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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경제개발 모델 수출…“지역주민 참여가 없었다”
한국식 경제개발 모델 수출…“지역주민 참여가 없었다”
  • 박영수
  • 승인 2021.12.29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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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류학이 본 에티오피아 (하)

에티오피아에 주입된 새마을 운동과 가족계획 사업
소수 민족의 땅은 외국 자본·정권협력자에게 넘겨져

“한국이 에티오피아 제국의 식민지 인구 억제를 도울 것이라고 발표되었다. 이는 인종적 획일성을 위한 파시스트적인 우생학 정책의 일환으로, 인종청소를 하는 것과 같은 파괴적인 기술을 육성하는 것이다. (<Finfinne Tribune> 2014년 8월 20일자)” 저자는 처음 위 기사를 접했을 때 ‘한국 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에 대한 보은의 일환으로 기획된 좋은 의도의 가족계획 사업에 어떻게 우생학과 인종청소와 같은 부정적 표현을 써가며 비난할 수 있을까?’ 일면 이해하기 힘들었다. 에티오피아에서 진행되었던 한국의 가족계획 사업에 대해 2014년 7월 11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저출산까지 부른 ‘한국 산아제한 노하우’ 에티오피아 수출」이라는 비판적인 제목을 내놓았다. 해당 기사의 영문판을 인용한 오로모 민족의 디아스포라 언론의 기사가, 위와 같이 한국의 가족계획사업이 오로모 민족의 인구를 한국과 같은 수준으로 억제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국의 새마을운동이 에티오피아에까지 수출됐다. 에티오피아의 코리아에이드 이동진료 차량. 사진=박영수, 새마을운동중앙회

한국 가족계획사업의 경험을 그대로 복제하기에는 에티오피아에서 인구 문제는 복잡한 정치적 함의와 맥락을 지니고 있다. 인구가 1억이 넘는 에티오피아에서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오로모 민족은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이지만, 인구의 6%에 불과한 티그라이 민족의 지배하에서 30년 가까이 사회경제적 차별을 겪으며 살았다. 1인 1표의 원칙에 입각한 선거가 오로모 민족운동에 가져올 정치적 효과에 대해서 경계하는 에티오피아 정부가 오로모 족의 인구증가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의 도움을 받아 가족계획 사업을 장려하고 있다고 해석한 것이다. 본 기고문은 한국 정부가 지원한 에티오피아 가족계획 사업 지역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역사적으로 피지배 상태를 경험해 온 오로모 민족 정체성과 한국을 모델로 한 개발국가의 인구담론이 충돌하고 있는 현장을 살펴보았다.

 

한국 국기와 새마을기가 휘날리는 마을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출발하여 2시간 남짓 지나 오로모 민족이 다수를 이루는 오로미아 주의 아르시 지역의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초입부터 한국 국기가 크게 새겨진 이정표가 이곳이 한국 프로젝트의 현장임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다. 마을 거리에서는 한글로 ‘새마을’이라고 씌어진 녹색 모자를 쓴,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 새마을 리더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기관이 세워준 자물쇠가 굳게 채워진 마을회관의 벽에는 현지 언어나 영어가 아닌, 한글로 새마을이라고 쓰인 새마을기가 그려져 있고, 녹색의 새마을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마차와 가축, 사람들이 건기의 흙먼지와 어지럽게 뒤엉켜 오가는 마을의 중심 교차로에는, 작고한 멜레스 제나위 총리가 에티오피아 르네상스 댐과 고속도로로 상징되는 경제발전의 미래를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는 대형 포스터를 접할 수 있다. 에티오피아의 집권정당인 에티오피아 인민해방전선의 수장으로 1991년부터 2012년까지 통치했던 그는 재임 중에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에 제출한 경제학 석사 논문을 통해 한국의 개발독재를 신자유주의적 경제논리에 대항하는 아프리카 국가의 경제발전 모델로 천명하고 있다. 재임기간 동안 한국을 세 번 방문했던 멜레스 제나위는 두 눈으로 에티오피아의 미래를 한국에서 재확인하였고 한강의 기적과 새마을운동에 대해 극찬하였다. 

 

정부 공표와는 달리 굶주리는 오로모족 농부

그러나 정부 방송이 수력발전을 위한 대규모 댐 건설을 비롯한 사회간접자본 구축과 전례 없는 경제발전을 매일 선전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오로모족 농부들은 일상적인 굶주림과 정전의 어둠, 계엄령 하의 전화 인터넷 네트워크 단절, 며칠씩 지속되는 단수를 경험하고 있다. 매년 두 자릿수의 GDP성장률을 기록했다고 공표하는 에티오피아 정부의 통계와는 달리, 오로모 농부들의 일상생활은 크게 개선되지 못했다. GDP 성장률에서 정권의 정당성을 찾는 정부 하에서 해외원조자금에 기반한 대규모 건설사업이 국내 총생산 증가를 주도하고 있고, 이를 위해 역사적으로 소외되어왔던 소수 민족의 땅은 정치적으로 무관한 외국 자본이나 정권의 협력자들에게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넘겨졌다.  

에티오피아의 근대화 과정은 주변부 민족인 아르시 오로모 인들에게 폭력적인 과정으로 경험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에티오피아 제국의 식민지배는 토지 불평등의 구조를 남겼고, 오로모 민족의 방대한 영토를 중앙 정부와 외국 기업의 플랜테이션으로 넘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1970년대 초반 스웨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시행된 아르시 지역의 대규모 농업개발 프로젝트는 토지개혁이 선결되지 않은 농업의 상업화로 사회적 불평등을 가속화시켜 수만 명의 오로모 소작농 봉기를 촉발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오로모 반군의 출발점이 됐다. 

1974년부터 1991년까지 지속된 에티오피아의 공산정부는 아르시 주민들의 80%를 강제이주시켰고, 강제징용과 집단노동, 기근, 처형을 통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다. 에티오피아의 강제이주와 강제마을화는 아르시 지역의 삼림과 토양을 황폐화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기근에 대한 공동체적 저항력을 약화시켜 영양 실조와 전염성 질환을 창궐하게 하였다. 1991년부터 시작된 개발독재정권은 지역불균형 개발을 통한 오로미아 주의 저개발 상태를 방관해 왔다.

한국의 가족계획사업과 새마을운동의 동원과 폭력적 근대화 과정은 삭제된 채, 한국식 경제발전 모델의 성공을 가능케 한 개발의 필수적 요소로 변형되어 에티오피아를 비롯한 원조수여국에 한국형 해외개발원조(ODA) 모델로 수출되고 있다. 자조를 표방하는 새마을 운동의 정신과는 달리, 국제개발 사업은 사업형성 초기부터 지역주민의 참여는 배제된 채, 지역적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결여된 공여국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틀과 수여국 정부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외부에서 부과된 과제의 형태로 지역주민들에게 제시된다. 

UN의 MDG와 에티오피아 정부 경제발전5개년 계획에서 명시된 시간 안에 달성되어야 할 목표가 사업의 성과를 측정하는 지표로 제시된 개발사업은, 지역사회의 말단 공무원들에게는 사회적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달성 불가능한 목표를 지역주민에 대한 강제와 통계의 조작을 통해서라도 이뤄낼 수밖에 없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지역사회보건인력은 단기간 내에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이 드는 보건 영역을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미치기 힘든 시골 마을까지 확장시킴으로써, 개발독재의 정당성을 확보해주는 GDP 성장률의 분모인 인구를 억제하기 위한 가족계획에 동원되고 있었다. 

인구 5천명의 한 시골 마을에서, 가족계획 사업 첫 해에만 300명이 넘는 여성들이 장기피임을 위한 임플라논 삽입 시술을 받고, 마을 방문 가족계획 사업 첫날에 70명이 넘는 시술이 시행된 경우도 있었다. 지역사회보건인력의 업무를 평가하고 마을 주민들의 가족계획 정책에 대한 태도를 감시하는 보건소장은 한국 연수에서 배워온 ‘하면된다 해야만 한다 할 수 있다’의 구호를 외치며, 한국 가족계획사업이 제시한 성과목표를 달성하도록 채찍질했다. 2015년 MDG 종결 연도를 앞두고 모자보건 인프라에 대한 급격한 개선 없이 에티오피아의 가족계획, 산전관리와 시설분만율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개발국가를 모델로 한 동원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방문을 계기로 한국형 개발협력 모델 ‘코리아에이드’를 출범시켰을 때, 단기적 프로젝트의 혜택 인원을 늘리기 위해 마을 주민들을 버스로 실어 옮겨서 동원시켰던 일은 정부가 제시한 목표 수치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식 개발 국가 모델의 단면을 보여준다. 

다민족 국가 에티오피아에서 한국의 개발국가 모델은 피지배 민족에게 폭력적으로 경험되었다. 마치 전쟁을 방불케하는 작전명과 제한된 기간 안에 달성 불가능한 목표치들이 제시되는 총력전의 시간성이 가족계획 사업을 지배하고 있었다. 가족계획 시술의 합병증을 관리할 보건의료체계의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여건에서, 수많은 여성이 겪어야 할 신체적 고통에 대한 고려없이, 적은 비용으로 인구통계의 숫자를 달성하기 위해, 이동진료차량을 동원하여 침투하고 있었다. 속도의 시간성으로 표현되는 한국 개발국가의 근대성이 저개발국가의 구성원들에게 가져오고 있는 사회적 고통의 깊이를 다시 헤아려보게 된다.

 

 

박영수
해버퍼드칼리지 의료인문학 교수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문화인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베를린자유대와 런던대(UCL)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아프면 보이는 것들』(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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