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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조선조 대외사상의 흐름』(유근호 지음| 성신여대출판부 刊 | 2004| 510쪽)
서평:『조선조 대외사상의 흐름』(유근호 지음| 성신여대출판부 刊 | 2004| 510쪽)
  • 권오영 중앙연
  • 승인 2005.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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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화주의 붕괴 기원, 북학파에서 찾아

이 책은 조선조 중화적 세계관의 형성과 붕괴과정을 거시적으로 분석하면서, 우선 조선조에 있어서 주자학이 사림파 사대부 계층의 정치적 지향과 결부되어서 어떠한 흐름을 거치면서 통치이념으로 뿌리를 내리게 되고 주자학의 대외관인 중화적 세계관이 조선조의 대외사상으로 정착되어 가는 긴 여정을 탐구하고 있다. 이어 조선조 중기 이후의 조선이야 말로 세계문화의 중심을 이룬다는 소위 소중화적 세계관이 19세기 서세동점기에 대외적 충격을 받으면서 어떠한 형태로 변형되고 또 해체되면서 근대적인 세계상이 출현하는가를 세밀히 추적하고 있다. 또한 조선조 유학자와 일본 에도시대의 유학자의 대외사상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조선조 지식인들의 세계관의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중기 이후 각 시기의 대표적인 학자와 학파, 정파의 사상을 거시적이고 통합적으로 고찰하고 있어, 각 학파나 정파가 지닌 사상의 내재적 흐름의 연결선상에서 파악하는 데는 다소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북학파의 사상과 벽위론의 사상의 원류를 이익이란 인물에서 찾고 있는데, 북학파 사상과의 연결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중화적 세계관의 붕괴는 이른바 18세기 실학자들에 의해 그 단초가 열린 것이 사실이다. 근기 남인 실학자 이익이든, 서울의 노론 북학파든 중국을 통하여 새로운 사조를 수용하고 세계관의 변모가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나 이들 간에 사상적 연계성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북학파의 경우 송시열의 소중화사상을 계승한 학자군에서 어떻게 북학사상이 출현하여 중화적 세계관이 해체되어가는 가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학파라 할지라도 언제 어떤 계기로 그들이 중화적 세계관을 비판하고 새로운 세계질서를 지향해 나갔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박지원은 초기에는 열렬한 소중화주의자였으나 연경을 다녀올 무렵에 북학파로 변신했고 박제가의 궁극적인 주장도 북학에 있었지 소중화주의에 있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혹시 그들의 사상에 중화적 세계관의 잔영이 남아있다 할지라도 그들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가 소중화적 세계관에 있지 않고 북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관을 열었다는 점에 주목하여 중화적 세계관의 붕괴가 18세기 말에 북학파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는 적극적 해석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또한 위정척사파, 집권사대파, 개화파, 동학농민운동, 애국계몽운동 등에 대해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면서, 중화사상이 본격적으로 붕괴되는 것은 국권상실의 위기 속에서 전개된 농민의 동학사상과 애국계몽기의 국학사상을 통해서라고 하였다. 특히 신채호의 사상에 대한 검토를 통해 그가 유교윤리 자체를 부인하였고 이는 조선조 사상의 흐름 속에서 중화적 세계관에 있어서의 규범주의적이며 보편적인 세계상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조선조 중기에 주자학을 기반으로 사림파 사대부 계층의 세계관으로 출발하여 극성을 이룬 중화적 세계관을 사상내재적으로 부인함으로써 자국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펼칠 수 있는 단서를 열어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선 19세기 근 백년간 이루어진 조선 민중의 자각의 내재적 성장의 흐름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19세기 초부터 시작하여 1862년 임술년 전국적으로 일어난 민중봉기와 이를 전후하여 최제우에 의해 창도된 동학과 그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거쳐 삼일운동에 이르는 도도한 사상의 흐름 속에서 자국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의 형성과 발전과정을 추적해 나가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자국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펼칠 수 있는 단서는 이미 18세기에 우리 역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중국을 대지의 일편토에 불과하다고 설파한 이익이나 華夷一也를 부르짖은 홍대용에서 충분히 확인되고 있으며, 1850년대 말에 최한기에 이르러서는 ‘夷〔오랑캐〕’라는 글자가 그의 저서에 사라지는 것에서 보듯 화이관의 완전한 해체가 이루어져 버렸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신채호가 활동했던 20세기 초에는 자국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을 펼칠 수 있는 단서가 열린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자국중심의 새로운 세계관이 어느 정도 완성된 시기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선 후기 이래 지속되어온 다양한 사상과 운동의 흐름은 삼일운동에서 우리 민족의 독립이라는 목표를 향해 하나로 통합되어 새로운 세계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작은 시내물이 흘러 여러 강을 이루고 다시 여러 강물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룬 셈이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 이래 각 학파와 정파의 중화적 세계관의 붕괴의 시기, 그리고 그 과정 속에 일어난 각 학파나 정파의 사상적 갈등과 긴장의 해소과정에 대한 보다 명료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말은 오자, 탈자 등이 자주 눈에 띄고 자료에 대한 오독도 더러 보여 독자의 신뢰를 감하고 있는 점을 아쉽게 생각한다.

권오영/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사

필자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혜강 최한기의 학문과 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민족운동사 연구’, ‘조선후기 유림의 사상과 활동’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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