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인들과의 우정으로 신분편견 벗어
1806년, 유배생활은 끝났으나 집안은 완전히 몰락하였고 자신과 동료들의 수많은 작품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가난에 시달리다가 1812년 무렵부터 벼슬길에 나아갔는데, 연산현감을 거쳐 함양군수로 재직하던 중 세상을 떠났다. 解配 이후 그는 시를 창작하는 한편, ‘담정총서’를 편찬하였는데 이 총서는 자신과 주변인물들의 문학작품을 후세에 전하고 그 문학적 입장을 옹호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이었다. 또한 담정은 ‘寒皐觀外史’, ‘廣史’ 등 과거의 잡록과 야사를 대규모로 집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독특하고도 탁월한 시인이었다.
담정은 중세적, 사대부적 감수성을 탈피하여 새로운 감수성의 세계를 보여 준 점에서 한국 漢詩史에 대서특필될 만하다. 담정의 시는 자연스럽고 진실한 감정의 가치를 매우 중요시할 뿐 아니라, 격렬한 개인적 감정을 거리낌없이 분출하고 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연희라는 여성에 대해 쓴 일련의 시들은 우리나라 戀詩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신이 만났던 숱한 인물들에 대한 시에서 그는 매우 선명한 애정, 증오, 칭찬, 비판을 표현하고 있는 바 진실되게 살아가는 민중적 인물에 대해서는 각별한 애정과 이해를, 부패한 권력자에 대해서는 격렬한 증오를 거리낌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는 우리 한시사에서 유래가 없는 것으로, 溫柔敦厚와 절제 및 조화를 추구하는 중세적 미의식에서 사뭇 벗어난 것이다.
중세 시인으로 하층민, 변방민, 여성 등을 주인공으로 한 시편들을 담정만큼 많이 창작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다양한 주변적 삶을 깊이 있게 관찰하고, 그 인물들의 인간적 미덕을 높이 평가하며, 진심에서 우러나는 우애의 감정을 표시하였다. 담정은 하층민이나 여성을 지배층 및 남성의 他者로서가 아니라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그 가치를 적극 평가하고 인정하였다. 중세적 감수성이 군자/소인, 남성/여성, 인간/미물 등의 위계질서를 전제로 하는 것임에 반해, 그는 ‘평등의 감수성’을 보여주었다. 담정은 변방의 무관, 아전, 상인, 농민, 기생, 아이, 이웃집 할미 등과 신분이나 性을 넘어선 우정을 나누었는데, 그들과 관련된 숱한 묘사나 시적 표현을 통해 그들을 자신과 똑같이 동등한 인간으로 느끼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다. 만물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그의 감수성은 하찮은 동물이나 사물에게까지 미치고 있다. 셋집에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 자기가 기르던 개나 닭, 이웃사람이 기르던 매, 뜰의 나무에 둥지 친 까치, 우물가의 앵두나무 등에 대해서까지 그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시는 다분히 생태적 면모를 띠고 있기도 하다. 그의 인간이해가 단적으로 표현된 작품은 미완의 장편서사시 ‘장원경 처 심씨를 위한 시’이다. 이 작품은 양반집안과 백정집안의 혼인을 제재로 삼고 있는데, 담정은 신분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중세적 현실을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간주하고 “세상사람은 모두 동포”라는 ‘사해동포주의’를 설파함으로써 근대적 만민 평등의식에 성큼 다가서고 있었다.
감성·직관으로 포착한 중세의 해체
담정은 중세사회의 해체라는 역사의 대전환을 이성이나 논리보다는 감성과 직관에 의해 포착하였으며, 시인적 감수성으로 근대적 평등의식을 先取함으로써 다가올 미래를 예감하고 있었다. 예술적 감성이나 시적 통찰은 때로 이성이나 논리보다 더 유연하며, 그리하여 인간 및 세계이해에 있어 더 진취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정의 경우를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