올라가면 대학으로 가기도 하고, 대학으로 못 가더라도 독립연구자로서 5년 장기 지원을 받을 수 있고, 또 지원받을 수 있게 열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대학과 무관한 독립연구자의 길을 보장하자는 거죠. 대학에 취업이 안 된다는 현실도 있지만, 학문적으로도 전통적인 학계에 있었던 연구자, 교수들의 학문 경향을 쫓아가지 않고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연구들이 나올 가능성이 열리는 거예요. 

그리고 독립연구자들에게도 교육을 의무적으로 요구를 합니다. 대학 강사를 매학기 하지는 않아도 5년 지원을 받으면 최소 5년 내에 두 강좌는 하도록 해요. 대학에서 강의를 못하면 온라인으로 유튜브 동영상을 찍어서라도 스스로 한 번 올려보라고 합니다. 그것도 인정해 주기로 했습니다. 대학 정규 강의를 하면 증명하기는 편하죠. 그런데 그걸 독립연구자로서 살아가는 데, 대학에 잘 보여야 강의를 할 수 있단 말이에요.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 자기 나름대로의 콘텐츠를 개발해서 자기 연구 내용을 사회적으로 환원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라는 거죠. 그것까지 다 열어준 거예요. 학령인구 감소로부터 파생되는 독립연구자의 길을 어떻게 확보해 줄 것인가, 그리고 그들이 진정으로 독립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게 앞으로 굉장히 중요한 방향입니다.” 

△ 인문사회 학술이 지금과 같은 대전환 시대에 어떤 방향으로 가야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사회가 정신적 양극화, 진영론, 음모론적 사유방식이 많고 또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데, 인문사회과학적 정신적 토양이 약해서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문사회 학술지원을 통한 연구와 교육으로 극복해 나가야하는 겁니다. 갈등 해결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연구지원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해요. 

저는 전통적으로 과학기술을 통한 국가발전을 꾀했던 과학입국의 시대에서 이제 인문사회 학술지원을 통해 국가 사회의 미래를 이끌어가는 학술경국(學術經國)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학술경국을 열어가기 위해서는 학술지원이 보편적 학술지원에서 나아가 사회적 의제를 담고 있는 메가아젠다 연구에까지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융합을 통한 거대시너지 창출을 모색하는 융합연구에 집중해야 하고, 학술연구의 성과가 초중등교육에서부터 고등교육, 평생교육, 시민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학술과 교육의 결합이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향후 인문사회 학술지원의 방향이 돼야 합니다.”

이강재 본부장(57세)은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 인문학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2019년 11월부터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으며, 국가교육회의 고등직업교육개혁 전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 서울대 교육상을 수상했고, 저서로 『한자의 역사』 등이 있다. 주요 논저로 『학술진흥정책 수립체계 재정립 및 중장기 학술진흥방안 연구』 와 「4차 산업혁명시대 인문학 학술정책 방향」 등을 펴내 학술진흥정책에 대한 대안 마련에 천착해 왔다. 

△ 문명대전환 시대에 인문사회 학술의 성격과 가치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디지털 시대는 달라지고 있어요. 인문사회의 콘텐츠는 디지털 문명의 시대에 가장 기본적인 씨앗으로서의 역할을 합니다. 스티브잡스의 애플사에서 보듯이 모든 가치의 원천으로서 인문사회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인문사회의 콘텐츠나 스토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원천 콘텐츠에 대한 국가의 지원과 역할 인식에서 진정한 미래 지향적 가치 창출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저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학술경국을 주장해왔어요. 앞으로 성숙한 성장, 미래 성장은 인문사회 기반으로 나올 것이 분명합니다. 혁신의 시작은 이런 인문사회 가치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4차 산업혁명시대 디지털 문명 시대에 디지털 리터러시 등 인문사회가 해야 할 역할들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습니다. 여기에서 인문사회를 단순히 교양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지점이 있어요. 스토리와 역사, 해석을 통해 재생산되고 확산되며 거기에서 발전과 혁신의 출발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인문사회 분야는 가치 생산의 가장 큰 원천이고 출발점입니다. 이제 인문사회 분야를 생산적이라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진정한 디지털 대전환에 대한 이해가 가능합니다. 콘텐츠가 없이 딥러닝이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생산적 영역의 가장 기본 베이스캠프가 인문사회 분야라는 겁니다.

또한 디지털 휴매니티의 문제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댓글의 남발 등에서 단적으로 보이는 문제는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자칫 국가와 인류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을 수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인데, 인문사회의 역할을 통해 해결해 내야 할 것입니다.”

△ 그렇다면 인문사회의 관점에서 혁신이란 무엇입니까.
“그동안 기술혁신과 노동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구조조정 등을 ‘혁신’이라고 보았는데, 인문사회 입장에서 보면 비판력과 상상력입니다. 누가 비판하고 누가 상상하는가? 이는 인문사회의 연구와 교육을 통해 이뤄집니다. 이런 비판력과 상상력의 원천이 바로 인문사회분야이기 때문입니다. 이 혁신은 연구와 교육이 함께 이뤄질 때 가능하다고 봐요. 단순히 양적 팽창만으로 나아가려는 사회를 튼튼한 기반 위에서 성숙한 모습으로 질적으로 성장하게 이끌어줍니다. 여기에서 진정한 선도국가도 가능합니다.

물론 인문사회 연구자들 역시 전통적인 방식에만 안주해서도 안 됩니다. 디지털 시대의 대전환시대라는 변화를 인식하고 그에 맞는 적절한 혁신적 역할을 찾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적 부조리 등 많은 문제에 대해 비판하고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단순히 자기만족에 의한 연구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과학기술이 혁신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목표가 어디겠습니까? 인간의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인문사회과학적 가치의 실현입니다. 사실 과학기술도 결국은 시장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것은 생활세계로 나오는 것이며 이것이 결국 상품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요. 이때 인간의 삶과 생활, 행복이라는 것과 만나야 되는 겁니다. 거기에서 인문사회와의 접점이 이뤄집니다. 

궁극적인 혁신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만남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는 겁니다. 이를 통해 가치가 확대되고 커져가는 의미 있는 혁신이 이뤄집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 점을 놓쳤습니다. 단순히 과학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청와대에 학술연구수석을 신설해야 한다고 계속 제안해왔는데,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을 연결하면서 제대로 된 올바른 혁신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는 측면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 2022년 한국연구재단 학술지원의 중점 추진 사항은 무엇입니까.
“2020년부터 연구재단 인문사회 학술지원 사업에는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2022년 학술지원 역시 그 변화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특히 비전임 연구자의 연구환경을 개선하려는 많은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인문사회학술연구제도의 시행과 박사급 전업연구인력의 인건비 상승 등을 이뤄냈습니다. 또한 연구업적의 양적 증가보다는 질적 제고를 높이기 위해 연구계획서 평가에 있어서 질적 평가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몇 가지 사업에서 실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확대하고 강화할 계획입니다. 질적 평가는 시간도 많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걸립니다.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과 조직의 미비가 여전히 어려움을 주지만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할 학술지원 정책의 방향입니다. 

또한 2021년부터 융합연구에서 연구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연구계획서 작성과 평가를 했습니다. 융합연구는 향후 인문사회본부의 학술지원에서 더욱 강화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2022년에 인문사회연구소 지원사업에서 미래공유연구형이라는 시범사업을 실시합니다. 비록 시범사업이어서 우선은 2개 과제에 불과하지만, 인문사회와 과학기술의 융합을 전제로 지원을 하게 될 겁니다. 

저술이나 번역 등에 대한 지원은 연구자들의 선호가 높은 사업인데 예산 확보에서 항상 어려움이 많습니다. 당장 성과가 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술지원 사업을 2021년 52과제에서 2022년에는 90과제로 확대됩니다. 지속적으로 과제수를 확대하기 위한 예산 증액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학술연구 성과를 알리기 위한 노력도 지속합니다. HK사업 성과확산센터, SSK성과확산센터, 융합연구성과확산센터에 이어 학술연구교수성과확산센터와 연구소지원사업성과확산센터를 만들고 이를 통해 매년 각 사업별로 성과분석보고서를 낼 예정입니다. 또한 전체를 총괄하는 인문사회 학술지원 성과분석보고서를 발간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이전부터 해오던 연구자 중심 연구행정을 지속할 것입니다. 학술지원과제 선정을 연구개시일 전에 마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인문사회 연구자를 존중하는 출발점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연구윤리 역시 강화할 것입니다. 연구계획서의 내용이 중복된 것은 많은 연구자들이 관행처럼 지내왔고 큰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연구결과 뿐만 아니라 연구의 과정에서도 연구윤리가 지켜질 수 있도록 더 한층 노력하겠습니다.” 

△ 인문사회 학술지원 사업에서 지역 할당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역의 대학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한다는 건 전부 망한다는 거라고 봐요. 결국 벚꽃은 다 펴요. 실제로 어떤 현상이 벌어지냐하면 지역 대학이 망하잖아요? 지역 대학에 연구자를 공급했던 서울에 있는 대학, 특히 서울대학은 먼저 망하는 거예요. 대학원이 존립할 이유가 없잖아요. 다른 데로 교수로 나가지 못하잖아요. 대학원이 왜 있어요? 벚꽃 피는 순서로 망한다고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인문사회에서 연구자들이 갈 길이 봉쇄되는 순간, 지역 대학이 망하면서 서울대가 먼저 대학원이 망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그 생각이 분명해요. 실제로 지금 서울대 대학원이 무너져 가고 있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학술연구교수를 통해서 국가지원의 인원을 늘려줘야 되지만 그걸로는 한계가 있어요. 결국은 교수로 나가야 돼요. 그런데 지역 대학이 무너지면 어디로 나갈 겁니까? 그렇기 때문에 제가 볼 때 벚꽃 피는 순서로 망한다는 건 결국 다 망한다는 뜻인데, 실제로는 서울대가 더 위험합니다. 대학원이 존립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대학원 문제, 학술연구교수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추진하는 것은 전국 대학을 살리면서 지역균형과 국가균형발전도 생각하면서 동시에 서울대 문제라고 봅니다.” 

△ 인문사회 학술 예산은 전체 과학기술 분야의 1.2% 정도입니다. 
“인문사회 학술 예산의 한계는 예산이 늘어날 수 없는 구조에 있다는 점입니다. 과학기술은 지난 10년 동안 2배 이상 늘었어요. 매년 8%에서 10% 늘어난 겁니다. 올해도 국가 R&D 예산은 30조원에 가깝습니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 심의해서 결정하면 기획재정부에서 거부를 할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인문사회 쪽은 주요 R&D가 아니고, 일반 R&D로 분류가 되거든요. 교육부 전체의 실링 안에서 배정을 받는 구조입니다. 교육부 전체 예산이 정해져 있고, 특히 올해의 경우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때문에 6조원이 더 들어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교육부에서 예산을 늘릴 수 있는 실링이 없는 거예요. 예산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겁니다.”

△ 인문사회 학술정책과 관련해 차기 정부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진정한 의미의 인문사회 학술정책이 없었습니다. 차기 정부에서는 인문사회의 학술적 가치를 인식하고 그 정책을 체계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법률과 조직 등을 잘 갖추기를 희망합니다. 학술지원이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기초를 잡아놔야 돼요. 그래서 학술정책연구원이나 학술기본법을 말하는 겁니다.

예산을 당장 늘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 예산이 늘어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거든요. 단기적으로 이번 대통령 출범 전까지 국정과제에 ‘인문사회 학술’이라는 그 여섯 글자가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학술기본법이나 학술정책연구원도 풀려갈 수 있고, 예산도 늘어날 수 있는 거고요.”

△ 한국학술정책연구원 설립과 인문사회 학술지원 예산을 1조원으로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의 국립과학연구원(CNRS)이나 중국의 사회과학원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중국의 사회과학원처럼 한국의 인문사회학술원을 만들고 전국에 지점을 둬가지고 거기에 연구할 수 있는 공간까지 만들고 하자는 건데 이건 정말 이상적이죠. 그런데 그렇게 가기에는 너무 먼 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의 수를 더 늘리고 가능하다면 인건비도 더 늘려서 5천만 원까지라도 지원해 안정적으로 기간도 늘리고요. 이렇게 가는 게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메가 아젠다까지 포함해 융합해서 대규모 연구를 하다 보면 연구비도 많이 들어가거든요. 지금 연구비 정도 규모(2022년 3천630억 원)로는 안 되기 때문에, 다음 정부 5년이 지나고 나면 인문사회 학술 예산이 1조원 정도는 돼야 합니다.  

올해 국가 R&D 예산이 29조8천억 원이면, 5년 후에는 40조 원이 될 겁니다. 한국연구재단 전체 예산이 올해 8조 원이 넘어갑니다. 5년 후라면 10조 원은 분명히 넘거든요. 인문사회 학술 예산 1조원은 한국연구재단 예산의 10분의 1이고, 전체 R&D 예산의 40분의 1밖에 안 됩니다. 이 정도 예산으로도 인문사회는 충분히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학술기본법도 제정해야 하고, 학술정책 거버넌스로 한국학술정책연구원 설립도 필요합니다. 정말 체계적인 정확한 학술 실태에 입각한 정책 제안이 나와야 하고, 연구자들이 생각하는 것을 고려하면서도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내야 하고요. 지금까지 있었던 학문 지원의 성과가 학문의 질적인 심화로 이어지도록 해야죠.”

△ 청와대에 학술연구수석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학술연구수석은 과학기술과 인문사회를 통합하고 교육과 연구를 연계해서 기존 교육수석의 범위를 넘어서는 거죠. 좁은 범위로 학술만 보는 게 아니에요. 더 큰 범위를 보고 있는 거예요. 국가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요. 청와대와 국무조정실도 과학기술과 인문사회, 교육은 나눠져 있어서 담당하는 곳이 다릅니다. 

학술연구라는 이름 속에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의 교육과 연구를 다 집어넣자는 겁니다. 차기 정부 5년이 지나면, GDP 5만 달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거든요. 일본을 넘어선다는 얘기도 많이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따로 놀아서는 안 되고, 교육과 연구도 따로 가서도 안 되고요. 전체를 함께 보면서 우리 사회 전체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인문사회와 과학기술, 교육과 연구가 같이 들어가야 되는 거죠.”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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