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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진정한 자율과 자유
대학의 진정한 자율과 자유
  • 이덕환
  • 승인 2022.01.11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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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_ 이덕환 논설위원. 서강대 명예교수 /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이덕환 논설위원

2022년 새해가 밝았다. 猫鼠同處의 혼란 속에서 人困馬乏의 한 해를 보냈지만 섣불리 희망을 들먹일 상황은 아니다. 크리스마스의 축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오미크론의 확산세가 도무지 심상치 않다. 백신으로 중무장한 선진국들도 쩔쩔매고 있다. ‘최선’은커녕 ‘차선’도 찾기 어려운 대선 정국도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대학의 현실도 암울하다. 학생 선발 능력까지 잃어버린 대학이 자율은커녕 입학정원·평가·재정지원을 앞세운 교육부의 횡포에 시들어가고 있다. 대학의 지각 변동은 필연이다. 전국 429개 대학이 모두 그렇다. 가르칠 학생도 없고, 재정도 바닥이 드러나 버렸다. 해외 유학생과 평생교육이 대학의 출구가 되어줄 가능성도 크지 않다.

교수직도 심각하게 오염되었다. 대학이 고위 공직자들의 신분세탁소로 전락해버렸다. 퇴임 대법관·헌법재판관은 예외 없이 석좌교수로 임용되고, 대학의 총장·부총장으로 변신하는 고위 관료도 늘어나고 있다. 애써 양성해놓은 학문후속세대는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있다.

학생들에게 ‘융합’을 강요하는 교수들이 정작 자신들은 더욱 견고한 칸막이 속에 숨고 있다. 수능도 ‘통합형’을 외치는데, 교수들은 오히려 ‘문·이과 구분’을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는 인문사회의 연구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기술의 연구는 관리 부처와 시스템까지 확실하게 분리시키라고 요구한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놀라울 정도로 발전한 현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정작 학문의 자유에 대한 관심은 시들하다. 정부의 모든 재정 지원에는 정치적·이념적 굴레가 필수라는 현실은 애써 외면한다. 산업기술 개발을 위한 정부의 투자를 이공계 학술연구에 대한 지원으로 착각한다. 기술 개발에 대한 대선 공약을 학술연구 진흥 공약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대학의 자율에 대한 인식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자율은 사회적으로 전문성·윤리성을 인정받는 경우에만 주어지는 것이다. 교육과 연구를 제쳐두고 정치권이나 기웃거리는 폴리페서들을 정리하고, 부모 찬스로 오염시켜놓은 대학입시와 학사 행정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되찾기 위한 뼈를 깎는 노력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7월에는 교육의 컨트롤타워에 대(大)지진이 일어난다. 교육부도 모자라서 이제는 대통령 직속의 국가교육위원회가 등장한다. 3명의 상임위원을 포함한 21명의 위원이 국가교육발전 계획 수립, 국가교육과정 고시, 교육정책에 대한 여론 수렴·조정 업무를 담당한다. 과연 국가교육위원회가 뜨거운 이념적·계층적·지역적 갈등의 현장으로 전락해버린 교육을 구원해줄 것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오히려 국가교육위원회가 어설픈 정치적 중립성을 핑계로 교육 현장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 가능성을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특히 교육부가 대학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될 수도 있다. 두 기관이 서로 엇박자를 놓게 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것이다.

사교련·국교련·민교협 등의 교수단체가 교수 사회를 대변하는 ‘한국 지성의 정론지’로 탄생시킨 <교수신문>이 어느덧 창간 30주년을 맞이한다. 학문의 자유, 대학의 민주화, 대학문화의 창달, 교권 옹호, 전문적 권위의 향상이 <교수신문>의 핵심 의제가 되어야만 한다. 교수 사회의 윤리성·전문성·책무성을 강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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