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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구실: 문방구 사장의 철학
나의 연구실: 문방구 사장의 철학
  • 최명석 교수
  • 승인 2005.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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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용덕(박사과정생), 민지윤(석사과정생), 최명석 교수, 강승미(석사졸업생), 정하나(학부생), 박동진(학부생) ©

누가 말했던가. 연구실은 문방구이고, 교수는 문방구 사장이라고. 20평 남짓의 좁은 연구실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일년씩을 마무리한다. 연구실에서 교수는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작은 희열에 사는 영락없는 사장이 된다.

본인은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되는 해, 역사와 전통이 흐르는 천년고도 진주에서 새로운 문방구를 경영하는 사장이 되었다. 식물의 부가적 생존 및 인간에게 의약품 등 유용함을 제공해주는 식물의 이차대사를 연구하는 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당시 초보사장이 할 수 있는 것은 회사를 운영할 연구비를 확보하는 것이었고, 회사를 운영할 좋은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보사장이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세계적인 회사를 만드는 것보다, 한발 짝 울타리를 벗어나면 보이는 골치 덩어리 사회가 아닌 정말 새로운 이데아를 만들어보는 것이었다.  선배는 후배를, 후배는 선배를 위할 줄 알고, 학생들은 사장인 교수를 존경할 줄 아는 그런 연구실, 나아가 항상 있고 싶은 그런 이데아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 누가 그랬다. 지방대는 힘들고, 특히 소위 한물간 학문으로 치부되는 농·임업 분야는 모든 것이 힘들다고 말이다. 사실 냉철히 살펴보아도 우수 학생 유치도, 연구비 확보 등 연구 환경 자체가 매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사장이 제일 먼저 한 것은 젊은이에게 맞게 연구실의 환경 개선이었다. 그리고 아침마다 밀대를 들고 같이 청소하였다. 몇 개월 후 그들과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졌다. 1주마다 랩 미팅하고, 학회에 가서 수없이 발표하고 배우면서 이 작은 회사가 알차게 운영되었다. 1년 후 비로소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작은 사회 즉, 문방구 이데아가 실현되기 시작하였다.  그들 앞에서 수없이 되새겼다. 우리는 매우 작은 회사이고, 아직은 보잘 것 없다고. 그러나 훌륭한 사원 때문에 세계적 회사로 다가가고 있다고 말이다. 

본인이 추구하는 또 하나의 이상은 사회로 가기 전, 준비하는 연구실을 만드는 것이었다.  매체에서 대학의 교육이 현실과의 괴리가 있느니, 경쟁력이 없느니 등 성토의 목소리가 매우 높다.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본인이 행한 것은 연구만 하는 연구실을 탈피하는 것이었다.

사장인 본인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한 (재)바이오21센터의 구축사업에 연구 외적으로 관여하였다. (재)바이오21센터 구축은 건축, 장비구축, 연구원 선발 등 행정적인 일이 많았고, 구축 후에는 20개가 넘은 바이오기업과 자연스럽게 접촉하였다. 처음에 다소 불만이었던 학생들도 행정과도 접하였고, 기업들과도 교류가 자연스럽게 되기 시작하였다. 

당장 논문이라는 수익은 다소 손해를 보았지만 사장과 사원들이 연구실 밖 현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자연스레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가 시작되었고, 한명의 낙오자 없이 사회에 진출하고 있다. 또한 이후 더 많은 논문이 생산되었고, 연구를 이해하는 자세도 향상되었다.

대학은 문방구를 운영하기에 너무 좋은 환경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2년 또는 3년 만에 훌쩍 가버리는 사원들이지만 항상 새롭고 도전에 넘치는 사원들이 있다. 지방대가 힘들다고 하지만 너무나 순수하여 흰백지에 멋있는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있다. 오색찬란한 수십 층의 빌딩이 아니어도, 당장 눈에 보이는 커다란 이윤이 남지 않아도 분명 내가 있는 연구실 아니 문방구는 작지만 절대 손해는 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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