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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담론·메타서사 극복하기…고고학은 고상하지 않다
거대담론·메타서사 극복하기…고고학은 고상하지 않다
  • 유용욱
  • 승인 2022.01.14 1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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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가 말하다_『고고학이론 껍질 깨기』 에이드리언 프랫첼리스 지음 | 유용욱 옮김 | 사회평론아카데미 | 332쪽

고고학이론은 순수과학부터 철학·사회학·문학을 포괄하는 인류학
다양한 사상을 학문적 도구로 적극 활용하라는 게 저자의 집필 의도

고고학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산업자본가로서 영국의 주류 계층으로 등극한 19세기 젠트리 계급이 향유하던 지적 산물이다. 특히 빅토리아 시기에 들어서며 영국이 본격적으로 식민지를 운영하기 시작하고, 식민지에서 들어온 각종 산물들을 박물학적으로 전시, 탐구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영향으로 대학에서도 본격적으로 박물관을 건립하고 고고학을 정식 교육 체계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지금의 학문으로서 고고학의 모습이다. 때마침 발간된 다윈의 『종의 기원(1859)』과 리옐(C. Lyell)의 『지질학 원리(1830)』와 같이, 당시 기준에 획기적인 과학적 견해와 이론들이 고고학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인 방법론으로 자리잡게 되면서, 고고학은 자체적으로 이론의 활용 및 이론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 가는 학문적 풍토를 일찍이 마련하게 되었다. 

 

그러나 고고학에서의 이론은 다른 분야에서의 이론과는 달리 순수한 방법론적 기여를 위한 수단으로 자리잡지는 못 했다. 일단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인문학적이면서도 과학적인 본질을 갖추고 있다. 과거에 남겨진 물질자료를 통해 인간을 탐구한다는 특성상 물질(material)과 인간(humanity)의 관계 및 상호작용을 탐구하다 보니 인간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사고와 자연 및 물질을 탐구하는 과학적 사고가 필요에 따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매개해 왔다. 때로는 고고학을 수행하는 고고학자의 취향과 가치관에 따라 이러한 인문학적/과학적 사고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고고학 이론의 생성과 활용에 작용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에서 이론이라고 한다면 순수과학적 이론은 물론 철학, 사회학 및 문학 이론까지도 포괄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러한 고고학 이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고고학에서 발생한 이론은 아니다. 북미 지역에서 고고학의 상부 분야로 인식되고 있는 인류학 이론이 대부분의 고고학 이론을 대표하고 있으며, 20세기 후반에 들어서 해석인류학의 대두와 더불어 다양한 사조의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사조와 이론이 고고학에서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고학이라는 학문 분야에서는 거대이론의 생성과 활용은 불가능하고, 단지 특정한 맥락에서 적용할 수 있는 중간단계 수준의 중위이론(middle range theory)의 구축에 힘써야 한다는 주장이 일찍이 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고고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원래는 흙먼지 마시면서 땅 속에서 유물을 발굴하고, 때로는 어느 누구도 발 디뎌 본 적 없는 신천지를 탐험하면서 전혀 다른 세상을 접하는 탐험가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고고학은 이렇게 연구 자료 취득하는 방식이 블루칼라적이고 구체적인 반면, 자료의 설명과 해석 작업은 지극히 화이트칼라적이고 추상적인 수준까지 도달하는 이중성이 있다. 바로 여기에서 고고학 이론은 뭔가 가치가 부여되고, 좀 더 고급스러운 고고학 분야라는 필요 이상의 과대포장도 만들어진다.

 

현지조사 없이 이론만 들먹인다는 선입견

한국에서는 전적으로 고고학 이론만을 탐구하는 전문 고고학자는 내가 아는 수준에서는 아직 없다. 대부분 자신의 전공 분야를 뚜렷한 시간적, 공간적 분기로 다루고 있으며, 특별히 관심을 갖는 유물이나 유적이 자신의 전문 분야가 되기도 한다. 무엇을 전문으로 하던지 간에 고고학 이론은 이러한 고고학자들이 조금 더 자신의 정열과 관심을 기울여서 탐구하는 ‘마이너’한 분야가 되고 있으며, 발굴이나 현지조사는 등한시하고 탁상공론이나 일삼으며 다른 분야의 이론이나 들먹인다고 치부되는 이론 고고학자는 손과 발로 고고학을 해야 한다는 고질적인 선입견의 희생양이 되기 쉬운 분위기다. 그렇기 때문에 고고학 이론은 한국 고고학계에서 어느 누구도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는 신천지 분야이기도 하며, 어느 누구도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상향과 같은 분야가 되어 버렸다. 결국 이론이라는 포도는 나무 저 높이 매달려 있기만 하고, 그걸 따려고 대충 노력만 하던 게으른 늑대들은 스스로 포기하고 그냥 포도 자체를 시고 떫어서 먹을 수 없다고만 폄하하며 정신승리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고 만다.

 

고고학 유적지의 한 모습. 사진=위키피디아

사실 이러한 판국이 굳이 한국뿐만은 아니다. 『고고학이론 껍질 깨기(Archaeological Theory in a Nutshell)』는 미국 및 서구 고고학계의 이런 공허한 이론 숭배 및 남용을 정면으로 비꼬면서 마치 베이컨의 우상론과 마찬가지로 착시되고 있는 각종 ~이즘이나 ~주의의 허상을 풀어 헤친다. 그리고 지극히 쉽고 평이한 어투와 때로는 해학이나 골계를 통해서 이론의 정의와 활용을 간단명료하게 제시한다. 이론을 숭배하고 이론의 거룩함을 여전히 믿는 몇몇 골수 이론가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현대 이론 고고학이 해체되는 것을 그다지 달갑게 여기지는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인 에이드리언 프랫첼리스(Adrian Praetzellis)는 불과 50년 사이에 너무나도 교만해지고 속물이 되어버린 구미 고고학계를 일찍이 보고 듣고 자라 온 현지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것도 아닌 이론, 어찌 보면 고고학을 하는데 있어서 굳이 안 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이론이라는 어쭙잖은 신화를 통렬하게 까발리면서 이론 고고학의 재고를 환기시키고 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12개의 다양한 고고학 이론과 앞과 뒤에 첨부된 각종 용어 해설 및 회고와 전망 챕터는 정교하고 주지적인 토론을 이끌어 내는 지침이 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의도한대로, 고고학이라는 ‘족보도 없는’ 분야에서 차용하는 다른 학문 분야의 난해하고 고리타분한 이론들은 더 이상 현학적이고 속물적인 태도로 수용하고 활용되고 숭배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외래어와 외래사상에 본질적으로 무기력할 수밖에 없던, 고고학계를 포함한 한국의 전반적 학계에게 이제 어깨에 힘을 빼고 보다 진지하면서도 유쾌하게 다양한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학문 도구로 활용하기를 권장하고 있다. 이게 바로 거대담론과 메타서사를 극복하고, 이론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진지함과 엄숙함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주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리고 한국 고고학계도 바야흐로 그러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저 멀리 태평양 건너에서 시니어 현장 고고학자가 깨우쳐 주고 있다. 

 

유용욱
충남대 고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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