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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과 번역]
[과학기술과 번역]
  • 송상용 한림대
  • 승인 2001.06.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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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5 15:56:02
전반적인 출판의 불황과 제한된 독자층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과학기술 책은 많이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번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것은 인문·사회과학계와 다른 점이다. 70년대만 해도 과학기술 책의 번역자는 대중화에 관심이 크거나 사명감을 가진 이공계 교수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교수들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워졌고 보상이 빈약하기 때문에 번역에 뛰어드는 경우가 크게 줄어들었다. 대신 전문번역가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전공학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전문번역가들의 정착은 환영할 일이다. 전문번역에는 10년을 넘는 역사를 가진 과학세대(대표 김동광)가 출판계에서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 이런 그룹들이 더 생겨나 경쟁하면 좋을 것이다.

과학 전문번역자 빈약한 번역풍토

번역자들은 과학기술자와 인문학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나뉜다. 전문서적과는 달리 교양과학기술 책들을 인문·사회과학적인 요소가 강한데 과학기술 출신이 감당할 수 있는지가 문제된다. 반대로 인문·사회계 출신은 과학기술의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높은 벽에 부딪힌다. 정식 교육을 받지 않고 과학기술을 혼자서 터득하려면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문가의 성실한 감수가 필수지만 시간과 돈에 쫓기는 우리나라 출판에서는 이런 절차가 생략되는 것이 보통이다.

과학기술 책의 번역자로는 과학기술학(과학기술사, 과학기술철학, 과학기술사회학 등)을 전공한 사람들이 이상적이다.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학을 제대로 전공해 석·박사학위를 가진 젊은 인력이 1백명을 넘는다. 그러나 이들의 과학기술 번역 참여는 뜻밖에도 저조하다. 번역이 들인 노력에 견주어 보상이 너무 작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한국학술진흥재단 등의 번역과제에 참여하고 있지만 학술서적에 치우친 것이 문제다. 대중과학기술 관련 저서 번역도 연구업적으로 쳐주고 후한 번역료를 주는 방향으로 정책이 바꿔야 한다. 기업에서 하는 재단들도 번역에 특별한 배려를 했으면 한다.
과학기술 도서 출판계는 전문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지호’는 기술에 관한 양서를 계속 발굴해 왔고 ‘경문사’는 수학 책을 집중적으로 내고 있다. 천문학 등 다른 분야도 전문출판사가 나타나기 바란다. 전문번역자들도 닥치는대로 할 것이 아니라 한 분야에 집중하면 전문성을 높여 신뢰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번역에서 과학기술 용어는 가장 큰 문제다. 해방 후 반세기를 넘기는 동안 우리 과학기술용어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전적으로 일본의 용어를 써 왔던 우리는 분야별로 많은 부분을 우리말, 한국식 한자말 또는 영어로 바꾸었다. 지난날 우리 과학기술 책들은 낡은 용어를 그대로 써 두통거리였다. 새 교육을 받은 젊은 번역자들은 이 문제를 잘 극복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근원적인 문제는 과학기술계에 있다.

일반적으로 순수과학은 용어개혁에 적극적이어서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응용과학, 기술 쪽에서는 낡은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말화와 영어화의 문제다. 예컨대 화학은 용어의 우리말화에 일찍이 앞장서 왔다. 그런데 물리학이 근래 과격한 우리말화를 단행해 이 작업을 일찍부터 해 온 북한을 앞지르고 있다.

출간된 번역서 점검 시급

세계화가 논의되면서 과학기술용어도 영어식으로 표기하거나 영어로 그대로 쓰자는 주장이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화학에서는 이 주장이 득세해 오랫동안 독어중심이었던 원소, 화합물 이름이 영어식으로 바뀌었다. 나트륨, 칼륨이 소듐, 포타슘이 된 것이다. 첨단생명공학에서도 유전체를 게놈으로 써 왔는데 중앙일보 등 일부 언론이 영어식 지놈으로 쓰기 시작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구나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들에서 같은 말이 서로 다르게 번역됐는데 조정은 잘 되지 않고 있다. 번역자들은 이 점을 유의해 용어를 고르는 데 신중해야 할 것이다.

인문·사회과학계에서는 번역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데 과학기술계은 조용하기만 하다. 과학기술계에도 번역문제를 다루는 학자, 평론가가 나와야겠다. 현재 나와 있는 번역책들의 평가작업도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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