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7-05 17:57 (화)
[글로컬 오디세이]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 용감했던 무슬림, 칼릴 모함메드를 기리며
[글로컬 오디세이]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 용감했던 무슬림, 칼릴 모함메드를 기리며
  • 박현도
  • 승인 2022.01.20 0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로컬 오디세이_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이라고 주장한 종교학자 칼릴 모함메드(Khaleel Mohammed)가 지난 10일(현지시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칼릴은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이라며 평화의 이슬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랐다. 사진=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이라고 주장한 종교학자 칼릴 모함메드(Khaleel Mohammed)가 지난 10일(현지시간),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칼릴은 “팔레스타인은 유대인의 땅”이라며 평화의 이슬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랐다. 사진=샌디에이고 유니온 트리뷴

지난 10일 함께 공부했던 나의 친구 칼릴 모함메드(Khaleel Mohammed)가 세상을 떠났다. 종교학자요, 신실한 무슬림이자 예배인도자요, 미 샌디에이고 주립대 종교학과 교수였던 칼릴은 학자적 양심을 내걸었다. 2004년과 2005년에 글과 인터뷰로 꾸란이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의 땅’이라고 말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꾸란 5장 21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따르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써놓으신 성스러운 땅으로 들어가시오. 되돌아 나오지 마시오. 되돌아 나오면 패배자가 될 것이오.”

칼릴은 ‘하나님께서 써놓으신 성스러운 땅’에 주목했다. ‘써놓다’의 원어는 아랍어 동사 ‘카타바(kataba)’다. 꾸란에는 하나님이 ‘카타바’하는 경우가 22번 나오는데, 모두 하나같이 거스를 수 없는 명령을 뜻한다. 대표적인 예로 2장 183절은 라마단 단식이 무슬림들에게 ‘써졌다’며 ‘카타바’ 동사의 수동형 ‘쿠티바(kutiba)’를 쓴다. 단식이 의무라는 말이다. 칼릴은 무까틸 이븐 술래이만(Muqatil ibn Sulayman, ?~767)에서 타바타바이(Muhammad Husayn Tabatabai, 1903~1981)에 이르기까지 순니파나 시아파 꾸란 주석가가 5장 21절의 카타바 동사를 하나님의 명령이나 약속이나 예정으로 해석했다고 주장했다. 즉, 하나님이 성스러운 땅을 모세와 모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스러운 땅’은 어딘가? 앗따바리(al-Tabari, 838~923)는 이 지명이 △시나이와 인근 지역 △시리아 △예리고 △다마스쿠스와 팔레스타인, 요르단 일부를 가리킨다며 4가지 해석을 제시했다. 칼릴은 꾸란이 그 어디에서도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수복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꾸란 5장 3절에 나오는 대로 무함마드의 임무는 메카 정복으로 완성됐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을 반드시 투쟁해서 수복해야 할 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언자 언행록인 하디스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써놓으신 성스러운 땅으로 가시오”라는 꾸란 구절에 “모세가 죽은 이후에는 가지 말라”고 덧붙여 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하디스가 유통되기 전인 638년부터 무슬림은 이미 예루살렘을 지배했다. 이때 예루살렘을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중요하게 여겼더라면 왜 예루살렘이 아니라 텔아비브에서 남동쪽으로 15km 떨어진 로드(Lod)를 수도로 삼았겠느냐고 칼릴은 반문했다.

무슬림은 예루살렘을 다스리면서 하나님이 인간과 맺은 계약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을 통해 혈통적으로는 유대인,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아브라함의 다른 아들인 이스마일을 내세워 무슬림이 진정한 계약의 상속자라고 주장했다고 칼릴은 해석했다. 아브라함이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들은 이사악이 아니라 이스마일이었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또 무슬림은 꾸란에서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한 약속을 어겼다고 한 표현을 이유로 예루살렘이 무슬림의 것이라고 하지만, 칼릴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과 예루살렘은 아무런 관계가 없고, 설령 계약을 어겼어도 무슬림이 권리를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칼릴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이 종교분쟁으로 변질됐다고 개탄했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아랍이 이스라엘에 대패한 직후, 이집트 알아즈하르대학에 모인 무슬림학자들은 꾸란에 근거해 이스라엘에 맞서는 지하드를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랍인뿐 아니라 무슬림 모두가 투쟁에 나설 것을 독려한 것이다. 하지만,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검은 9월단’이 이스라엘 선수를 살해할 때까지도 반이스라엘 투쟁의 핵심 동력은 이슬람이 아니라 아랍민족주의였다고 칼릴은 강조했다. 타도 대상도 유대인이 아니라 정치적 시온주의자들이었는데, 헤즈볼라, 하마스, 알카에다가 투쟁의 선봉에 나서면서 반이스라엘 투쟁이 반유대인 투쟁으로 변질됐다고 비판했다. 폭풍우처럼 쏟아진 비난에도 칼릴의 메시지는 단호했다. 이슬람을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하며 테러하지 말라는 것이다. 팔레스타인 무슬림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라고 토로한 칼릴은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포기하고 이스라엘과 평화를 이루길 염원했다.

칼릴은 유수프 알까라다위(Yusuf al-Qaradawi, 1926~)처럼 민간인 살해가 종교적으로 정당하다는 이슬람법 해석을 내어놓는 이들을 신랄히 비판했다. 칼릴은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 네 가지 주장을 역설했다. 첫째, 아랍-이스라엘 분쟁에서 종교적 색채를 지워야 한다. 둘째, 무슬림이 꾸란과 하디스의 차이를 인식하고, 적어도 꾸란에 초점을 맞춰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해야 한다. 셋째, 테러와 유대인 증오를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 넷째, 팔레스타인이 테러를 중단하고 이집트, 요르단처럼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어야 한다.

평화의 이슬람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사라지길 바랐던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친구 칼릴을 눈물로 보낸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연구교수

이란 테헤란대에서 이슬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 법무부 국가정황정보 영문계간지 <Religion & Peace> 편집장이다. 주요 저작으로 『신학의 식탁』(공저, 들녘, 2019), 『자유주의 국제질서의 균열과 유라시아 지역의 대응』(공저, 민속원, 2020) 등이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