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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독재에 감염된 권력집단, 말을 강탈하고 의도를 감춘다
부패·독재에 감염된 권력집단, 말을 강탈하고 의도를 감춘다
  • 유무수
  • 승인 2021.12.3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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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사랑의 교육학: 파울로 프레이리를 재창조하다』 안토니아 다더 지음 | 유성상 외 5인 옮김 | 살림터 | 408쪽

민주화 견인했던 세대는 왜 꼰대로 전락했나 
자기성찰이 결핍된 권력집단은 수동성을 조장

이 책의 옮긴이 서문에서는 1970~1980년대 한국 사회에서 반정부 민주화운동을 하던 운동권에서 프레이리의 저작을 ‘의식화’ 교재로도 사용했다고 적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사회민주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프레이리는 한물 간 추억 속으로 밀려났다.

 

민주화를 외치던 자들이 권력을 장악한 문재인 정부 기간 동안 교수들이 정의한 사자성어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퇴보했다. 이전 대통령이 탄핵됐던 해(2017)에는 사악한 것을 부수고 생각을 바르게 해야 하며, 그 다음 해(2018)에는 책임은 무겁고 길은 멀다고 교수들은 정의했다. 2019년에는 공멸할 것을 모르는 이기주의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표현했고, 2020년에는 ‘내로남불’을 질책하는 사자성어가 지정됐다. 2021년에는 “도둑 잡을 사람이 도둑과 한 패가 됐다”라는 것이니 그 흐름이 참혹하다(<교수신문>, 2021년 12월 13일자). 

부패와 독재에 감염된 권력집단은 말을 강탈하고 그것을 이용하여 의도를 감춘다. 억압적인 지배세력은 진실을 조명하는 언어를 빼앗는다. 그래서 프레이리는 그와 대조되는 대화적 관계를 강조했다. 프레이리가 자신의 닻이 되어주었다는 안토니아 다더는 프레이리가 『페다고지』에서 강조했던 ‘대화’를 재강조했다. 프레이리는 “은행저금식 교육은 대화를 거부하지만 문제제기식 교육에서는 대화가 현실을 드러내는 필수불가결한 인식행위”라고 말했다. 반민주적 지배 엘리트는 대화를 억압하고 은행저금식 기법을 이용하여 구호를 주입한다. 자기성찰이 결핍된 권력집단은 일반 대중을 침잠된 의식상태에 머물게 함으로써 수동성을 조장하고 민중의 주체를 마비시킨다.

문제제기식 교육에서는 대화의 역할을 중요하다. 학생들은 대화에 참여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그런 문제에 연관된 한계상황을 정의하고, 행동을 위한 최고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에 능숙해진다. 이 책 4장은 프레이리의 사상을 교육현장에서 적용한 사례들을 소개했다. 미국 LA에서 인종·민족을 담당하는 한 교사는 대학교 1학년 때 프레이리의 비판 교육학에 대해 알게 되었고, 고교교사가 되었을 때 학생들과 “분투했던 경험, 트라우마 혹은 기뻤던 일들에 대한 생생한 역사를 나누는” 대화적 관계를 진지하게 시도했다. 대화의 과정에서 학생들은 교사가 이민 온 노동자의 자식이며, 백인중심적 사고관에 따른 학교교육 과정에서 멕시코 원주민 조상들을 부끄러워했다는 과거를 알게 된다. 대화의 수업을 통해 학생들은 다양한 인식의 틀과 접근법을 만나고 자신을 역사적 존재로 보는 법도 배우게 된다.

프레이리는 『교육과 의식화』에서 “분파주의자들은 그들 스스로가 부자유하기 때문에 진정으로 인간을 해방시키는 혁명을 절대로 수행할 수 없다”라고 지적했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자부하는 무리들이 자기성찰의 뿌리를 갖춘 주체적 존재로서 현실을 밝고 폭넓게 드러내는 대화에 허심탄회하게 열린, 제대로 된 민주적 정치를 해왔다면 교수들이 선택하는 사자성어는 달라졌을 것이다. 옮긴이가 지적한 것처럼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견인했다고 주장하는 세대가 오늘의 다음 세대 앞에 이토록 형편없는 꼰대가 되어 버린” 상황이기에 비판적 문제제기와 대화를 통해 현실을 드러내고 진보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프레이리의 사상은 여전히 절실하게 유효하다. 

유무수 객원기자 wiseta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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