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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魂을 잃어가는 지식인
[대학정론] 魂을 잃어가는 지식인
  • 논설위원
  • 승인 2001.06.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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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6-25 00:00:00
타는 듯한 가뭄 뒤에 단비를 뿌려 農心을 헤아린 것은 진흙탕 싸움에 도끼자루 썩는줄 몰랐던 정치권이 아니었다. 그들은 생색내기에 바빴을 뿐, 새카맣게 타들어가는 농심을 제대로 읽으려는 노력은 애시당초 찾아볼 수 없었다. 천하의 大本이라고 말로만 떠받들던 農者를 우롱했으니 이것은 지독한 넌센스다.

과거 민자당 시절에 자기 손으로 사립학교법을 난도질했던 지금의 야당은 그나마 법안 상정마저 거부하고 딴죽거는 바람에 교수사회의 염원이었던 사립학교법 독소조항 개정이 또다시 표류하고 있다. 도대체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제대로 배우는 지혜나 아량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다. 법안의 골격이 어떤 것인지, 도대체 무엇을 담았길래 교육을 치부의 수단으로 인식하는 존귀하신 한국의 교육자본가들이 저 난리인지 알아볼 생각도 않고 내팽개치는 건 어찌보면 과거의 경험을 ‘제대로’ 되살린 짓인지도 모른다.

정쟁에 휘둘리는 여야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진흙탕 싸움에 길들여진 그네들이고 보면 이 싸움질을 탓할 배외자의 권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네들의 그런 백주대낮 주먹질과 난장이 횡행하는 것은 따지고보면 ‘選良’을 너무나 정직하게, 양심에 따라 뽑은 우리들의 안목때문이거니와 무더위에 끙끙 앓은들 무슨 뾰족한 수가 있겠나.

정작 중요한 것은 싸움질을 밥먹듯 하면서, 엉뚱한 배만 튕기고 있는 이들 정치권 곁으로 달려가고 있는 우리 지식인들의 그 잘난 행태일 것이다. 달려갔다면, 무엇이 되든 책임과 소신을 가지고 목을 내 놓는 자세로 바른 말을 해야 할텐데, 윗분들 눈치보기 바쁘다.

그렇다면, 저 많은 담론의 지층에 쌓인 온갖 비판과 대안 제시는 무엇이란 말인가. 지식인들이 무조건 권력을 배타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겨우 권력의 눈치나 보기에 급급하면서 과거 아카데미의 온실 속에서 서슬퍼런 비판을 제기하던 그 대단한 기백을 망각하는 것은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정치의 주변이 그러하다.

이미 현 정권의 이빨과 발톱은 다 빠졌으니, 다른 이빨과 발톱을 찾아 배회하는 유리걸식 지식인들도 적지 않다. 도대체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그는 역사로부터 무엇을 배우는가. 이들 유리걸식하는 지식인들은 투명한 카페에 앉아 누군가 나를 불러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다 지쳤는지, 급기야 서둘러 새로운 권력자 주변으로 이합집산하고 있다. 제발, 그걸 두고 국가와 민족, 국민을 위해서라고 둘러대지 말자.

권력을 탐하는 것이 무슨 부끄러운 일이랴. 깊이 생각할 점은, 이 권력이 어디에 소용되는 것인지, 그래서 누구를 위해 제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물으면서, 뜻을 관철하는 일이다. 도처에 흉흉한 민심 뿐이다. 너무 많은 역사의 순간이 아로새겨진 6월 오늘, 무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다리 밑에서 피로한 낮잠을 잘 것이다. 그네들은 꿈 속에서도 가위눌린다.

기백을 잃어버린 지식인들, 영혼을 팔고 있는 지식인들이 난무하는 세상은 사회적 약자들이 기댈 언덕이 사라진다. 희망이 사라지기 전에, 지식인들부터 자기에게 부과된 책무를 직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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