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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에 반발…여전히 갈 길은 멀다
페미니즘 교육에 반발…여전히 갈 길은 멀다
  • 김수아
  • 승인 2021.12.31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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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비틀어보기_『페미니즘 교육은 가능한가』 젠더교육연구소 IGE , 엄혜진 외 7인 지음 | 교육공동체벗 | 292쪽

지식을 상호형성하고 공존의 철학을 탐색
젠더 위계 구조를 비판하는 페미니즘 교육

2018년 진행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은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이에 대해 정부는 페미니즘이 하나의 별개 교과목이 아니라 여러 교과목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바 있다. 하지만 일선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하는 교사들에 대한 반발과 민원을 통한 압박이 계속되었고, 성평등 교육·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반발은 남성 중심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점차로 가속화됐다. 

 

2021년 5월에는 소위 ‘페미니즘 교육 게이트’라면서 페미니스트 교사들이 딥웹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면서 아동을 학대하고 세뇌 교육을 자행한다는 주장이 온라인 공간에 광범위하게 퍼져 경찰 수사까지 진행됐다. 물론 해당 조직이나 사이트가 존재한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고 한다. 과거라고 해서 페미니즘 교육이 수월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확실히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된 것이다. 

페미니즘의 교육의 가능성을 제목으로 삼은 이 책은 2017년 창립되어 페미니즘 교육과 관련하여 다양한 실천을 해온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기고한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주제를 확장한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주제는 페미니즘 교육이란 무엇이며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그리고 이를 위해 무엇을 개선하고 출발점을 어떻게 다져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담아 엄혜진은 페미니즘 교육의 철학적 구조를 설명하면서, 교수자와 학습자는 만남을 통해 지식을 상호 형성하고, 평등한 사회를 향한 공존의 철학을 탐색하면서 교육 제도와 관행이 생산하는 차별적 구조를 비판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페미니즘 교육의 원칙과 철학에 대한 논의 없이, 신자유주의적인 공교육 체계가 변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평등을 개인 차원으로 환원하는 현재의 교육은 차이를 가진 타자를 존중하는 인식을 갖기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문제 인식은 이 책의 다른 글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예를 들어,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이나 온라인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적 도구처럼 여겨지는 현실에서, 윤보라는 개별 미디어 생산자의 성인지 감수성을 요구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 일상의 디지털화와 아울러 젠더 권력 구조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최기자는 젠더폭력 예방 교육이 페미니즘 교육 제도화의 성과로 평가되는 한편으로 결국 범죄 예방이자 품질 관리 교육에 그치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현재의 젠더폭력 예방 교육이 여성의 안전에 초점을 맞추면서, 안전을 보호하는 공권력을 호명하는 등 여성의 시민권을 인정하기보다는 기존의 젠더 위계 구조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우려한다. 

 

교수자·학습자 상호 호혜적인 교육

결국 이 연구서가 강조하는 것은 페미니즘 교육은 젠더 권력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며, 이것은 교수자와 학습자간 상호적이고 호혜적인 과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김수자가 제시하는 대안학교의 성평등 교육 현장은 교사도 학생도 페미니즘을 배워야 하는 낯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 가운데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사유하는 상호적 관계를 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외에도 이 책은 성평등 교육의 실태 분석, 신자유주의적 경쟁 체계와 교육 시장이 성평등 의미를 구축하는 데 미치는 영향, 몸의 경험과 성적 차이를 이해하는 성평등 교육의 필요성, 친밀한 관계를 평등하게 구성하는 데 필요한 페미니즘 등의 주제를 다룬다. 

“성평등에 찬성하지만 페미니즘에 반대한다”라는 주장이 온라인 공간에서 널리 공유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성평등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신자유주의적 경쟁 체계를 자연화하는 가운데 ‘성평등’을 따로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의 모순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며, 페미니즘 교육이 개인화된 품성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의 구조를 직시하고 함께 더 평등하게 살아가는 방식을 찾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원칙이다. 유례없는 반 페미니즘 실천들에 대응하면서 더욱 어려워진 페미니즘 교육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출발점을 다시 한번 그려볼 필요가 있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여성학협동과정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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